이-팔과 달리 우크라이나선 힘 못쓰는 트럼프…"시간 낭비" 미·러 정상회담 보류

러와 입장차 못 좁힌 듯…BBC "트럼프, 알래스카 '빈손' 반복 피하려 해"

이르면 이달 내 열릴 것으로 제시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정상회담이 보류됐다. 즉시 휴전을 원하는 미국과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 상황에서 회담은 "낭비"라고 지적했다. 지난주 미국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장거리 미사일 토마호크 확보에 실패한 가운데 미국이 발을 빼는 것을 막고자 하는 유럽이 가자지구 '트럼프 종전안'을 모델로 한 우크라 휴전안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21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을 보면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까운 미래에 푸틴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 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정상회담 계획을 발표하고 만남이 "2주 내" 성립할 것이라고 제시한 바 있는데, 이 회동이 보류됐음을 알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밝힌 계획엔 정상회담 전 양국 외무장관이 이끄는 고위급 참모 회의 또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21일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이 전날 "생산적인 통화"를 나눴지만 대면회담은 갖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재진에 관련 질문을 받고 "낭비적 회담을 갖고 싶지 않다. 시간 낭비를 원하지 않는다"고 회담 보류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이어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며 "우리가 뭘 할지 향후 이틀 안에 고지하겠다"며 회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 낭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회담을 앞두고 양쪽 입장 차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지난 8월 알래스카 정상회담과 같은 상황의 반복을 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영국 BBC 방송은 분석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복잡한 협상을 뒤로 미루고 즉시 휴전을 이끌어 낸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현재 전선에서의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그들(러·우크라)은 지금 있는 자리(전선)에서 멈춰야 한다"며 "살상을 멈추고 협상을 시작할 때"라고 촉구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과 통화 뒤 트럼프 대통령 입장이 다시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17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고성이 오갔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우크라이나 쪽 입장이 완전히 무시되진 않았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우크라 정상회담이 "고성이 오가는 싸움"으로 변질돼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욕설을 퍼붓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양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회담이 "우호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러시아 쪽은 휴전에 앞서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튀르키예 <아나돌루>, <AP> 통신 등을 보면 21일 라브로프 장관은 취재진에 즉각적 휴전은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즉각적 휴전이 알래스카 회담에서 이뤄진 대화와도 모순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회담 뒤 즉시 휴전이 아닌 평화 협상으로 곧바로 가야 한다며 러시아 쪽 주장을 받아들인 듯한 태도를 취한 바 있다. 러시아 쪽이 주장하는 "근본 원인"은 돈바스 양도, 우크라이나 비무장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 등 매우 범위가 넓다.

<로이터>는 미 당국자 2명과 상황에 정통한 두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쪽이 지난 주말 미국에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완전 포기라는 기존 요구 사항을 확인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기존 전선 동결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배치된다. 러시아는 돈바스를 구성하는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 전체와 도네츠크주 75% 가량을 통제 중이다.

결국 제자리? 푸틴은 토마호크 지원 논의·러 제재 법안 흐름 끊어 '실리'

회담이 보류되며 문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지만 이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이 실리를 챙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통화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토마호크 지원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는데, 통화 뒤 그러한 흐름이 일단 끊겼다.

미·러 정상 통화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토마호크 지원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했다. BBC는 앞선 알래스카 회담도 미 상원에서 준비 중인 러시아 제재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던 시점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에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계획을 알리며 "완벽한 시점이 아닐 수 있다"며 러 제재 법안에 사실상 제동을 건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거리 역량 지원 문제가 덜 즉각적이 되자 러시아의 외교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원거리 타격 능력이 평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신호"라며 장거리 무기 지원을 촉구했다.

BBC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협상에 대한 열망을 영향력으로 활용 중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휴전을 비롯해 자신이 8개의 전쟁을 끝냈다고 주장하며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표현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폴란드 주재 미 대사를 지낸 대니얼 프리드가 "문제는 트럼프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선 푸틴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언제 깨닫느냐는 것"이라며 "푸틴은 그(트럼프)를 이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유럽, 가자지구 '트럼프 종전안' 모델로 새 우크라 종전안 준비 중"

지난주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뒤 유럽은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다시금 공고히 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국 정상들은 21일 공동성명을 내 "전투가 즉시 중단돼야 하며 현재 전선이 협상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강력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무력을 통해 국제 국경이 바뀌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며 러시아의 영토 양도 주장에 반대했다.

성명은 현재 러시아의 태도를 "시간 끌기 전술"로 일축하고 러시아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는 유럽이 가자지구에 대한 '트럼프 종전안'을 모델로 한 새 우크라 휴전안을 마련 중이라고도 보도하기도 했다. 통신은 21일 복수의 유럽 외교관을 인용한 이 보도에서 새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휴전 이행 감독을 맡을 평화위원회에 대한 언급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한 외교관은 이를 "미국을 참여시키려는 노력"으로 묘사했다. 가자지구 종전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전후 가자지구를 감독할 평화위원회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통신은 새 제안에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및 군사력 보유, 재건을 위한 재정 지원, 협상 이행에 따른 점진적 러 제재 해제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제안은 영토 협상도 명시하지만 점령지에 대한 러 주권 인정은 배제한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21~22일 미국을 급히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나토는 관련해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주 미·우크라 정상회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에 유럽과 우크라이나 입장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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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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