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단수, 물 나와도 흙탕물 콸콸… 울상인 '간이 상수도' 산촌 주민들

상수도관 없는 산간지역, 오래 방치된 물 사용 불편… 전국 83만 명, 간이 상수도 의존

"이번 추석 연휴엔 물이 사나흘에 한 번꼴로 안 나왔다. 비가 많이 올 때마다 겪는 일이다. 낙엽, 흙이 간이 상수도를 다 막아버린다. 물이 나와도, 누런 흙탕물이 콸콸 나온다. 흰옷 빨래는 못한다. 물을 편하게 못 쓴다. 예산 조금만 더 들이면 되는데, 군은 왜 이걸 방치하나."

10일 <프레시안>과 통화한 강원 양양군 영덕마을 주민 A 씨가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수도관이 들어오지 않은 영덕마을은 계곡물을 바로 생활용수로 쓰는 '마을상수도(간이 상수도)'가 설치돼있다. 그런데 부실한 설비 탓에 주민들이 십수 년 넘게 물을 편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불편함은 크게 두 가지다. 잦은 단수와 흙탕물"이라며 "큰비가 내려 계곡물이 불어날 때마다 겪는다"고 말했다. 그는 "심할 땐 물에서 흙냄새가 진동하고, 벌레, 낙엽까지 나온다"며 "수질검사상 이상은 없다지만, 탁도, 침전물, 색깔도 수질 검사 대상인데, 이 기준에 부합할 리가 없는 물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마을에선 취수·급수 설비가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점이 근본 이유로 꼽힌다. 마을상수도엔 정화 시설이 없다. 계곡물이 침전, 여과 등의 처리 없이 염소 소독 정도만 거쳐 그대로 생활용수로 쓰인다.

계곡과 바로 연결된 1차 취수 공간이 있는데, 큰비가 오면 흙, 자갈, 낙엽 등이 물과 함께 대거 쏟아져 취수 공간과 배수관에 쌓인다. 특히 계곡과 직접 연결된 배수로엔 필터 역할을 하라고 자갈을 넣어뒀는데, 이 사이에 낙엽, 토사 등이 꽉 끼기도 한다. 이 이물질이 수로를 막아 물이 흐르지 못하거나, 흙탕물이 흘러 나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다른 주민 B 씨는 "물이 막힐 때마다 주민 5~6명이 계곡으로 올라가 삽으로 자갈, 모래, 낙엽 등을 다 퍼내야 한다"며 "계곡물이 불어난 상황에선 하지 못하니, 1~2일 정도 물이 막힌 채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기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마을 관리인이 청소를 하는데, 장마철엔 이걸 수시로 한다"며 "이를 지금까지 매해 반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덕마을 주민이 최근 촬영한 흙탕물. ⓒ주민제공
▲마을상수도 수로가 막히면 주민들이 취수시설에 들어가 자갈, 낙엽, 토사 등을 일일이 빼야 한다. 사진은 관련 작업 중인 모습. ⓒ주민제공

B 씨는 "주민들은 여태껏 이렇게 살았으니 불편함을 참고 살고 있는 편"이라며 "상수도를 깔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고 하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 우물물에서 지금 물(간이 상수도)로 바뀐 거 빼고는 나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수십 년 지속된 불편함에 양양군청, 군의회 등에 민원도 넣어 봤으나,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A 씨는 "군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예산이 부족하다거나 마을상수도는 마을이 자율로 관리하는 시설이라는 답만 하고, 군의원들은 호소 메일을 보낸 지 세 달이 다 돼가는데도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며 "농어촌 상수도 보급률이 2023년 기준 83.5%라고 하는데, 데이터는 정말 수치놀음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물 사용의 불편함은 한 마을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B 씨는 "정도 차이만 있지, 계곡물로 마을상수도를 쓰는 이웃 마을들 대부분 상황이 비슷하다"고 전했다. 2020년 기준, 양양군엔 31개 마을이 간이 상수도를 쓰고 있다. 전체 124개 마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강원도에선 7만 770명이 1187개 간이 상수도에 의존하고 있다. 전국 기준으로는 83만 2300명이다.

A 씨는 "정수 시설을 추가하거나 취수 설비를 재정비하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건 억 단위의 예산이 드는 일도 아니고, 1000~3000만원 상당의 예산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이를 방치하고 미루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군청이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양양군청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는 10일 <프레시안>에 "마을마다 사정이 달라 획일적으로 말할 순 없으나, 소규모 급수 시설은 기본적으로 마을에 관리인을 두고 마을이 자치적으로 관리한다"며 "시설 확충을 하려 해도 취수원이 사유지에 있을 때가 많아 협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관정(지하를 뚫어 만든 지하수 우물 시설)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문제가 있는 곳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추가 조치를 취하려 노력 중"이라며 "대규모 예산이 드는 상수도 확대는 수도법상 수도정비기본계획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 양양군은 장기적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해 단계별로 상수도를 확충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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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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