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유튜버로 살아남기' 된 한국정치

[이모저모] '주권자 국민' 마마, 통촉하소서

최근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에서는,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천재 요리사가 미식가 폭군의 입맛을 맞춰 살아남으려는 필사적 발버둥이 코믹하게 묘사됐다. 드라마에 등장한 가상의 폭군은 조선조 최악의 왕 연산군을 모티프로 한 가상인물이다. 그의 수족 역할을 한 간신 임사홍·임숭재를 모티브로 한 인물도 등장한다. (이하 모든 인명에 직함·존칭 생략)

웹소설인 원작과 달리 가상의 이름을 쓴 것은 아무래도 연산군과 임숭재 등에 대한 역사 미화 논란이 부담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는 "임사홍과 임숭재가 대대로 그 간사한 짓을 계승하여 마침내 나라 일을 그르치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대임(큰 임씨), 소임(작은 임씨)으로 칭했다"고 적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남주인공의 친구이자 측근인 감초 캐릭터로 등장하는 '임송재'의 모델 임숭재에 대한 실록의 기록은 이렇다.

"간흉하고 교활하기가 그 아비(임사홍)보다 심하여, 곡진히 위를 섬기어 사랑을 받으려고 왕의 행동을 엿보아 살펴서 왕이 마음먹고 있는 것을 다 알았다. 그리하여 여러 번 미녀를 바치니, 왕이 이로부터 매우 총애하고 신임하여, 숭재의 집 4면에 있는 인가 40여 채를 헐어내고 담을 쌓아 창덕궁과 맞닿게 하였다. 그리고 매양 거기에 가서 마시고 노래하면서 밤을 새웠는데, 숭재는 그 누이동생인 왕족 이상(李湘)의 처를 (왕에게) 시침(侍寢)하게 하였으며, 왕은 (임숭재의 아내인 휘숙)옹주까지 아울러 간통하였다.

(중략) 숭재는 노래와 춤이 능하였고 활쏘기에 말타기도 약간 알았으므로, 왕이 기뻐하여 혹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활도 쏘고 말도 달리는데 날마다 숭재와 짝이 되었다. 숭재도 스스로 은총만을 믿고 그 아비와 더불어 날마다 흉모를 꾸며, 혐의 있는 자는 보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자기에게 붙는 자는 비록 비천한 무리라도 반드시 천거하여 쓰게 하였으므로, 조정을 흐리게 하고 왕의 악을 점점 더 자라게 하는 데에 못하는 일이 없었다.

왕이 그가 병들어 괴로워한다는 말을 듣고 내시를 보내어 '할 말이 무엇인가' 물으니, (임숭재가) 대답하기를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다만 아직 (왕에게) 미인을 바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라고 하였다. 그가 죽자 왕은 몹시 슬퍼했다." - 연산군일기 60권, 연산군 11년 11월 1일 '풍원위 임숭재의 졸기(卒記. obituary)'

연산군은 그런 임숭재를 매우 총애했다. "대간이 임숭재 등의 일을 논하였는데 (왕이) 들어주지 않았다"는 기록은 연산군 10년 2월 12일·13일·14일·17일·18일, 같은해 3월 5일·6일·7일 등 일기에 무수히 나온다. 실록에 따르면 왕은 오히려 그런 임숭재에게 벼슬을 더하고 곡식과 노비, 심지어 자신이 죽인 이복동생(봉안군)의 첩까지 내려줬다. 임숭재의 가자(승진 및 연봉인상)에 반대한 신하는 죽어서 시체가 된 후에 목이 잘리는 치욕을 당했다. 그야말로 환상, 아니 '환장'의 콤비다.

폭군이 총신을 간신으로 키워내는 것인가, 아니면 간신이 임금을 폭군으로 만드는 것인가. 닭과 달걀의 관계이고 쌍방 모두의 책임이겠지만, 황당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비상계엄으로 막을 내린 최근 윤석열 정부의 사례를 보더라도 적어도 '간신들 말에만 귀기울이면 폭군이 된다'는 것이 역사적 진리임은 명약관화하다.

윤석열을 망친 '간신'은 누구였나. 물론 누구나 한 사람을 대표적으로 떠올릴 터이나, '최고 존엄'이니 'V0(브이제로)'이니 하던 그 사람도 심지어 비상계엄은 몰랐다고(당일 성형외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윤석열의 망상적 계엄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친 것은 그가 즐겨본다던 극우 유튜브의 세계관이다.

어디 (전) 대통령만의 일이랴. 대통령을 흔히들 군주제 시절의 왕에 비유하지만,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 권력의 최종적 정당성은 대통령이 아니라 집단적 의미의 시민에게 있다. 특히 12.3 사태를 저지른 대통령을 쫓아낸 '주권자 국민'도, 최소한 그 일부는 윤석열을 섬겼던 간신들에 의해 눈과 귀가 가려져 있다. 극단적 정치 유튜브 말이다.

파시즘, 인종주의, 부정선거 음모론, 안티-페미니즘 등을 퍼뜨리는 극우 유튜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반대편에서 진보 지향 포퓰리즘에 경도된 이들의 위험성 역시 지적된다. 민주당 내 일부 소신파 의원이나 진보성향 언론도 최근 '유튜브 정치'의 위험성을 공개 지적하며 특히 범진보진영 최대의 '인플루언서'가 된 김어준의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최고의 권력이라는 '주권자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한 유튜버들은 이들에게는 정치와 언론의 기능을 대체했다. 동시에 정치와 언론은 유튜브에 종속됐다.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은 친여 유튜버 채널에,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극우·강경보수 유튜브 방송에 나가 '간택'을 받으려 안간힘을 쓴다. 실제로 양당 지도부는 정치권 안팎에서 '김어준 픽(pick)'이니 '전한길 픽'이니 하는 말로 불리는 이들이 요직을 꿰찼다.

'주권자'의 총신(寵臣)이 된 이들 유튜버들이란 어떤 이들인가. 주지의 사실이지만, 유튜브는 시청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 알고 싶어하는 사실만을 알려준다. 듣기 싫은 말, 알기 싫은 사실을 알려주는 유투버는 선택(즉 '좋·댓·구·알'!)을 받지 못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로 인해 시청자의 정치적 확증편향이 강화된다. 이른바 반향실(에코 챔버) 효과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나 중국 역사를 보나 왕조시대의 '주권자' 즉 군주들은 늘 다음과 같은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듣기좋은 참언에만 귀를 기울이지 마소서',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입니다',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들으소서.' 우리 '국민 주권자' 마마들도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TV 사극으로, <삼국지> 등 역사소설과 시대물로 다년간 학습해온 바다.

실제로 과거 조선 군주에게 올려지는 충언은 혹독했다. 남명 조식은 명종 임금의 어머니(문정왕후)를 '선왕의 과부가 나랏일을 어떻게 수습하겠느냐'고 '극딜'했고, 면암 최익현은 고종 임금의 아버지(흥선대원군)에 대해 '문신도 무신도 아닌 일개 종친은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일갈했다. 율곡 이이는 선조의 면전에서 '공부 좀 하라'는 취지의 지적을 하기도 했다. (선조실록 9권. "전하께서는 자질이 탁월하시니, 성학聖學을 하지 않는 것이지 능력이 없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권자 국민'에게는 지금 아무도 이런 말을 건네지 않는다. 정치학자와 전문가들이 간혹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나, 일부 '주권자 국민'의 귀에는 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유튜버들이 내는 소음이 귀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김만흠은 "민주적 대변 기능을 해야 할 정당은 권력 이권의 카르텔 세력으로 변질됐고, 자유인이자 주권자인 시민의 상당수는 진영정치에 휩쓸린 디지털 군중이 돼있다"며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선거와 다수결 정도로만 남아있다"고 탄식한다. (7.24 <주간한국> 기고)

'국민주권'은 곧 국회와 관료집단, 사법부 등을 이익집단으로 묘사하고 일반 시민들의 의사가 직접 정치에 반영되는 직접민주주의에의 요구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대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많은 사람들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현실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대의민주주의가 더 우월한 체제"(2017. <양손잡이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펴냄)라고 지적한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되고 각 분야가 전문화된 복잡한 사회이고, 현대의 시민들은 전쟁·농업·철학만 알면 됐던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보다 훨신 바쁘고 다양화된 존재다.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전문적으로 정치에 전념해 통치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종류의 직업인"이 필요하게 됐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최 교수는 12.3 사태를 겪은 한국민이 주목해야 할 지점을 언급한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보더라도 직접민주주의 때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참여의 폭도 넓었고 잘못된 통치자를 폭력 없이 퇴출시키는 데 있어서도 더 우월한 효과를 가졌다"(같은 책)라는 대목이다. 12.3 사태를 저지른 '잘못된 통치자를 폭력 없이 퇴출시키는 효과'는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통해 달성됐다. 우리 헌법이 추구한 삼권의 분립에 의해, 행정 수반에 대한 입법부-사법부의 견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한 사례다.

만약 정치권에서 연일 회자되는 '국민주권정부', '당원주권정당'이라는 슬로건이 직접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권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전제가 돼야 한다. 어려서부터 제왕교육을 받아온 선조에게도 율곡은 '성학(聖學)을 하셔야 한다'고 간언하지 않았나. 정치 유튜버의 참언만 듣게 할 게 아니라, 현대의 제왕학인 정치학·외교학과 경제학 등 사회과학을 학습하고, 사실과 법령 등 기준에 따라 스스로 현안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에 대한 타인의 비판까지 경청해야 한다. 왕조 시대의 군주이든, '주권자 국민'이든, 국가적 사안의 결정권자라면 예외 없이 응당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폭군이 달리 폭군이겠는가.

만약 그 슬로건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국민주권에 대한 존중은 정치의 대전제로만 남겨두고 제도 내에서 권력기관 간의 조화와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여론조사·당원투표로 표집된 '국민의 뜻', '당원의 뜻'을 내세워 제도를 파괴하려 하지 말고, 대화와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와 언론이, 다수의 전제라는 '폭군'의 한낱 광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국민주권-직접선출권력-간접선출권력이라는 서열화는 자칫 정치학자들이 경계한 다수의 전제로 흐를 염려가 있어 위험하다. 왕의 총애를 업고 사적 원한을 보복하고, 패거리에게 좋은 자리를 나눠주고, '왕의 악을 점점 자라게'했다는 임숭재와 '주권자 국민'이란 미명 아래 행해지는 전횡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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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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