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취소한다."
지난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국민소송인단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낸 새만금 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 선고공판에서 이렇게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국토교통부가 새만금 신공항 계획을 수립하면서 조류 충돌 위험을 부실하게 평가했고 평가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으며, 사업지 내 서식하는 법정보호종 조류 및 인근 서천갯벌의 보존에 미치는 영향도 부실하게 조사하고 구체적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생태계 훼손과 환경파괴 등 환경문제를 이유로 국책사업을 위법하다고 판단한, 유례를 찾기 힘든 획기적인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은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이 0.479(1점 만점)에 불과해 사실상 경제성이 없으며, 신공항 건설로 달성하려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공익이 침해될 공익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공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태계 훼손 등 사회 전체적인 공익을 침해한다면 사업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향후 전국에서 지역발전을 주장하며 무분별하게 시도되고 있는 공항과 케이블카 건설 사업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새만금 개발사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대하고 명백한 잘못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전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06년 대법원은 새만금 매립을 중지해달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새만금엔 33㎞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완성됐다. 그렇게 방조제 안쪽의 갯벌 등 생태계는 파괴됐고 죽음의 땅으로 변해갔다.
새만금 개발사업의 흑역사는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태우 대선 후보가 새만금 간척사업을 공약으로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갯벌 등 환경파괴와 경제성 부족 문제로 사회적 논란이 오랜 기간 계속됐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계획을 바꿔가며 지역 개발과 균형발전 등을 이유로 사업은 중단 없이 진행됐다. 물론, 장밋빛 청사진이 바뀔 때마다 사업이 변경됐고 이도 저도 아닌 사업이 되어가면서 사업 진척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2024년 6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동해 심해 유전 탐사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직접 브리핑했다. 동해에 최대 140억 배럴의 가스·석유가 매장됐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직접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실패 가능성을 고려해 보도자료만 배포하는 수준으로 공개할 예정이었던 사업이었다. 대통령이 갑자기 직접 발표한 배경과 유망성 평가 업체의 선정 과정 및 신뢰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탐사 시추까지 강행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약 1200억 원이 넘는 예산 투입과 사회적 혼란만 남긴 채 실패로 종결됐다. 시추 인근 지역 어민들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석유공사가 심해 유전 탐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용인시 처인구에 들어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산단에는 약 10GW(기가와트)의 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수도권 전력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이미 용인에 조성하고 있는 반도체 일반산업단지에 필요한 6GW를 포함하면 총 16GW 규모의 전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중 3GW는 LNG발전소 신규 건설을 통해 확보하고, 7GW는 호남권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장거리 송전선로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728만㎡(제곱미터) 부지에 대규모 반도체 제조공장 6기와 60개 이상의 협력기업이 입주하는 국가 전략사업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16GW)은 2024년 기준 국내 전체 전력수요(약 97GW)의 16.5%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면적의 1.9%에 불과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이렇게 많은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면적당 전력은 서울의 32배에 달한다.
이재명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과 분산형 에너지 체계 구축,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하며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RE100 산단은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해당 지역 산업과 주민에게 우선 공급하는 분산형 체계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RE100 산업단지 구축 정책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계획은 재검토나 중단 등 어떠한 논의도 없고 오히려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국가적인 혼란 시기에 국토교통부의 이례적으로 빠른 산업단지 계획 승인과 작년 6월 한국전력공사의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대한 일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따른 결과라고는 하지만, 이재명 정부 역시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방 전력을 수도권으로 집중시키는 구조를 더 고착시키고 7GW의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총연장 1153km에 달하는 고압 송전선로를 전국 각지에 건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 확보 문제도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에서 사용되는 공업용수는 하루 167만 톤으로 서울시 하루 사용량의 60%에 달한다. 수도권 상수원인 팔당댐을 통해 공급할 수 있는 최대치는 하루 77만 톤으로, 90만 톤이 부족하다. 정부는 60만 톤을 화천댐을 통해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나머지 30만 톤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이 없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달 30일 ‘기후대응댐’ 명목으로 추진했던 14개 댐 중 7개의 건설을 중단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충분한 조사나 검토가 미흡했고, 기후대응댐으로 부르기 부족한 댐이 무리하게 추진됐다고 자체 평가했다. 이로써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을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세계적 추세가 댐 건설이 아니라 댐 해체를 통해 물에 길을 내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2018년 국가 주도 댐 건설 중단을 선언한 이후 7년 만에 다시 제대로 된 흐름을 찾게 됐다.
그리고 지난 1일, 환경부를 확대 개편한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공식 출범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출범사에서 "기후부의 출범은 절박한 현실 속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탄소문명을 종식하고 탈탄소 녹색문명으로 대전환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진정한 기후위기 대응 컨트롤타워로서 전환을 향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 로드맵의 첫걸음은 탄소중립을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의 전면 재검토가 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단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기후위기 대응과 지역 불평등 완화를 위한 최적의 입지와 대책은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최적의 시기다. "시계를 34년 전으로 돌린다면 새만금 사업에 반대할 것이다"라는 후회를 34년 후에 용인 반도체 사업에 대해 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의 흑역사는 새만금으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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