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청으로 영국에 두 번째로 국빈 방문한 가운데, 2019년 수감중에 사망한 아동 성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일주일전 해임된 주미 영국대사와 맞물려 더욱 부각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차남 앤드류 왕자, 그리고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모습이 담긴 정지 화면과 영상이 윈저 성벽에 투사됐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 역시 4명의 시위대가 이러한 영상을 투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면서, 경찰이 이들을 악의적인 통신을 실행한 혐의로 체포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8일 미국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가 20여 년 전 엡스타인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생일 편지를 공개했다"며 "이 편지는 엡스타인 피해자들의 사진, 사건 관련 뉴스 영상, 경찰 보고서와 함께 성에 투사됐다"고 전했다.

미국 방송 CNN은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8일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이었던 2003년 그가 받은 238쪽 분량의 편지를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에게 보낸 것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최근 해임된 맨델슨 주미 영국대사가 엡스타인에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쓴 편지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맨델슨 대사는 편지의 진위에 대해 부인하지 않으면서 "매우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그는 엡스타인이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은 엡스타인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맨델슨 대사가 계속 그를 지지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메일을 연이어 공개했고, 결국 이메일이 공개된 다음날인 11일 그는 해임됐다.
이를 두고 CNN은 "피터 맨델슨의 해임은 (키어) 스타머(영국 총리)에게 민감한 (미국과) 정상회담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 위험이 있다"며 "고전하고 있는 노동당 정부가 미국과 관계를 심화할 기회로 홍보했던 (정상회담) 자리가 이제는 스타머가 맨델슨을 임명한 판단력, 그리고 트럼프와 엡스타인 관계에 대한 의문으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맨델슨 대사는 엡스타인과 친분을 인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서명과 함께 여성의 신체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메시지를 적은 편지를 엡스타인에게 전했다. 또 이날 공개된 다른 편지에서는 엡스타인이 "완전 가치가 떨어진 성을 2만 2500달러에 트럼프에게 판다"는 식의 문구도 있었다.
이에 대해 9일 캐롤라잇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아니라면서 "대통령은 절대 그것에 서명하지 않았다"라고 말해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관계를 부인했다. 또 이 편지를 지난 7월 20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을 상대로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이 이처럼 엡스타인과 관계를 강력하게 부인하는 이유는 엡스타인이 정‧관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성접대를 했고 이를 기록한 명단이 있으며, 여기에는 트럼프도 포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된 편지가 쓰여진 때인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엡스타인과 가까이 지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2년 <뉴욕매거진>과 인터뷰에서도 엡스타인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함께 있으면 매우 재밌다. 엡스타인이 예쁜 여자들을 나만큼이나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으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과 오랜 기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CNN은 "맨델슨 대사가 엡스타인과 관계로 인해 신속하게 해임된 일은, 트럼프가 자신과 엡스타인 간 관계를 축소하려 했고 사람들이 그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해왔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킬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 방문 중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방송은 엡스타인 스캔들이 스타머 총리에게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방송은 "스타머 총리는 양국 간 급속도로 발전하는 무역 관계에 주목하고자 할 것이다. 15일 영국과 미국의 원자력 에너지 협정도 발표했는데, 이 협정은 기업들이 양국에 신규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방송은 "이러한 일들이 엡스타인 스캔들의 파장을 잠재우기에 충분한지는 불확실하다"라며 스타머 총리가 캐런 피어스 주미 대사를 맨델슨 대사로 교체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영국에 도착해 2박 3일의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했다.그는 17일 윈저성에서 찰스 3세 국왕과 커밀라 왕비, 윌리엄 왕세자 부부를 만날 예정이다. 이날 저녁 국빈 만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찰스 3세의 연설도 예정돼 있다. 이어 18일에는 총리 별장인 체커스에서 스타머 총리와 회담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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