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조 원 약속하고 관세 15%로 낮춘 일본…한국도 수백조 갖다 바쳐야 하나

미, 16일부터 일본산 자동차 관세 15%로 인하…여한구 본부장 "우리도 빨리 적용되도록"

미국이 오는 16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일본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를 15%로 하향 조정한다. 일본의 자금으로 투자하는 사업의 이익을 미국이 대부분 가져가는 조건으로 합의된 결과다. 막판 무역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도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따르게 될지 주목된다.

15일 미 정부는 연방관보를 통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일본산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15%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 27.5%로 부과되던 일본산 자동차 관세는 15%로 인하됐다.

미일 양측은 지난 7월 22일 무역 협상을 타결해 자동차 관세를 낮추기로 했으나 이후 세부 내용을 두고 해석 차이를 보이면서 해당 관세 인하는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이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워싱턴에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함에 따라 양측의 무역 협상은 문서화가 이뤄졌다.

문서화된 미일 간 무역 협정은 일본에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다. 미 허드슨 연구소가 공개한 양해각서의 세부 내용에 따르면 일본은 트럼프 정부 임기 내에 5500억 달러(한화 약 760조 원)를 배정해야 하며, 투자 대상은 반도체, 제약, 중요 광물, 금속, 조선, 에너지(파이프라인 포함),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핵심 전략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

또 일본의 자금으로 투자를 하지만, 투자처 결정은 미국 대통령이 하는 구조다. 대통령은 투자를 권고하고 감독하는 투자위원회를 구성하고 상무부 장관이 위원회 의장을 맡게 된다. 위원들은 미일 양국에서 지명된 위원들로 구성되지만,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투자 프로젝트를 결정한다.

물론 일본은 미국 대통령의 승인 하에 결정된 프로젝트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에 대응하여 일본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어 사실상 일본의 거부가 쉽지 않은 조건에 있다.

여기에 일본과 미국은 일본이 투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프로젝트 수익을 균등하게, 즉 50%씩 가져간다. 이후 수익금은 미국이 90%, 일본이 10%의 비율로 지급된다. 이는 러트닉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 이후 "이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고 주장한 것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불평등 조약이라 불릴 만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차라리 관세를 내는 것이 낫다는 조언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지난 11일 센터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 이같이 주장하면서 한국의 경우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는 관세가 15%에서 25%로 올라가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25억 달러 감소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는 것이 적절한 판단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실제 미일 양해각서와 같이 한미 양국도 투자에 따른 수익금을 초기에는 절반, 투자금 회수 이후에는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방식이라면, 베이커의 주장대로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금액을 수출 업체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일 수도 있다.

투자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 내에 특수목적법인(SPC)를 만들고 여기에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넣으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한국 외환보유고인 4162억9000만 달러의 84.1%에 달하는 수치라 정부가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한미 양국의 협의는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워싱턴 D.C에서 실무협의를 진행했고 이어 12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회담이 있었으나 이 회담에서도 합의를 보지는 못했다.

후속 협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하는 중"이라며 "일희일비하기 보다 우리는 국익에 최대한 부합하게 합리적인 협상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전체를 보고 이해해달라"라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일본산 자동차 품목 관세 인하 조치가 16일부터 시작되는 데 대해 "우리도 최대한 빨리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의견을 다 분석하고 있다. 어떤 것이 우리한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미 NBC 방송에 출연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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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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