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의 저명한 우익 활동가 찰리 커크가 암살된 뒤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사례가 발생하며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내세운 소위 '표현의 자유'가 이중잣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급진 좌파" 책임을 주장하는 데 이어 공화당 한 의원은 애도의 뜻이 담기지 않은 온라인 게시글 작성자의 신원을 공개하며 해임을 적극 촉구하기도 했다.
공화당에선 "검열"이라고 주장했던 소셜미디어(SNS) 내 혐오 게시글에 대한 플랫폼 기업의 단속 요구도 나왔다. 체포된 커크 암살 용의자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며 범행 동기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이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커크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그를 애도하지 않는 견해를 온라인에서 밝힌 이들이 공화당원 및 극우 활동가들의 "조직적 운동의 표적"이 돼 적어도 15명이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인터뷰, 공식 성명, 지역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종합한 수치로 언론인, 학자, 교사, 나스닥 직원 등이 포함됐다. 통신은 해고를 면한 이들도 온라인 괴롭힘, 해임을 요구하는 사무실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격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 유타주 유타밸리 대학 행사 중 총에 맞은 커크의 사망 소식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알리고 애도하는 동시에 "급진 좌파"에 책임을 돌렸다. 범행 동기는 물론이고 용의자 체포 여부조차 불분명한 시점이었다. 12일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22)이 체포가 발표됐지만 동기는 14일까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나아가 공화당 소속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커크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게시글을 올린 이들의 직업, 사진 등을 연이어 공개하며 해임을 촉구 중이다. <AP> 통신 등을 보면 블랙번 의원이 해임을 촉구한 미 미들테네시주립대 부학장, 컴벌랜드대 교수 등이 실제로 해고됐다. 블랙번 의원은 신상 공개 과정에서 "급진 좌파 미치광이" 등 막말을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급진 좌파"의 거친 수사가 커크의 죽음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진보적 견해가 중심을 이루는 미국 대학에 보수 학생 조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 커크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였고 지난 대선에서 젊은 층에서 트럼프 지지 기반 확대에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커크는 성소수자 권리에 반대했고 확고한 총기 소유권 옹호자였다. 논쟁을 즐겼지만 2020년 경찰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쓰레기"로 칭할 정도로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인종 평등을 요구하는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촉발했다.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에선 커크의 죽음에 동정적이지 않은 소셜미디어 게시글 작성자에 대한 강경 대응이 연일 나오는 중이다. 숀 더피 미 교통장관은 지난 주말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폭력을 미화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며 "찰리 커크 암살을 축하하다 적발된 아메리칸항공 조종사들은 즉시 운항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랜도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1일 커크 살해를 "찬양하거나 합리화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외국인은 "우리나라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며 "우리 영사관 직원들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명령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클레이 히긴스 하원의원은 지난 1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회 권한과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찰리 커크 암살을 비하하는 게시글 작성자를 즉시 영구적으로 차단하겠다"며 "빅테크 기업이 폭력적인 정치적 혐오 게시글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고 모든 플랫폼에서 이용자를 영구 차단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러한 대응은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소위 '표현의 자유' 보장에 어긋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미국 우파는 소셜미디어에서 성소수자, 여성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보호하고 선동을 방지하기 위한 플랫폼의 혐오 표현 및 허위 정보 규제를 비판해 왔다. 이러한 규제는 온라인에서 소수자에 대한 공격을 예방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공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지만, 트럼프와 머스크 등은 거꾸로 이를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간 표현의 자유 개념을 완전히 반대로 사용해 온 트럼프 정부가 중요한 정치적 동맹인 커크가 살해되자 자기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20일 취임 첫날 "지난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미국인의 발언을 검열해 표현의 자유 권리를 짓밟았다"고 주장하며 연방정부 구성원들이 "미국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침해하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의 현 대응은 우파가 가하는 혐오 표현에 대해선 면죄부를 주고 우파를 겨눈 유사한 행위에 대해선 처벌을 요구하는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적 수사에 대한 분노는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며 트럼프 자신이 최근 유력한 뉴욕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를 근거 없이 "공산주의자"로, 민주당을 "악인 집단", 원치 않는 질문을 한 기자를 "매우 악한 사람"이라고 칭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1년 1월6일 미 의사당 폭동을 벌인 자신의 지지자들을 사면하는 등 정치적 폭력에 대한 대응도 때에 따라 다르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커크 살해와 관련해 "미치광이 급진 좌파 집단, 진짜 완전한 광인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선동적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12일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투표소에서 복수"를 촉구하며 복수를 원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커크 암살을 계기로 미국에서 정치적 공격이 일어나고 있지만 용의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아 정작 범행 동기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공화당 소속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14일 미 NBC 방송에 세부 정보를 밝히지 않은 채 용의자가 "좌파 이념"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용의자는 당적이 없고 그의 부모는 공화당원으로 등록돼 있었다고 한다.
용의자는 복수의 탄피에 메시지를 남겼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행어가 대부분으로, 분명한 정치적 신호로 해석하거나 커크 총격 사건과 직접 연관된 것인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콕스 주지사는 NBC에 용의자가 "깊고 어두운 인터넷" 세계에 빠져 지냈다며 "지난 5~6년간 우리가 목도한 모든 암살 및 암살 시도 사건에 소셜미디어가 직접적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관련해 소셜미디어가 "'암'이라는 표현조차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의자의 연인이자 동거인이 "성전환 과정 중"에 있다고 확인했지만 이 관계가 사건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선 "확실히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콕스 주지사는 용의자의 동거인이 사건에 대해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고 조사에 매우 협조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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