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관세를 내거나 협정을 수용하라"고 압박한 데 대해 대통령실은 12일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한미 관세협상 문제를 언급하며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미국 방문 당시 관세 협상에 최종 서명하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좋으면 사인해야 하는데, 이익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며 미국 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대해 러트닉 장관이 서명을 마친 일본과 대비하며 "유연함은 없다"고 압박하면서 관세 협상이 다시 난항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앞서 한미는 한국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으나, 투자 패키지 구성과 투자 이익 배분 등을 둘러싼 후속 협상이 교착에 빠졌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한국이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국가별 관세를 25%로 되돌리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러트닉 장관과의 후속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지만, 미국이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쟁점은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이다. 미국은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펀드 형태로 운용하고 수익을 50대 50으로 배분하되 이후 발생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가는 형태로 맺은 일본과의 합의를 준용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기업 주도 투자에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하는 방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3500억 달러 투자와 관련해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진전은 많지 않다"며 "세부 사항에 큰 입장 차이가 있어서 조율할 것이 많다"고 했다.
위 실장은 다만 러트닉 장관의 강경한 압박 발언 등에 대해선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레토릭이 있지만 개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협의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발언보다는 협상장에서 서로 주고받는 입장문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자동차 관세가 조만간 25%에서 15%로 낮아지는 일본에 비해 10%포인트 높은 관세율 부담을 안은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에 악영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은 오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엔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대미 투자와 안보 문제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한층 거세질 수 있어 이 대통령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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