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진핑 옆보다 원산에서 트럼프와 사진 찍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페이스메이커'만 하기에는…

미러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 중국의 세계 2차대전 80주년 승전 기념일까지 동북아를 둘러싼 외교 이벤트가 연이어 이어지면서 한국이 지금 어떤 대외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상임고문은 3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가진 대담에서 지난 3일 열린 전승절 행사와 관련 "10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올랐던 베이징 텐안먼 망루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리했다"며 남북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전날인 2일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언급했다. 이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강조하고 다자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망가뜨렸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박 상임고문은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군대를 파견하면서 러시아와 긴밀해졌고 이번에 중국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에 시 주석 및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자리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와 북한 모두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며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처럼 최근 국제정세가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평화와 안전, 번영을 추구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미국으로부터는 관세를 비롯해 안보 문제와 관련한 압박을 받고 있고 북한은 남북관계를 도외시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반(反)서방연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과 상대하는 것도 큰일인 와중에 북중, 북러의 밀착 문제까지 얹어진 셈"이라고 우려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앞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이 상당히 혼선을 빚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국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만나라고 했는데,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저렇게 스크럼을 짜고 있는 상황이라면 트럼프가 김정은을 불러낸다고 해서 호락호락하게 나올지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본인이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고 이야기한 점을 강조하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동결 → 감축 → 비핵화'로 이어지는 방안을 이야기했는데,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서 동결과 감축 단계까지 미국이 해결 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적어도 북한과 회담을 시작하려면 동결과 감축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이 주어질 것인가에 대해 확실한 사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북한이 회담에 나오기 때문"이라며 북핵 동결에 대한 반대급부로 유엔 대북 제재 해제, 수교로 나아가기 위한 대표부 설치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내부 측면에서 보면 '지방발전 20X10' 정책과 '국가경제발전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경제 제재를 상당 부분 해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는 10월에 열릴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원산-갈마 지역이라면 해볼 수도 있지 않나 싶다"며 김 위원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곳에 트럼프가 직접 온다면 미국이 북핵 동결이나 감축을 위해 준비해야 할 반대급부도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갈마에서 만나자고 하면 김정은도 응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텐안먼 성루에서 시진핑 옆에 서있는 것보다도 원산-갈마 단지에서 트럼프와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고문 역시 "트럼프 입장에서는 원산에 갈 만한 내부적 요인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고, 또 제프리 엡스타인의 소아 성매매 스캔들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라는 평가도 있다"며 트럼프 입장에서 그나마 제일 쉽게 풀 수 있는 과제가 북한 문제이긴 하다"라고 평가했다.

대담은 지난 3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전범으로 회부됐는데 미국 영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가 푸틴 대통령을 영접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회담은 당초 7시간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2시간 반 만에 종료됐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이 즉각 휴전을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고, 이후 유럽 정상들이 백악관에 쫓아가서 미국에 휴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회담의 결과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없애기 위한 평화협정에 사실상 찬성한 셈이다.

그런가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미국에 방문했는데 해방 이후 처음으로 직접 미국을 가지 않고 일본에 먼저 갔다가 미국에 방문한 대통령이 됐다. 미국이 한일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길 원하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일본에 들른 것이라는 추측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미국이 관세를 가지고 난폭하게 행동을 하다 보니 한일 양국이 공동대응을 해야겠다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미 정상회담의 경우 비교적 미국과 회담에 선방하면서 외교 참사는 벗어났다는 평가 속에 양측 간 합의문이 나온 것도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세부적인 협의를 할지가 중요한 상황이 됐다.

이어 지난 3일에는 10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올랐던 베이징 텐안먼 망루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리했다. 전날인 2일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새로운 제안을 했는데 지금까지 세계 안보, 발전, 문명 이니셔티브를 이야기했지만 이번에는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언급했다. 이는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강조하고 다자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망가뜨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군대를 파견하면서 러시아와 긴밀해졌고 이번에 중국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에 시 주석 및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자리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와 북한 모두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인 이른바 '다극 질서'를 모색하는 세력들이 존재감을 발휘한 측면도 있다.

일례로 '시베리아의 힘'이라는 러시아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있는데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 양국은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프로젝트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국제정세가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평화와 안전, 번영을 추구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미국으로부터는 관세를 비롯해 안보 문제와 관련한 압박을 받고 있고 북한은 남북관계를 도외시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반(反)서방연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과 상대하는 것도 큰일인 와중에 북중, 북러의 밀착 문제까지 얹어진 셈인데,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문제다.

정세현 : 전승절 행사 직전에 SCO가 있었는데 각 행사의 성격이 다르다. 일단 SCO의 경우 중국이 자국 중심의 경제 질서를 구축해 나가려는 디딤돌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SCO에서 푸틴 손을 잡아끌고 시진핑과 만나기도 했는데, 중국과 러시아, 인도 중심의 반미 경제 그룹을 만들겠다는 신호로도 보였다.

전승절 행사의 경우 시진핑과 김정은, 푸틴이 나란히 섰는데 동북아시아의 핵 보유국이 스크럼을 짠 형세가 됐다. 즉 전승절 행사는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에 대응하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데 거기에 저항하려는 중국이 군사적으로는 북한과 러시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힘겨루기 또는 대응하려는 의미가 있다.

즉 전승절은 중국 중심의 군사적 대응 능력을 강화해서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겠다는 성격이 있고, SCO는 중국 중심의 경제 질서를 강화해서 미국이 동북아 경제 문제를 흔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에 앞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이 상당히 혼선을 맞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국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만나라고 했는데, 세 국가가 저렇게 스크럼을 짜고 있는 상황이라면 트럼프가 김정은을 불러낸다고 해서 김정은이 호락호락하게 나올지 의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중국 입장에서는 동북아에서 영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측면도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 3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텐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오른쪽에서 두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왼쪽에서 두 번째)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참석해 사열하는 중국인민군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박인규 : 인도는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국가 중 한 곳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러시아 원유를 구입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50% 관세를 부과 받았다. 그래서 이번 인도의 SCO 참석을 두고 존 미어샤이머 등의 학자는 미국이 관세 때문에 인도를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도는 SCO에는 참석했으나 전승절 행사에는 가지 않았고, 또 중국에 가기 전에 일본에 들르기도 했다. 여러 곳에 보험을 들어놓은 셈이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를 해달라고 하고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도 어렵다면서 사실상 미국 쪽에 더 밀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다면 앞으로 중국과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주요한 과제로 보인다.

10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곧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서 그 때 중국 협조를 얻기 위해 텐안먼 망루에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망루에 올라갔다. 2010년대만 해도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소외됐었는데 입장이 달라진 셈이다.

정세현 :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갔다고 본다. 북미 정상회담의 경우 트럼프가 올해 안에 김정은과 만나고 싶다면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데 핵 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한 마당에 비핵화를 목표로 한 북미 정상회담이 처음부터 성사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동결 → 감축 → 비핵화'로 이어지는 방안을 이야기했는데, 이건 트럼프가 이미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불렀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도 적절한 대안으로 본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동결에 대해 어떤 반대급부가 제공돼야 할지가 관건인데, 이재명 대통령이 스스로를 '페이스메이커'라고 규정한 만큼,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서 동결과 감축 단계까지는 미국이 해결 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적어도 북한과 회담을 시작하려면 동결과 감축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이 주어질 것인가에 대해 확실한 사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북한이 회담에 나오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고집하거나 그냥 만나자고 하면 북한은 회담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나올 때까지 버티자는 것만으로는 북미 정상회담의 접점을 만들 수 없다.

그 반대급부를 미국이 얼마나 들어줄지가 핵심이다. 물론 반대급부를 받은 북한이 그 정도로는 안된다고 선을 그어버리면 시작도 못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북한이 만족할만한 반대급부를 실현시키면 미국이 다소 손해를 보거나, 그간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유엔의 제재를 주도한 미국의 입장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러니 북한이 나오고 싶도록 하는 반대급부를 구상하고 설득하는 역할은 한국 정부가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보고 우리가 그 때 가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페이스메이커로서 구체적으로 반대급부를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가령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유엔 대북 제재 중에 일부분을 해제하고, 감축까지 가면 그보다 더 많은 제재를 해제하고 북미수교 준비 차원에서 양국이 일반대표부를 교환 설치한다든지 정도의 반대급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평화와 관련해 일정 부분 업적을 내고 내년 미 중간선거 전에 성과를 내서 내년 말에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다는 건데, 이런 부분을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앞서 이야기한 정도의 반대급부면 회담 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해 넘기고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승절 행사 전후로 핵 보유국 간에 어떤 협조가 오고 갔는지도 좀 챙겨봐야 한다. 아마도 러시아가 파병 대가로 북한에 지난해 10월 31일 시험발사 성공했다는 화성 19형 단탄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보다 훨씬 높은 성능의 기술을 주지 않았나 싶다.

북한이 이 미사일을 화성 20형이라고 이름지었던데 다탄두에 사거리 역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그런 정도의 기술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로 왔다고 본다면 미국으로서는 이를 별 것 아니라고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북한이 아직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데, 러시아에서 이 기술을 보장 받으면 미국이 그대로 두고 보긴 힘들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한미 간 정보 공유도 필요하다.

만약 화성 20형이 재진입을 비롯해 여러 기술이 확보됐다면 10월 10일 당 창건 80주년 행사 때 북한이 이를 김일성 광장으로 가지고 나올 수도 있다. 이걸 보여주고 미국과 협상을 할 가능성도 있다. 몸값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미사일총국 산하 화학재료종합연구원 연구소를 방문해 탄소섬유복합재료를 이용한 대출력 고체발동기 제작 및 지상분출시험 결과를 보고받고 계열생산토대구축 문제를 협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편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러시아 파병 끝나면 더 이상 러시아로부터 자금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 입장에서는 손 벌릴 곳이 없으니 중국에 가게 된 것이다. 이번 수행원에 김덕훈 당 경제부장이 포함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꾸준한 지원이 들어와야 2024~2033년을 회기연도로 설정해 놓은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북한 보도를 보면 지난해 20개 공장을 지었는데 그 중에 원부자재 부족으로 가동이 안되는 곳도 있어 보인다. 유엔 대북 제재 때문에 무역이 많이 막혀서 그런 것이다.

올해 새로운 공장을 짓는 것도 진척이 어려워 보인다. 인력 문제도 있는데 러시아에 많은 군 인력을 보내지 않았나. 장비 부족해서 전부 사람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결국 중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전승절이 좋은 계기가 된 셈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북중 간 경제 협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긴 어렵다. 중국도 미국 눈치는 봐야하지 않겠나. 다만 중앙 정부 차원이 아니라 성급에서 보따리 무역만 허용해도 북한의 장마당은 돌아갈 수 있으니 일정 부분 영향은 있을 것이다.

지금 북한 기차역 주변에 이른바 '꽃제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그래도 뭘 가져오는 사람들이니까 그거라도 얻어먹으려는 것이다. 지방발전 20X10 정책이 근본적으로 밑에서부터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여기에 올해가 넉 달 남았는데 국가경제발전5개년계획을 마감해야 하는 연도다. 그런데 북한 보도를 보면 잘 안되는 것 같다.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제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재 장비가 부족한데 그 전부터 시작한 5개년 계획은 잘 돌아가겠나? 북한 입장에서는 계획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올해 하반기 중에 중국에서 뭔가가 들어와야 한다.

러시아 파병했던 병사들의 장례식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 보면 이 역시 재정 문제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전사자 가족을 관리해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로부터 일정 부분 재정적 지원을 바라고 있을 수 있다.

당시 보도 보니 가족들이 그런 행사에 전부 형형색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 나왔더라. 상복이 따로 없는 것인지, 형편이 어려우면 검은색 옷과 같은 상복을 따로 마련하기도 어렵지 않나.

북한 경제 내부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경제 제재를 상당한 정도 풀어줄 수 있다고 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할 수 있다. 여기에 일본도 일제강점기 배상금을 이야기하다가 접점을 못 찾았지만,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가 납치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아서 이를 고리로 북일 관계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도 있는데, 북미·북일 관계가 개선되어 북한 내부 경제가 돌아가도록 우리가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후에야 남북 정상회담이든 장관급 회담이든 가능하다. 이런 부분을 우리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

박인규 : 9월 말 유엔총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했고 10월 말 경주 에이펙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회동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세전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양측이 체면을 유지하면서, 즉 상대에게 졌다는 인상을 피하면서 상황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데,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공급 및 애플, 테슬라, 월마트의 생산기지가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일방적이고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중 정상을 경주에 불러놓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정세현 :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성과로 내세운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미국 대통령에 '피스메이커'가 돼달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여력이 있으니 북한 내부 경제 문제를 잘 풀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유엔 무대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를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대북 경제 지원을 제기할 수는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워지면 내부적으로 체제 불안정이 높아지고 이를 단속하기 위해 체제가 더 경직되기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 북한 경제가 좋아질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는 유엔총회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에이펙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아져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가 올 수 있다고 본다면 아태지역 국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 북한은 남한이 어떤 입장을 밝히는지 예의주시할 것이다.

박인규 :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비핵화를 거론하면서 한반도까지 같이 엮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냉전 종식 이후 2001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사일방어금지조약(1972년 체결)을 탈퇴하고 2019년에는 중거리미사일금지조약(1987년 체결)을 일방 파기한 탓에 현재 남아있는 핵군비통제 장치는 2010년에 체결해 2026년 2월 만료 예정인 '뉴스타트'(New START·신전략무기감축조약) 밖에 없다.

정세현 : 군비 통제를 위한 동북아 6자회담을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동결과 감축의 토대 위에서 더 이상 북핵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려면 동북아 6국이 모여서 중국과 러시아가 감시 역할을 하고 미국은 더 이상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인규 : 에이펙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만남이 가능할까?

정세현 : 일단 김정은을 경주로 초청하는 것은 김정은이 안오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원산-갈마 지역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은 해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김정은이 워낙 신경을 쓰고 있는 지역이라서 만약 트럼프가 가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원래 미국이 북핵 동결 또는 감축할 때 줘야 할 반대급부보다 덜 주고 갈 수도 있다. 일단 양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보이고 거기서 의제들을 합의하는 식으로 첫 출발을 한 뒤에 실무협상 통해동결과 감축의 구체적인 그림을 차차 그리자는 식의 의견은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동안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나러 해외로 나가지 않았나. 심지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서 남쪽으로 오기도 했고. 그러면 트럼프가 이번에 가는 것도 그렇게 무리는 아니다.

▲ 지난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1시간 여의 면담을 가졌다. ⓒAFP=연합뉴스

박인규 : 트럼프 입장에서는 갈 만한 내부적 요인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고, 또 제프리 엡스타인의 소아 성매매 스캔들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라는 평가도 있다. 무엇이라도 해서 이 문제를 언론에서 가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지난달 15일 급하게 미러 정상회담을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스라엘-가자지구 문제도 해결 기미가 안보이는 상황에 트럼프 입장에서 그나마 제일 쉽게 풀 수 있는 과제가 북한 문제이긴 하다.

정세현 : 갈마에서 만나자고 하면 김정은도 응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텐안먼 성루에서 시진핑 옆에 서있는 것보다도 갈마 단지에서 트럼프와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수 있다.

공항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관광객을 불러들이겠다는 건데, 갈마 시설도 전부 영어 안내가 돼 있었다. 트럼프가 여기 가면 북한은 관광객 유치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서 좋고, 트럼프는 '피스메이커'로서의 업적이나 이미지를 가져가게 되는 것이라 좋을 수 있다.

박인규 : 트럼프 정부를 상대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압력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과 트럼프나 미국의 군사적 모험으로부터 우리가 원치 않게 끌려는 것을 막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정세현 : 이재명 대통령이 '안미경미'를 시사하면서 중국과 관계도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SCO에서 러시아와 인도, 중국 등 세 나라가 3국 체제를 만들 것처럼 모양새를 보여주다 보니 이런 중국과 어떻게 경제협력을 만들어 갈지에 대해 세부적 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군사적으로 중국 편에 설 수는 없으나 경제 협력은 필요한데 지금 중국이 SCO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서 우리가 어디로 뚫고 들어가서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으로부터 국익 지키는 것도 중요한데 중국과 관계 어떤 식으로 구축하고 관리할지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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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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