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선택' 임신중지는 '선택 불가'…거꾸로 가는 美 공화당 주들

플로리다, 학교 포함 모든 백신 접종 의무 폐지 계획·전문가 "백신, 취약층 보호 기능·선택 문제 아냐"…텍사스선 임신중지약 배송 차단법 제정 초읽기

미 플로리다주의 공화당 주정부가 학교를 포함해 주의 모든 백신 접종 의무를 폐지할 계획을 밝혔다. 플로리다가 개인의 선택을 들어 이러한 조치를 취한 반면 또 다른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주에선 임신중지약 판매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안 제정이 초읽기에 들어가 선택권을 더욱 억눌렀다.

3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조셉 라다포 플로리다 공중보건국장은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백신 의무화 폐지 계획을 공개하고 "내가 뭐라고 여러분 아이 몸에 뭘 넣으라고 말하겠나", "내가 뭐라고 여러분에게 자신의 몸에 뭘 하라고 말하겠나"라며 백신 접종은 개인의 선택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세한 설명 없이 백신 접종 의무가 "모두 잘못됐고 경멸과 노예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도 했다.

이러한 계획은 백신음모론자로 유명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장관이 백신 접종 축소 정책을 펴고 있는 중에 나온 것이다. 지난주 이러한 백신 정책 변경에 반대한 수전 모나레즈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이 전격 해임되기도 했다.

백신음모론이 확산되고 예방접종률이 떨어지며 미국에선 25년 전 근절됐던 홍역이 재창궐하는 상황이다. CDC에 따르면 올 초부터 이달 2일까지 미국에서 홍역이 1431건 확진됐다. 2023년 확진이 59건, 지난해 확진이 285건이었던 데 비해 크게 늘었다. 올해 확진 건수 중 92%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백신 접종이 확인되지 않은 사례다. 확진자 중 거의 30%는 5살 미만 어린이였다. CDC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예방접종률이 감소해 2023~2024 학년도의 경우 93%에 못 미쳤다고 설명했다. 목표치인 95%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라다포는 지난해 플로리다에서 홍역이 유행했을 때 학교에서 이에 노출된 어린이들 중 백신 미접종자는 21일간 격리돼야 한다는 보건당국 및 의료계의 일반적 권고를 무시하고 등교를 가정의 선택에 맡겨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2023년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CDC의 공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미국 소아과학과 플로리다 지부장을 맡았던 소아과 의사 리사 그윈은 "이는 단순히 부모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는 고령자, 취약한 사람들, 면역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다. 이 조치가 우리 사회, 공동체, 이웃, 친척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플로리다가 은퇴자들이 몰려드는 전국에서 가장 고령자가 많은 지역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휴양지인 플로리다의 이 조치가 관광객을 통해 다른 주에도 감염병을 확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 감염병학회 회장인 티나 탄은 플로리다의 움직임이 "대재앙이 될 것"이라며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 수차례 창궐하고 번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플로리다 공화당 주정부가 개인의 선택을 명분으로 백신 접종 의무를 폐지하려 하는 반면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에선 여성의 몸에 대한 선택권을 무시하고 임신중지 금지 조치를 강화 중이다. 미국에서 임신중지 금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프로 초이스(pro-choice·선택권 옹호)'로 불린다.

<로이터>, <AP> 통신을 보면 3일 텍사스주 상원은 다른 주에서 우편으로 배송되는 임신중지 약물을 차단하기 위한 법안을 승인했다. 법안은 텍사스 주민이 임신중지 약물을 제조, 유통, 제공하는 회사나 의료 서비스 제공자 등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 원고가 승소하면 최소 10만달러(약 1억4천만원)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약물을 받은 여성은 소송 대상이 아니다.

2022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적 보호(로 대 웨이드 판결)를 철회하며 텍사스를 비롯해 임신중지를 거의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주가 크게 늘었다. 때문에 이들 주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임신중지가 허용된 주에서 약물을 배송 받기를 시도해 왔는데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텍사스에선 이러한 시도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의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에 넘어갔고 애벗 주지사는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 최종 제정 땐 발효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법안에 반대한 캐럴 앨버라도 텍사스 주상원의원은 "이 법은 텍사스인들을 서로 적대하게 할 뿐이다. 약국에서 당신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며 사는 걸 상상해 보라. 모든 대화, 모든 처방, 모든 사적 대화가 증거로 왜곡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2021년 1월21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경기장에서 관람객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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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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