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괴'의 2022개정 교육과정, 고쳐쓰기 어렵다

[2025교육혁명행진①]

교육혁신을 대중적으로 힘있게 추진하기 위한 교육혁명행진이 올해 3회를 맞이하였다. 2025년 교육혁명행진은 10월 25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참가단체들이 주요 의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자 연재를 마련했다.

윤석열이 당선된 2022년 3월에서 12월 사이에 수년 간 준비해 왔던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뼈대가 바뀌어 버렸다. 학생 각자의 소질을 살리는 중등 교육을 통해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고, 대학 평준화의 기틀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고교학점제는 입시 경쟁의 첨병으로 변모했다. 무한 경쟁 앞에서 '선택권'은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낳는다.

고교학점제는 학점제가 아니다. 정부가 표방하는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는 제도 △목표한 성취 수준에 도달했을 때 과목을 이수하는 제도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과목별 2/3출석, 성취율 40%이상 – 미도달 시 추가 학습)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하는 제도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교학점제는 과도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일 뿐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일반적으로 공통 2/3, 선택 1/3의 비율을 이룬다. 문과와 이과의 선택과목 차이 정도다. 그런데 고교학점제는 공통 1/4, 선택 3/4 정도를 가지고 있다. 유래없이 선택 과목의 비율을 늘렸다. 한편 선택과목이 늘어났다고 해서 전공 노작 교육이나 예술 교육이 늘어났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교과군은 국영수사과예체 제2외국어 기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에 과학교과군이 공통과학, 물화생지, 물2화2생2지2 였다면, 2022에서는 통합과학, 탐구실험, 물화생지, 역학과에너지, 전자기와 양자, 물질과 에너지, 화학 반응의 세계, 세포와 물질대사, 생물의 유전, 지구시스템과학, 행성우주과학, 과학의 역사와 문화, 기후변화와 환경생태, 융합과학 탐구라는 과목이 생겼을 뿐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말에 학생의 진로가 정해져야 한다(2~3학년 수강신청을 1학년 7~8월에 완료 해야하므로 수강신청 입시 컨설팅 사설업체가 성행한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생물2'과목보다 '세포와 물질대사', '생물의 유전' 과목을 배우면 학습동기와 흥미가 막 생기는 맞춤형 교육이 된다는 가정도 어처구니가 없다. 운동하기 싫어하는 학생에게 다양한 운동기구를 사 주면 동기와 흥미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과 비슷한 것이다. 차라리 학교 앞에서 굿을 하는 게 낫겠다.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옛날 교과서를 반으로 쪼개서 표지만 갈았다. 같은 선생님이 같은 내용을 다른 이름의 과목으로 가르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다양한 선택을 극대화시킨 반면 대입제도는 공통과목 수능을 강화하고 선택과목조차도 상대평가를 하면서 학생 간 수직적 서열화를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대학에 맞춰 교육과정이 위계화되는 현상(상위권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 피하기)이 나타나고, 소인수 교과 내 경쟁은 치열해진다. 수능(정시)에만 올인하기 위해 고1 자퇴생이 증가하고, 특권학교들은 학교 개설 교과목(예 – [체인지메이커] 과목은 A학교에만 개설됨)으로 입학사정관제의 블라인드를 걷어 낸다.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는 열결된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개판이다.

지식과 기술은 문서와 실습으로 가르치지만, 가치와 규범은 상당 부분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에게 스며든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수평적으로 의사소통하며 갈등을 조정하고 공통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역량은 '개별', '맞춤형', '분리' 학습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고교학점제에서는 '학급'이라는 단위가 없다. 학교에서 학급 운영은 자리 배치와 교우 관계, 사물 관리, 전달 사항과 계기 교육, 청소, 출결과 생활 교육, 휴식 공간, 소속감-체육대회/학급행사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학생 자치회가 학급회까지 관장할 정도로 튼튼해지면 좋겠지만, 대학교 학생회도 없어지는 판에 고등학교에서 학급의 기능을 자치회가 대체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학급 단위가 없으므로 교과 융합 프로젝트도 어렵다. 서류상 같은 학급임에도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은 4~5명 정도이고, 담임이 자기 반 학생을 단 한 명도 가르치지 않는 학기가 속출한다. 사실상 학급을 해체했으면서도 적절한 대책이 없어서, 담임이 전지전능한 것처럼 업무를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기계적 통제 장치(학생 개인별 위치추적?)가 필요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무릇 학점제는 무학년 이수나 재이수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우리나라 고교학점제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그래서 미이수 학생을 만들지 말라고 교사들을 협박하고 있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출석일수의 2/3가 넘으면 졸업을 시키던 제도가 없어지고, 학생이 '선택'해야만 하는 모든 과목에서 수업 시수의 2/3 이상을 듣고 성취도 40% 이상을 달성해야 졸업할 수 있다.(워낙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성취도 관련 이수 기준은 없앤다고 한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나 출결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과거에는 담임 선생님의 잔소리 정도를 들었다면, 이제 모든 교과 선생님들의 감시 속에 갇힌다. 아파서 며칠 결석이라도 했다가 등교하면, 선생님들이 빚쟁이처럼 달려들어 밀린 과제하라고 학생을 끌고 다닐 것이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속담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는 물을 억지로 먹이겠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심화되면 아마 교육부는 '출석 인정 제도 확대'라는 편법을 자꾸 만들어 낼 것이다.(출석부에 결석표시를 하지 말고, 특기사항으로 '출석인정'을 쓰라고 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특권층에게 유리하므로 사회적 격차를 더 키울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사교육 의존성이 더 커지고, 수직적 서열화가 강화되며, 경쟁은 더 세분화되고, 사회화는 약해지며, 기계적 통제는 촘촘해진다. 단결과 상호 이해, 공동체성은 약해지고,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특권학교와 일반학교의 격차, 대도시 학교와 농어촌 작은 학교의 격차가 커진다. 교사가 여러 과목을 학기 단위로 가르치므로 노동강도가 강해진다. 고교학점제가 계속 된다면 학교는 상담과 조언보다 관리 역할(통제와 선별)을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란 정권이 뼈대를 바꿔버린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고쳐 쓰기 어려운 상태다.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대비하려면, 전이 가능성이 큰 기초 학문 중심으로 개념 학습을 하는 보편교육의 비중을 키워야 한다. 선택을 부풀려 둔 고교학점제와 2022 교육과정을 빨리 종료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짜야 한다. 고등학교 1, 2까지 공통교육과정 중심으로 하고, 3학년 때 진로탐색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것이 학생의 발달과 생애주기에 적합하다. 대학을 평준화하고 입학시험을 절대평가(자격고사)로 바꿔야 한다. 기후위기, 저출생, 디지털불평등, 민주주의 위기(불황, 전쟁, 혐오)가 일상화된 시절에 지방의 소규모 학교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고교학점제 대신에 작은 학교(작은 학급)에 유리한 새로운 교육시스템 구성을 위해 교육 혁명을 말해야 할 때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양육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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