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창립했다. 현장 요양보호사들이 주축이 된 협회로, 현장 노동자 대표 조직으로 보건복지부 장기요양위원회(요양보호사 처우 결정 등 제도 개선 기구) 등 정책 참여를 위한 첫 단계로 사단법인을 창립했다. 협회 자문위원인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2일 창립총회에 참석한 요양보호사를 상대로 발표한 강연문을 보내왔다. 전문을 싣는다.
1. 들어가는 말: 돌봄의 시대를 맞이하며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우리 사회는 '돌봄의 시대' 한복판에 있다. 일상 속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노고는 이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돌봄노동은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으며,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열악한 환경, 낮은 사회적 인정이 구조화된 현실이다. 이제는 그 틀을 깨야 할 때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창립을 계기로, 우리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함께 성찰하고 그 품격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 나아가 우리의 돌봄이 어떻게 지속 가능하며 정의로운 복지사회의 토대를 이루는지를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돌봄의 가치: 인간과 사회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 살아남고 성장해 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병들거나 노쇠했을 때, 삶의 마지막까지도 우리는 타인의 돌봄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돌봄은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적 활동이며, 개인의 생존뿐 아니라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돌봄을 사회의 "보이지 않는 접착제(social glue)"라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며 관계를 유지하는 돌봄이 없다면 공동체 자체가 존속할 수 없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경제, 정치, 문화 활동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돌봄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야말로 사회 운영의 숨은 기반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돌봄을 사적 영역으로 밀어 넣고 그 가치를 축소했다. 돌봄은 자연스럽고 무한히 제공될 수 있는 일로 여겨졌으며, 돌봄노동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됐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것은 바로 "돌봄의 위기"다.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줄이면서 마치 "자기 꼬리를 먹는 호랑이"처럼 사회 유지의 기반인 돌봄 역량 자체를 소모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더 이상 개별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구조적 위기다.
그러므로 이제 돌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의제'로 끌어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돌봄을 사회의 핵심 가치로 재발견하고, 재분배와 인정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돌봄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3. 격이 있는 돌봄노동: 관계의 기술, 머리와 손과 가슴이 필요한 일
돌봄노동은 흔히 단순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도의 관계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돌봄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지적 판단력과 실천기술, 정서적 공감이 결합한 복합적 노동이다. 흔히 말하듯 돌봄에는 머리와 손, 그리고 가슴이 함께 작용한다.
돌봄의 '머리'는 관찰과 판단의 능력이다. 대상자의 건강 상태, 감정 변화, 일상 행동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데는 상당한 주의력과 지식이 필요하다. '손'은 실천적 기술의 영역이다. 신체 돌봄, 이동 보조, 약 복용 지원, 재활 활동 등은 모두 숙련된 손기술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이다. 반복되는 질문에 지친 기색 없이 응대하고, 불안한 대상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존엄을 지키려는 태도는 감정적 지능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러한 정서적 노동은 외부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고도의 노동성'이 돌봄노동의 가치를 외면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영국 사회학자들은 돌봄을 '도덕적 노동(moral labour)'이라 부른다. 이는 윤리 의식과 책임감, 관계기술과 문제해결 능력이 모두 동원되는 고차원의 직업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노동이 저평가돼 온 이유는 복합적 역량이 체계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돌봄의 미덕으로 여겨졌고, 그 결과 사회적 인정과 보상에서 소외됐다. 그러나 이제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말해야 할 때다. 요양보호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전문직이다. 돌봄노동은 타고난 희생정신이 아닌, 교육과 윤리, 기술이 결합한 직업이다.
좋은 돌봄은 체계적 교육, 윤리 의식, 숙련된 기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돌봄노동자의 사명감이 모여 협회가 출범했고, 윤리강령이 제정됐다. 이는 돌봄노동이 전문직으로서 윤리와 표준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자긍심과 전문성을 함께 연마하며, 품격 있는 돌봄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알릴 수 있어야 한다.
4. 돌봄윤리와 민주적 복지사회: 모두가 주고받는 돌봄의 공동체
돌봄노동의 가치를 논할 때 반드시 함께 짚어야 할 개념이 돌봄윤리다. 돌봄윤리는 인간 사회를 상호의존적 관계망으로 보고, 그 중심에 배려와 책임을 둔다. 정치학자 조안 트론토는 "모든 인간은 돌봄이 필요하고, 또 누군가에게 돌봄을 제공하며 살아간다"는 현실에서 출발하는 윤리라고 정의한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엔 돌봄의 수혜자이자 제공자가 되며, 돌봄윤리는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관점은 정의와 복지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전환한다. 전통적 자유주의가 자율성, 경쟁, 비간섭을 중심 원리로 삼았다면, 돌봄윤리는 '완전한 자율' 자체가 허구임을 드러낸다. 인간은 돌봄 없이는 성장도 존엄도 유지할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이의 필요를 인식하고 책임지는 사회여야 한다. 정치철학자 다니엘 엥스터는 "타인을 돌보는 것이 도덕의 핵심"이라며, 각자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서로를 돌볼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는 정의 이론이 완성되려면 돌봄윤리가 사회제도의 핵심 원리가 돼야 한다고 본다. 정의는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돌봄 책임의 공정한 분담과 그 제도화를 포함해야 한다.
트론토는 돌봄과 민주주의의 연결도 강조한다. 돌봄은 오랫동안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됐지만, 이제는 민주주의 제도와 정책이 돌봄 책임을 어떻게 나누고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는 '돌보는 민주주의(caring democracy)'라는 개념을 통해, 권리 중심 경쟁이 아닌 취약성의 인정과 연대, 책임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복지사회의 도덕적 기반이며, 공동체적 민주주의의 토대다.
아울러 돌봄윤리는 권력의 구조도 드러낸다. 트론토는 "한 집단의 권력을 보려면, 그 집단이 누구에게 돌봄노동을 맡기는지를 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강자들은 돌봄의 부담을 약자에게 전가해왔다. 남성은 여성에게, 부유층은 저소득층에게, 자유민은 노예에게 고된 돌봄을 떠넘기고 자신은 수혜만 누렸다. 그 결과 돌봄노동은 저임금, 저평가의 굴레에 갇혔다.
트론토는 돌봄의 불평등이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고 말한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지만, 그 부담은 공정하지 않게 분배돼 있다. 돌봄윤리는 국가와 사회가 그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고, 돌봄제공자에게 정당한 보상과 존중을 제공해야 한다는 윤리적·정치적 원칙을 제시한다.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서는 돌봄의 재분배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5. 돌봄노동의 재분배와 인정: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쌍둥이 과제
돌봄노동의 재분배란, 그 책임이 여성이나 저소득층, 이민자 등 특정 집단에 집중되지 않고 사회 전체가 함께 지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공공 돌봄 서비스의 확충, 장기요양제도의 강화, 가족돌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의로운 돌봄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축, 즉 돌봄노동의 인정(recognition)이 병행돼야 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정의를 위해 재분배와 인정이라는 두 과제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본다. 단지 자원의 불평등만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낮게 평가되고 경시된 활동과 집단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돌봄노동은 이 두 과제를 함께 안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재분배의 측면에서 보면, 돌봄노동은 전형적인 저임금·저보상 직종이다. '사랑의 수고'라는 명분 아래 가족 내 여성의 무급노동이나 요양보호사의 저임금 노동이 당연시됐고, 돌봄 서비스에 대한 공공의 재정 투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생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돌봄 서비스의 질과 지속가능성에도 악영향을 준다. 임금 인상, 근로환경 개선, 적정 인력배치와 공공 인프라 확충은 단지 노동자의 권리를 넘어서 사회 전체가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인정의 측면에서는, 돌봄노동이 '누구나 하는 집안일' 정도로 간주해 온 인식 자체가 문제다. 돌봄은 고도의 숙련과 관계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돌봄노동자들은 낮은 사회적 위상에 머물러 왔다. 여성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돌봄의 역할이 이 직업의 사회적 평가를 더 낮췄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과 문화적 경멸이 결합할 때 돌봄노동자는 이중의 곤경에 빠지게 된다.
이제는 돌봄노동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 직업이 돼야 한다. 최근 '돌봄 위기' 담론의 부상과 팬데믹을 계기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돌봄노동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사회 유지를 위한 핵심적 노동이며, 필수노동의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
결국 정의로운 돌봄은 재분배와 인정이 동시에 추진될 때 가능하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과 함께, 돌봄노동의 사회적 위신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돌봄노동은 격을 갖춘 일자리로 자리 잡고, 사회도 그 가치에 걸맞은 책임과 존경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6.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탄생: 돌봄노동의 새 시대를 열며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출범은 단순한 단체 결성이 아니라, 돌봄노동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는 선언적 사건이다. 특히 협회가 제정한 '요양보호사 윤리강령'은 직무 규범을 넘어, 돌봄노동의 철학과 윤리, 전문성을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강령은 요양보호사를 "삶과 인간다움, 존엄의 가치를 지키는 존재"로 규정한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역할과 자긍심을 새롭게 정의한 언어이며, 괜찮은 일자리로서의 돌봄, 누구나 안심하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공동체 비전을 뒷받침하는 핵심 문장이다.
협회는 향후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첫째는 권익 대변자의 역할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처우개선과 근로환경 개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돌봄노동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단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그 궁극의 목표는 더 나은 돌봄을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선순환을 구축하자는 데 있다.
둘째는 전문직 단체의 역할이다. 협회는 교육과 사례 공유, 연구를 통해 요양보호사의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협회는 자율성과 품위를 지닌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됐다.
셋째는 정책 파트너의 역할이다. 돌봄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전문성과 실천력이 절실하다. 협회는 정부 및 관계 기관과의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며 돌봄정책이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를 통해 요양보호사들이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연대하는 집단이 됐다는 사실이다. 동료 공동체로서 협회는 돌봄노동자들의 자존감과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할 것이다.
7. 맺음말: 돌봄의 시대를 여는 우리의 다짐
돌봄은 더 이상 주변부의 가치가 아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돌봄은 지속 가능한 복지사회의 중심축이 돼야 하며, 돌봄노동자는 인간 존엄을 지키는 사회의 핵심 기반이다.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어려움과 권리문제는 사회 전체의 품격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돌봄노동이 제대로 인정받고, 품위와 전문성,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연대와 책임이 필요하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출범은 그 시작이다. "인간을 돌보는 노동이야말로 가장 존엄한 노동이다." 이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 돌봄노동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돌봄의 정의와 가치를 함께 실현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돌봄의 시대를 여는 미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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