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역대급 폭염이다. 폭염 특보가 전국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올해 여름은 7월 초부터 40도 안팎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1994년과 2018년, 2024년 등 이전의 역대급 폭염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 상공에 겹친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고온다습한 열기를 만들어 내면서 연일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는 가운데 뜨거운 동풍까지 더해져 밤에도 최저 기온이 30도에 이르는 '초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가동된 지난 5월 15일부터 7월 30일까지 전국에서 온열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884명이다. 이중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16명이다.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지난해에 비해 2~3배에 달하는 상황이다. 폭염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인명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에도 노동자들은 폭염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다 쓰러지고 사망했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20대 외국인 노동자가, 폭염 속에서 야외 측량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당시 야외의 체감온도는 34.3도에 달했고, 쓰러진 그의 체온은 40도 이상이었다.
정부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경우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시간을 부여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지난 7월 17일부터 시행 중이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폭염 날씨에 야외에서 2시간 일하고 20분 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안전조치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요즘 같은 폭염에는 10분 이상 야외에 서 있기조차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지난해 9월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를 개정해 사업주가 폭염과 한파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장해를 예방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올해 6월 1일)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23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령안은 폭염과 폭염 작업 정의 신설, 실내 폭염 작업 시 조치 규정, 폭염 작업 시 온열질환 예방 조치 규정, 폭염 작업 시 휴식 시간 부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권고에 불과했던 체감온도에 따른 사업주가 해야 할 조처 내용이 안전보건규칙 개정으로 법적 강제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6월 1일부터 규칙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가 두 번의 심사를 거쳐 규칙 개정을 철회하라고 권고했고,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안전보건규칙은 개정 자체가 무산될 상황이었다. 사업주가 이 조항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이 조항을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데 이런 제재가 영세·중소 사업장에 부담을 준다는 취지였다. 안전보건규칙 개정 철회를 권고했던 행정사회분과위원회의 민간위원은 고작 5명으로 행정학과 법학을 전공한 4명의 대학교수와 관료 출신의 민간단체 대표 1명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정 소수의 심의에 따라 전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친 법령의 세부 규칙이 철회될 수 있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대책이 미뤄지는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해당 개정안은 7월 11일 이례적으로 이뤄진 세 번째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심사를 통과했고, 7월 17일이 되어서야 개정 규칙이 시행됐다.
규칙 개정 철회를 권고했던 위원들의 의견은 어떻게 바뀐 것일까. 노동자가 사망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난해에도 폭염에 노동자들이 쓰러졌다. 학교 급식실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던 20대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배수시설 작업 현장에서도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했고 부산의 건설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살인적인 더위가 지속되면서 건설 현장 곳곳에서 온열질환자들이 속출했다.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업재해는 147명이었다. 이 중 건설업에서 70명(48%)이 발생했다. 온열질환 사망자 22명 중 15명(68%)이 건설노동자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다. 안전보건규칙 개정 철회를 권고했던 의원들의 사과와 규제개혁위원회의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규칙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건설 현장에서 휴식을 보장받는 비율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권고가 아닌 법적 규제의 효과다. 하지만 여전히 폭염 관련 휴식을 보장받고 있다고 답한 건설노동자는 여전히 절반(42.7%)에 못 미친다. 쉴 공간이 충분하다는 답변도 15.2%에 불과했다. 건설노동자의 58.9%는 폭염으로 어지럼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고, 폭염으로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53.6%에 달했다. 하지만 대다수(80.3%)는 폭염으로 작업 중단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현장에서 쫓겨날까봐가 28.8%로 가장 많았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안전 '5대 기본수칙'은 기온 35도 이상에서는 작업을 중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권고 수준에 그친 지침만으로는 현장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태풍, 폭우, 폭염, 폭설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 스스로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 판단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징계·해고·손해배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법에 적시된 '급박한 위험'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고 작업 중지를 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자에 대해 처벌 조항도 없다. 작업 중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할 방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산업재해가 안 줄어들면 직을 걸라"고 말했고 "똑같은 사망사고가 상습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것을 검토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올해를 산업재해 사망 근절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비유처럼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 사망 사고가 계속된다면 이는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폭염은 자연재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심각한 기후재난이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폭염은 더욱 심해지고 자주 발생할 것이고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기후재난에서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다.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첫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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