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당 '조세제도 개편 특별위원회'를 통해 "조세 정상화"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대통령실에서 법인세 인상 및 배당소득 분리과세 언급 등 세제개편 관련 신호가 나온 직후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은 25일 당 최고위 모두발언에서 "현재 국가 재정은 위기 상황"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세수 파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직무대행은 "추경과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민생경제 회복의 마중물"이라며 "회복에 이어서 성장세를 만들어야 하는데 윤석열이 또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국가의 정상적 운영도,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현 재정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면서, 그 이유를 소비쿠폰·추경 등이 아닌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 때문으로 지목한 것.
김 대행은 "(현 상황은) 아끼고 줄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근본 해법은 비뚤어진 조세의 기틀을 바로세우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조세 정의 실현으로 미래 성장의 길을 열겠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민주당은 당에 '조세제도 개편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며 "활동 목표는 세수 파탄 문제를 해결하는 조세의 정상화"라고 했다. 그는 "특위를 중심으로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서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부연했다.
'조세 정상화'라는 표현은 전날 대통령실 브리핑에도 등장한 바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날 법인세 인상 보도가 나온 데 대해 "법인세 부분은 조세 형평성의 회복이고 조세 정상화 개념으로 봐야 할 듯하다"며 "부자 감세 기조로 인해 지난 정부에서 과도하게 세수가 부족해진 부분도 있다"고 했다. "용어 자체를 바꿔야 한다. '법인세 인상'이 아니라 '조세 정상화'"(강 대변인)라는 것.
강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재차 "'조세 정상화'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초부자 감세로 인해 법인세를 이전 수준에 비해 훨씬 과다하게 줄였기 때문"이라며 "그로 인한 세수 부족으로 국가 재정 건전성까지 위협받지 않았나"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그런 부분에서 조세 형평성을 복원하고 조세를 정상화한다는 의미"라며 "윤석열 정부에서 흐트러진 균형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담아) '조세 정상화'라고 표현했다"고 부연했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가 기업 투자를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구간별 1%포인트씩 감면한 조치를 원상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다만 "관계부처로부터 국세 기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고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듣고 있다"며 "구체적 내용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했다.
정부는 전날 대통령실에 △법인세 최고세율(최고구간 기준)을 24%에서 25%로 인상하고 △주식양도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기존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되돌리는 세제 개편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인세, 인상해야 한다"며 "국가 재정 곳간이 비어있다.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면 '부자 감세'로 인해 펑크난 재원을 다시 복구·복원시켜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 국가 운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문 수석부대표는 다만 "증세를 하는 게 아니다"라며 "그 동안 우리가 쭉 (가져온) 재정 규모를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제 개편안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방안도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자본시장 관련 제도 개선은 신성장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또 한편 평범한 개인투자자들의 소득이 함께 증대되는 양면의 효과가 있다"며 "특히 배당소득세제 개편은 이런 관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는 이자·배당소득이 연간 20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다른 소득과 합쳐 6~45%의 누진 소득세율이 적용되는데, 이를 개정해 2000만 원 초과 배당소득에 대해 10~20% 수준의 세금만 걷겠다는 것이다.
다만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진영은 '부자 감세'라며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와의 충돌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집권여당 현직 정책위의장인 진성준 의장이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주식 배당소득세제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며 "배당소득이 극소수에 쏠려 있는 현실을 잘 살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진 의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외국에 비해 주주배당이 지나치게 적다. 기업들이 배당을 확대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 섬세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결국 극소수의 '주식 재벌'들만 혜택을 받고 대다수 개미투자자들은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제 개편으로 기업의 배당이 반드시 늘어난다고 볼 수 없지만, 배당이 늘어난다고 해도 개미투자자들은 겨우 몇천 원의 이익을 보는 데 반해 극소수 재벌들은 수십억 원 이익을 보게 된다면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진 의장은 "2023년도 기준, 상위 0.1%에 해당하는 1만7464명이 전체 배당소득의 45.9%(13조8842억 원)를 가져간다. 상위 1%로 확대하면 전체 배당소득의 67.5%(20조3915억원), 주식투자자 100명 중 1명이 전체 배당소득의 70%를 가져가는 셈"이라며 "반면 하위 50% 873만 명이 나눠 가지는 배당소득은 전체의 0.35%(1064억원), 1인당 고작 1만2177원"이라고 근거를 댔다.
박상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와 관련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정 간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별 의원들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문 원내수석도 "당 기구를 만들면 달랑 법인세 하나만 인상하겠나. 배당소득세 분리과세가 맞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등을 충분히 논의하면서 당 의견을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문에 논의기구를 만들어 의원들 총의를 모으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서는 법인세 원상회복에 대해 "세율을 인상하는 것을 '조세 정상화'라고 강변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라는 반대 의견이 바로 나왔다.
송 비대위원장은 이날 농산물 가격 점검 현장방문 일정 도중 기자들과 만나 "2022년에 법인세를 1%포인트씩 내리기로 했는데 그 당시에도 여야가 합의해서 세율을 조정한 것"이라며 "여야 합의로 이뤄진 세율 조정을 일방적으로 문제 있다고 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송 비대위원장은 "법인과 개인 모두 경제활동을 하는데 세금을 많이 과세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여야 합의로 통과된 세율을 다시 올리겠다는 것은 정부의 주장일 뿐 국회에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재고를 강력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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