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너와 영국, 증기와 빛의 혁명가가 남긴 유산

[김성수의 영국이야기] 물감통을 들고 산업혁명을 그린 남자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아, 그 뿌연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반응한다. 맞다. 하지만 이 '뿌연 그림'이야말로 영국이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모하던 격변의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기록물이다.

터너는 런던 코벤트 가든의 이발사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아들은 세상을 그렸다. 참으로 적절한 분업이 아닌가. 아버지는 사람들의 머리를 정리했고, 아들은 세상의 모습을 정리했다.

왕립 아카데미의 신동, 혹은 말썽꾸러기

14세에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한 터너는 당시 영국 미술계의 엄숙한 전통을 한 붓으로 휘저었다. 고전적인 풍경화가 지배하던 시대에 그는 "왜 나무를 나무답게 그려야 하는가?"라고 묻는 듯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18세기 영국 미술계는 마치 신사클럽 같았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터너는 그 질서를 증기기관처럼 뒤흔들어 놓았다. 그의 그림을 본 당시 비평가들은 "이게 그림인가, 물감을 던진 것인가?"라며 혀를 찼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정확한 평가였다. 터너는 정말로 물감을 던지고, 뿌리고, 긁어내며 그림을 그렸으니까.

증기선과 철도, 그리고 산업혁명의 목격자

터너가 살았던 시대는 영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철도가 깔리고, 공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화가들은 이런 '추한' 현실을 외면했다. 그들에게 산업시설은 그림 속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터너는 달랐다. 그는 증기선 '파이팅 테메레어'(Fighting Temeraire)가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해체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은 단순히 배 한 척의 마지막을 그린 것이 아니다. 범선의 시대가 끝나고 증기선의 시대가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철도를 소재로 한 '비, 증기, 속도'라는 작품에서는 빗속을 달리는 기차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는 경이로운 속도였다. 터너는 그 속도감을 화폭에 담아내며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시각화했다.

빛의 마법사가 된 까닭

터너의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빛의 표현이다. 그는 빛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빛 자체가 되려고 했다. 이는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산업혁명으로 런던의 하늘이 연기와 매연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터너는 그 혼탁한 대기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려 했다.

런던의 안개와 매연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를 '런던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터너의 천재성이다. 다른 화가들이 "공해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불평할 때, 터너는 "이 공해가 바로 우리시대의 색깔"이라고 선언했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터너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었지만, 예술적으로는 급진적이었다. 이런 모순이야말로 영국적 특성의 정수가 아닐까. 전통을 사랑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이중성 말이다.

그는 왕립 아카데미의 정식회원이 되어 기득권층에 속했지만, 동시에 기존 미술계의 관습을 파괴하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마치 양복을 입고 록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영국 미술사에 남긴 발자취

터너 이후 영국 미술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후배 화가들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되, 그 현실을 바라보는 당신만의 방식을 찾으라"고 가르쳤다. 이는 단순한 기법의 전수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자세에 대한 철학이었다.

러스킨 같은 미술 비평가들이 터너를 적극 옹호하며 새로운 미술이론을 정립했고, 이는 영국이 유럽 미술계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고전주의나 독일의 낭만주의와는 다른, '영국적 현실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사회변화의 기록자

터너의 그림들은 19세기 영국사회의 변화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료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꼈을 혼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노예선을 그린 작품에서는 당시 영국이 안고 있던 도덕적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그 부의 일부가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현대적 의미

터너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 환경문제, 전통과 현대의 충돌. 터너는 이 모든 것을 150년 전에 이미 화폭에 담아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우리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터너처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마지막 붓질

터너는 임종 직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죽기 전 마지막 말은 "태양은 신이다"였다고 한다. 평생 빛을 쫓아다닌 화가다운 마지막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3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후세에 대한 메시지였다.

"나는 내 시대를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는 너희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터너라는 한 화가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영국이 어떻게 현대사회의 출발점이 되었는지, 그리고 예술가가 시대의 변화와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그의 뿌연 그림들이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The Fighting Temer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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