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이야기] ⑦카페인은 적인가, 동반자인가?

디카페인의 진짜 얼굴, 안전 기준·남은 카페인·올바른 섭취량

▲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깊은 밤에도 한 잔이 간절해지곤 한다. 카페인을 낮춘 디카페인이 그 갈증에 대한 현실적 해답이다. ⓒ프레시안(문상윤)

요즘 SNS를 보다 보면 “디카페인 커피는 화학 용매로 카페인을 씻어내기 때문에 일반 커피보다 해롭다”는 짧은 영상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럴싸한 복장과 영상 구성, 불안감을 조장하는 자막이 맞물려 ‘카페인은 해롭고 그것을 제거한 디카페인은 더 해롭다’라는 결론을 찍듯 내놓는다.

그러나 커피 가공과 식품 규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러한 주장은 일부만 들은 지식을 전부인 듯 단정한 사례라는 사실이 금세 드러난다.

우선 ‘카페인은 무조건 몸에 해롭다’는 전제부터 절반의 진실에 가깝다.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자극해 각성 효과를 내고 민감한 사람에게는 심박수 증가·불면·속쓰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이 2023년에 발표한 대규모 메타분석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이 하루 400mg 이하(드립커피 3~4잔 수준)의 카페인을 섭취할 때 심혈관‧간질환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를 하루 2~3잔 마시는 집단은 전혀 마시지 않는 집단보다 총사망률과 제2형 당뇨병 발병률이 낮았다.

결국 카페인이 ‘독’인지 ‘약’인지는 섭취량과 개인의 민감도라는 조건이 붙는다.

문제의 영상이 특히 공격하는 지점은 디카페인 공정, 그중에서도 화학 용매 추출(decaffeination with solvents)이다.

1905년 독일 상인 루트비히 로젤리우스가 염화메틸렌으로 카페인을 제거한 뒤 100년이 넘도록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용매는 클로로메탄(염화메틸렌)과 아세트산에틸 두 종류로 정착해 있다.

둘 다 국제식품규격(CODEX)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용한 식품첨가제로 잔류 허용치는 각각 1ppm, 2ppm 이하다.

최근에는 화학 용매 방식 가운데서도 원료를 ‘천연 발효 유래’로 바꾼 EA(Ethyl Acetate) 디카페인, 일명 ‘슈거케인 프로세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방법은 사탕수수 당밀을 발효해 얻은 에탄올에서 에틸아세테이트를 제조한 뒤, 수증기로 불린 생두에 침지해 카페인만 선택적으로 빼낸다.

수세‧건조 과정이 끝나면 잔류 EA는 1 ppm 이하로 떨어지고, 사탕수수 유래 ‘멜라시스 단맛’이 은은히 남아 중남미 스페셜티 로스터들이 즐겨 채택한다.

식물 발효 원료 덕분에 ‘Natural Decaf’ 인증을 받을 수 있고 설비 비용도 초임계 CO₂보다 낮아 중소형 디카페인 플랜트에서도 도입이 늘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는 초임계 CO₂, 스위스 워터, EA 세 가지 무(無)잔류 또는 저(低)잔류 대안을 놓고 원두 개성·향미 손실·가격대를 비교해 고를 수 있게 됐다.

결국 디카페인은 ‘화학 용매를 쓰면 위험하다’는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용매를 쓰고 어떻게 제거·분석·관리하느냐가 핵심이다.

EA 공정까지 더해지며 선택지가 넓어진 지금, 카페인 부담을 낮추면서도 향미를 지키고 싶은 이들에게 디카페인은 예전보다 훨씬 세련된 해결책이 되어 주고 있다.

게다가 화학 용매를 쓰지 않는 방식이 이미 두 가지나 상용화돼 있다.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는 뜨거운 물에 생두를 담가 카페인과 향미 성분을 모두 추출한 뒤 활성탄으로 카페인만 걸러내고 나머지 추출액을 다시 생두에 흡수시키는 방식이다.

‘초임계 이산화탄소 공정’은 250bar 이상의 고압 CO₂가 카페인과만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원리를 응용한다.

화학 용매 없이도 카페인을 97% 이상 제거하고 향 성분 손실이 적어, 북미와 유럽 대형 로스터리에서 특히 애용한다. 결국 “디카페인은 화학 용매 때문에 더 해롭다”는 주장 자체가 전체 공정의 한 부분을 과장해 확대해석한 셈이다.

디카페인 커피가 제공하는 의학적 이점은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 수면의학과는 카페인 민감군이 일반 커피 대신 디카페인으로 전환했을 때 수면 잠복기가 평균 30% 짧아졌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가 2022년에 진행한 임상시험에서는 역류성 식도염 환자가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을 때 위‧식도 산 노출 시간이 일반 커피 섭취군보다 28% 감소했다.

임신부 역시 하루 카페인 섭취량을 200mg 이하로 제한해야 하는데 일반 필터커피 한 잔이 100mg 안팎, 디카페인은 2~5mg 수준이니 ‘여유분’이 훨씬 넉넉하다.

물론 디카페인이라고 해서 카페인이 전혀 없지는 않다. 미국 FDA와 유럽연합(EU) 규정은 생두 중 카페인 0.1% 이하, 혹은 97% 이상 제거를 디카페인의 기준으로 삼는다.

컵으로 환산하면 25mg이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카페인에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라면 디카페인조차 늦은 밤엔 피하거나 하루 섭취량을 1~2잔으로 제한하는 것이 안전하다.

커피는 결국 ‘얼마나, 언제, 어떤 형태로’ 마시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음료다.

SNS 영상이 놓친 가장 큰 맥락은 커피 산업이 지난 100여 년 동안 화학·미생물·식품공학적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준과 기술을 축적해 왔느냐다.

화학 용매 추출이든, 스위스 워터든, 초임계 CO₂든 모든 공정은 엄격한 잔류 물질 검사와 관능 평가를 거쳐 소비자 손에 닿는다.

그런데도 '화학=독'이라는 자극적 프레임 하나로 디카페인 전체를 부정해 버리면 소비자는 왜곡된 정보를 토대로 불필요한 공포를 안게 되고, 산업은 과학적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결국 카페인은 적도, 동반자도 아니다. 용량과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말 그대로 ‘조건부 자극제’다.

과다 섭취가 걱정된다면 디카페인이라는 기술적 대안이 존재하고 그마저도 잔여 카페인을 고려해 적정량을 지키면 된다.

커피를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이분법보다 자신에게 맞는 카페인 관리 전략을 세우는 일이 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다.

혹시라도 SNS에서 “디카페인은 독”이라는 영상이 떠오른다면 화려한 자막 뒤에 숨은 근거를 먼저 확인해 보자.

커피 한 잔과 건강 사이의 균형은 늘 데이터를 통해 점검할 때 비로소 명확해진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