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이 "대형 산불 재난 대응의 컨트롤 타워를 소방청으로 일원화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산림청, 지방자치단체, 소방청 등으로 나뉜 비효율적인 대응 체계로는 향후 또 다른 대형 산불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구조를 갖추지 못할 거란 주장이다. 이들은 재난에 대응하는 기동력과 화재 진압에 대한 전문성 및 장비·인력 등을 갖춘 소방청이 주무 관청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산불재난 제도개선 방안 국회토론회'는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수십 명의 전·현직 소방관들로 붐볐다. 간담회실의 60여 개 좌석이 꽉 차 일부는 3시간 내내 서 있었고, 일부 참가자들은 현장이 비좁아 퇴장하기도 했다. 모두 이날 제기될 '소방청으로 대형 산불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자'는 제안을 지켜보고, 일선 현장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참석했다.
발제자로 나온 이강우 홍천소방서장은 먼저 대형 산불을 산불의 범주가 아닌 '산림 대 화재'(Wild Mega Fire)의 개념으로 재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산불이라는 표현은 "산, 마을, 도시를 광범위하게 불태우는 실재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며, 산 중심으로 산불 대책이 추진돼 통합적인 화재 대응 면에서도 긍정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3월 경북·산청 산불 피해 규모를 보면,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집계한 총 피해액 1조817억 원 중 주택 등 시설물의 피해액이 63.5%(6873억 원)를 차지한다.
이 서장은 현재 산림의 화재는 산림청이, 그 외 화재는 소방이 주관하는 산불 대응 시스템은 대형 산불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화재진화는 소방의 사무인데, 산의 불이 마을과 도시를 태우는 대화재를 산림청이 지휘하는 것은 산림청 소관 영역을 넘어서는 사무 영역 불일치 문제가 있다"며 "육상 재난과 화재에 특화된 조직인 소방이 전국 6만7000명 소방공무원과 9만4000명 의용소방대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추진할 기관을 대통령실 직속 산하에 TF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상이 광범위하고 전국의 모든 지자체와 행안부, 국토부, 환경부, 기상청, 문화재청, 산림청, 소방청 등의 참여와 협업이 필요하며, 관련 법령 제·개정과 예산 편성 등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후 토론자로 나온 변강제 강동소방서 소방관은 "이번 산불로 3000여 세대의 집이 탔고 희생자가 나왔다. 이런 산불이 10년간 15회 반복됐다"면서 "그런데 언제까지 계속 같은 토론만 할 것이며, 부처 간 기싸움을 할 것이며, 소모적인 논쟁을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변 소방관은 현재 산불 대응 체계의 문제로 미숙한 통합지휘력과 비효율적이고 복잡한 지휘체계 등을 지목했다. 그는 대형산불 대응 통합지휘권을 각 지자체장이 행사하는 구조에 대해 "시·도지사 등은 선거로 선출된 이들이며, 어떤 고집과 아집이 있어서 (대형 산불 발생 시) 지휘권을 넘겨주면 진화에 도움이 되는데 그렇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5분 내 출동 시스템을 갖고 있는 소방은 산불 신고가 접수되면 5분 내 현장에 도착한다"며 "이후 2시간쯤 지나면 (지자체, 산림청) 산림부서 공무원들이 그때서야 달려오고, 지휘권을 가져간다. 현장에 있을 때 우리가 일하던 맥이 끊긴다"고 꼬집었다.
변 소방관은 통합적인 지휘가 제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보 교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중진화 지휘권이 대표적이다. 산불이 나면 각 지자체장이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장으로 공중진화 지휘권까지 갖게 되지만, 산림청 헬기의 지휘권은 여전히 산림청장이 가지는 비효율적인 대응 체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변 소방관은 "산림청 항공기와 소방청 항공기 간에 통신 교류가 안 된다. 정보 교류가 안 된다"며 "일원화되지 않은 진압체계에서 우후죽순으로 자기 채널을 가동해 진압한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공적 쌓기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산림청 항공대를 소방대 항공대와 합쳤으면 지휘 체계가 더 빨리 진행되지 않을까"라며 "우린 일차적인 출동 부서고, 산림청은 청장의 허가가 떨어져야 하기에 대응 속도가 늦다. 전국의 항공기를 통합적으로 동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 소방관은 "국가의 모든 재난은 소방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여기 있는 소방관들은 다 준비가 돼 있다"며 "소방이 그럴 능력이 있겠느냐 하는데, 한번 우리에게 맡겨 보면 좋겠다. 그렇게 해도 안 된다면, 더 좋은 방법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소방청 중심 개편' 제안한 국회입법조사처 TF
국회입법조사처 산불대응연구TF는 지난 27일 '대형산불 방지를 위한 과제' 보고서를 내며 산불 대응 체계를 소방청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사에 참여한 배재현 입법조사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산림청은 산림 보전 및 산림 산업 육성 관청이다. 이 중 산림 재난 대응 업무에 산불 대응이 있는데, 산불 담당 부서는 산림항공본부, 산불방지과 두 군데"라며 "그 외 7개 지방 산림청에 1~2명의 담당 공무원을 두고, 2년마다 보직을 옮긴다"라고 지적했다.
배 조사관은 "결국 산림청의 주요 산불 진화 인력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인데, 이들은 별도 조직이 아니다. 산림재난과 계장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고 했다. 산불 진압에 특화된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전국 435명이 있다. 기간제 비정규직 신분으로, 올해 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산림청 산하 5개 지방산림청과 27개 국유림관리소 등 32개 기관에 각각 분리돼 소속돼 있다.
토론에 참여한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신현훈 국가공무직지부 산림청지회장(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서로 다른 운영권자만 32명"이라며 "완성된 특수진화대 운영 교범도 없어서 운영에 필요한 방침은 매번 지침으로 전달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또 "산불재난 현장교범 없이 32명 운영권자 의중에 따라 운영하다 보니,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일상적인 운영은 물론 재난 예방 및 대응 체계가 자주 바뀐다"며 "정예화된 전문 지상진화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로 출발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말했다.
신 지회장은 그러나 소방청으로의 일원화에 대해선 이견을 냈다. 그는 "산림청이 비판받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해도, 주무 관청을 옮긴다는 건 논리 비약의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과거 각종 참사를 겪고 해당 조직 자체를 없앴지만, 몇 년 후 다시 조직이 회복되기도 했다. 실제 대안이 주무관청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것인진 더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만 진화인력 육성 문제는 산림청이 입이 10개라도 할 말 없다. 공무직 지회에서도 본청에 줄기차게 건의하고 비판한 부분"이라며 "특수진화대원들은 방치된 상태에서 스스로 크고 배우고 훈련하며 전문가가 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고 산불 지휘 본부에서 떨어지는 명령만 듣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변 소방관은 "(산림청의) 특수진화대 인력을 소방청으로 이관해 소방청의 부족한 인력을 확충하고, 각 지역의 소방학교를 중심으로 산림 및 산불 교육 과정을 만들어 소방관들을 훈련하면 더욱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할 말 많은 산림청·소방청
준비된 토론이 끝난 후 참여자석에선 10여 명이 발언권을 달라며 손을 들었다. 산불전문강사로 일하는 한 퇴직 소방관은 "의성 산불은 완전한 인재였다. 대형산불의 패턴을 다 알지 않았느냐"며 "지휘 본부에선 (영덕) 바닷가까지 산불이 확산할 거란 걸 알고 있지 않았느냐. 이걸 방송사를 부르든 미리 알렸으면 30여 명이 죽었겠느냐. 이 지휘권에 있는 사람은 인사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주소방서에서 일하는 한 소방관은 "농촌 쓰레기를 소각할 수밖에 없는 농민 현실을 반영한 제도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합법으로 소각하려면, 나이 드신 분들이 쓰레기를 모두 차에 실어서 면사무소에 가서 절차를 다 거친 후 태울 수밖에 없다. 근데 이를 할 수 없으니, 쓰레기를 직접 태워 온 것"이라며 "특수차량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소각할 쓰레기를 다 태워주는 그런 지원이 농촌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23년 차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이라고 밝힌 참가자는 "다 좋은 얘기나, 소방 쪽에 계신 분들에만 편중되는 얘기만 들은 것 같다"며 "산림청에서도 이와 관련해 발제할 기회를 달라"고 토론회를 주관한 국회의원실에 요청했다.
문성준 영덕군 부군수는 "국회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산림청 소관)는 산림청의 예산을 깎으려 하지 않고, 행정안전위원회는 소방청의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며 "산림청과 소방청이 참여하는 TF팀을 총리 직속 기관으로 두어 의견을 상충하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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