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유족의 애끊는 재판 방청 "사람을 죽여 놓고 사과하는 게 어렵습니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년] ⑥ 유족 최현주 씨 "사망한 남편에 책임 전가… 인간 도리 저버린 아리셀 경영진"

오는 24일이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다. 이를 앞두고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투쟁의 현재와 재판 진행 과정, 재발방지책을 담은 7편의 연재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추모하고 사회적 의미를 남길 수 있는 1주기를 만들고,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이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기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오후 4시경,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화성으로 갈 채비를 했습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며, 잔뜩 찡그린 얼굴로 "아~ 가기 싫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에게 "웬 투정이야? 가야지"라고 말했고, 남편은 "알았어"라며 웃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엑셀을 밟았습니다. 그것이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다음날인 6월 24일 월요일 오후 12시 30분. 평소보다 일찍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온 저는 곧바로 속보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는 익숙한 '아리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고, '폭발'이라는 글자도 쓰여 있었습니다. 심장이 요동쳤고,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음성을 수차례 들은 후 저는 곧바로 화성으로 내달렸습니다. 2시간 동안 신호위반과 속도위반을 거듭하며 가까스로 도착해 보니, 화성 아리셀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시커멓게 변한 공장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고, 기자, 소방관, 경찰 등 수백 명이 아리셀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애끊는 심정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을 즈음, 화성소방서로부터 온 한 통의 문자.

'고 김병철 님 송산장례문화원 안치.'

다리에 힘이 풀린 저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기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주저앉아 있는데, 그들은 어이없게도 기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진상규명·진정한 사과·책임자 처벌, 수없이 외쳤지만…

참사가 일어나고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유족들은 에스코넥은 물론 국방부, 노동부, 삼성, 국회, 박순관 대표 자택 등 아리셀과 관련된 곳이라면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사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상태에서 뜨거운 폭염과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며 진상규명과 진정한 사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국의 노동·시민·진보정당·사회단체 등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연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유족들은 견디지도, 버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리한 투쟁 속에서 유족들은 아리셀이 국방부에 배터리를 납품하기 위해 성적을 조작하고 시료를 바꿔치기했으며,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숙련되지 못한 이주 노동자를 마구 채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미세발열 배터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생산을 멈추고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제 남편의 의견이 무시됐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중대재해 참사 중 유일하게 구속수사를 받는 박순관·박중언 부자를 보면서, '그래도 법은 살아있구나'라는 희망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리한 투쟁의 시간을 견디며 순간순간 저 자신에게 반문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남편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압니다.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끝없는 자책과 절망, 그리움, 공허한 가슴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포함한 유가족들이 현재 바라는 것이 있다면, 1000도(℃)가 넘는 뜨거운 화염 속에서 죽어간 가족을 이제라도 잘 보내고 싶다는 소망 하나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의 사과가 필요합니다. 박순관 부자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 속에서 남편의 넋을 달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다시 힘을 내 제대로 살아가는 것,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 하나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1년이 지나도록 박순관 대표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스코넥 앞 농성장 풍경.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

합의해야 사과한다고? 인간의 도리 저버린 사람들

사과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상대에게 자기 잘못에 대해, 또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고 미안하게 생각함을 밝히는 것'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맞습니다. 유치원생도 알만한 상식입니다.

그러나 아리셀 측은 이 상식적인 일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최근 황당무계한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아리셀과 사측 변호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합의를 권유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저는 합의를 권유하는 사측 변호인에게 '사과가 우선돼야 하지 않겠냐'며 박순관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사측은 합의를 먼저 해야 사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박순관 대표의 뜻이라고 친절하게(?) 설명도 해줬습니다.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지 소름이 돋습니다. 정말이지 묻고 싶습니다.

'사람 죽여놓고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아버지→아들→죽은 자… "죄인은 누구인가?"

저는 현재 유가족들과 매주 아리셀 형사 재판 방청을 위해 수원지방법원을 오가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을 방청하는 것은 유가족에게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또 죽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매주 보며 견디고 있습니다.

아리셀 측은 남편을 죽인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죽은 자의 자존심과 영혼마저도 짓밟더군요. 아리셀의 생산관리 부실은 이미 고인이 된 생산관리팀장에게, 발열 배터리 관리 부실은 제 남편인 연구소장에게, 군납 비리와 관련해서는 스스로 극단 선택을 한 에스코넥 임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박순관 대표는 단순 투자자이기 때문에 죄가 없고, 박중언 본부장은 배터리를 잘 모르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또 죄가 없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아리셀의 최고 책임자는 누구이고, 최고 책임자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지극히 기초적인 상식이 법정에서는 다툼의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대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대표의 말 한마디가 직원들에게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정말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생산·안전 관리에 책임이 없습니까? 정말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배터리 기술에 책임이 없습니까? 정말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군납 비리에 책임이 없습니까? 무죄를 주장하는 사측 변호인들의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 도대체 법의 정의는 무엇인지 되묻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

솔직히 말하면, 이제 저는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으로부터 사과받는 것을 거의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서 '진심 어린 사과란 원래부터 없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한줄기 소망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명예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빠와의 추억과 사랑을 되새기며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 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여전히 지옥 속에서 견디고 있는 유족에게, 그리고 고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그들에게서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이제라도 남편을 제대로 보내고, 아이들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월21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열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한 유족이 울고 있다.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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