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주권을 통해 온다

[복지국가SOCIETY]

근본주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고 했다. 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올까? 자동차가 훨씬 더 편리하고, 기차는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이동시킬 수가 있는데 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했을까? 일리치가 보기에, 자전거는 자신의 직접적인 감각과 힘으로 이동하기에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각과 지성을 직접 통하지 않고, 대의된 방식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편리할 지언정 제대로 된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배움이나 의료 등도 학교와 병원에 맡기지 말고, 직접 배움을 만들어가고 스스로 몸을 치유할 것을 권고한다.

일리치는 자전거는 자연과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에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이야기한다. 대체로 자신의 편리를 구하려면 자연이나 타인의 피해를 감수하게 만드는 만들지만, 자전거는 자신의 편리를 가져오면서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자동차는 자본주의, 기차는 사회주의, 자전거는 인간주의적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자동차는 자유롭게 갈 수 있으나 탑승한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타자에게 폭력적이며, 기차는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태울 수는 있으나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한다. 반면에 자전거는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게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생각한다면, 다수가 함께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기차와 자유로운 개인들을 만드는 자전거의 적극적인 결합을 찾아봐야 한다.

행복은 주권을 통해 온다

권력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소수에게 위임하는 대의정치는 효율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자신의 힘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힘든 것처럼, 개개인들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공동의 과제가 무엇인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며,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갈등도 인내하고 풀어야 한다. 한마디로 어려움 투성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런 과정은 힘들고 고단하기에 대리인에게 운전대를 맡겨버리고 만다. 자신의 생명줄을 맡기고 고민없이 펀안하게 가고자 한다. 물론 안전벨트와 같은 안전망이 충분하고, 승객들의 요구와 기대를 잘 반영하는 역량있는 운전사라면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안전시스템이 부실하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난폭운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잡은 자들은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는 자들과 같다.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느끼는 일이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마음대로 운전하고자 하는 유혹이 금방 생긴다. 신호등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차가 없는 곳에서는 맘껏 달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동승자들의 불안감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운전자가 이상한 길, 자신만이 편한 길을 간데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초대형버스가 처한 현실이다. 기차처럼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윤석열의 계엄에서 보는 것처럼 벼랑 끝으로 차를 몰고 가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이번에는 승객들이 힘을 합해서 겨우 난폭한 운전자를 끄집어 내렸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난폭한 운전자를 끄집어 내린 이재명 정부는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잘 운전하겠다고 한다. 믿고 기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운전자 개개인들이 기분에 들떠 혹은 피곤해 절어 이상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멀쩡한 정신으로 가는 다수의 승객들이 적절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것 말고는 없다. 운전자가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조언과 질책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며, 그래도 이상한 방향으로 가면 즉시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길은 몇 번 가본 익숙한 길이 아니라,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미지의 길이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정부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선언하며 승객 다수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면서 제대로 된 길로 가겠다고 밝혔다. 선언의 진정성을 믿지만, 어떻게 의견을 수렴할지, 어떤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악마는 추상적인 선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구체적인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탑승한 국민들도 해야 할 것들이 많다. 맑은 정신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운전자가 힘들어 할 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다시 난폭운전을 할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다. 승객들이 술과 약에 취해 떠들고 불평만 한다면 대책이 없다. 맑고 현명한 정신으로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

사실 자전거도로를 잘 만들어놓고 일상생활은 자전거를 통해 다니는 것이 제일 좋다. 정치에 비유하자면 '제대로 된 자치분권'이다. 마을과 읍면동 작은 단위들이 스스로 해야 할 공동의 과제를 찾고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된다. 작은 단위들이 잘 돌아가면 상급 단위들은 부담이 줄어들고 해야 할 고유의 일만 하면 된다. 길을 잘 닦는 다는 것은 작은 단위부터 큰 단위의 일을 잘 교통정리해 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자치분권은 주민들이 직접 하면서 체감하는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부득이 대형버스로 이동해야 한다면 안전망을 충분히 하고, 승객들의 요구를 잘 듣는 역량있는 운전사를 고용하고, 난폭 운전의 징후가 보이면 즉각 운전대를 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인간들은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고, 마음대로 운전할 우려가 많다. 운전자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가깝다. 대형버스로 함께 가야 할 길이라면 승객들이 맑은 정신으로 감시하고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 말고는 사고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

맑은 정신을 가지고,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곳이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운전자에 대한 견제와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시민의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승객 모두가 한마디씩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승객 중에서 추첨을 통해 적정한 인원을 선발해 숙의를 통해 좋은 해법을 제시하면 훨씬 바림직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것은 중구난방으로 흐를 수 있기에 무작위 추첨을 통해 전체인원을 평균적으로 대표하도록 하고, 여기에 토론과 숙의를 더할 수 있다면 현명할 집단지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고대 그리스부터 검증된 방법론이고, 현대민주주의에서도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시민의회, 혁신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실험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국민주권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시민의회가 최근 본격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안이 된 헌법과 선거법 등의 제도개선,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 복잡다단한 사회적 현안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적절한 방법론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민주권을 선언한 정부가 몇 번의 사회실험을 해보면 유용성은 금방 확인될 수 있으리라 본다. 한번도 제대로 된 실험을 해본 적이 없기에 이런저런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런 때에 제일 필요한 것은 사회실험이다. 기본소득 등 사회실험을 즐겨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꼭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민들이 만드는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시민의회 전국워크숍이 6.13~14 공주에서 열려 시민의회 추진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시민의회 전국포럼 제공)

시민사회도 이런 사회실험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실험을 하더라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실험을 해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험의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해야 한다. 복지국가 핀란드가 8년 연속해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선정된 데는 이런 사회실험과 연관이 깊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다양한 정책실험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도 이런 정치철학 속에서 나왔다.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각자가 온 몸으로 체감하지 않으면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기 힘들다. 프로야구를 관전하는 것은 대리만족을 얻을 수는 있지만, 동네에서 직접하는 생활야구는 TV를 통해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온 몸의 감각과 지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각과 지성으로 하지 않는 것들은 삶의 본질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이반 일리치는 대행기구인 학교, 병원, 관료제를 믿지 말고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직접하라고 제언한다.

국민주권정부는 국민들이 이런 직접적인 삶의 행복감, 주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낄 수 없었던 그런 혁명적인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벼랑끝에서 출발한 이재명 정부가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그런 행복감을 줄 수 있기를 진실로 기대한다. 우리 시민들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행복을 상상하면서 온 몸으로 준비하고 요구해보자. 그걸 통해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제대로 된 맛과 기쁨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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