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이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다. 이를 앞두고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투쟁의 현재와 재판 진행 과정, 재발방지책을 담은 7편의 연재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추모하고 사회적 의미를 남길 수 있는 1주기를 만들고,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이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기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지난 2025년 1월 초, 아리셀 참사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즈음. 반팔티가 패딩으로, 더운 숨결이 차가운 입김으로 바뀐 그 계절에 유가족과 아리셀참사대책위(이하 ‘대책위’), 그리고 대책위 산하 법률지원단(이하 ‘대리인단’)이 수원지방법원 201호에 모였다. 바야흐로 아리셀 참사로부터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리셀 및 그 대표이사인 박순관, 박순관의 아들이자 아리셀 본부장인 박중언, 기타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되었다. 가해자들의 죄를 밝히기 위한 이 공판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다. 유가족과 대책위, 대리인단은 매주 공판을 방청하며 아리셀 참사의 진실을 두 눈, 두 귀로 더듬었다.
그리고 다시 여름. 참사 이후 다시금 반팔티의 계절을 맞이한 유가족과 대책위, 대리인단은 여전히 매주 수요일마다 수원지방법원 제201호에 모여 공판을 방청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지금이 원시시대? 기계 아닌 손을 이용해 발열검사
이 사건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피고인들이 리튬 1차전지(즉 배터리)의 보관·관리상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는지다. 한편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및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건대 아리셀 참사가 일어난 원인은 아리셀이 생산한 배터리 내부에서 비정상적인 단락(쇼트)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배터리에서 열이 발생했으며 발열이 계속되자 배터리가 터졌고 그것이 연쇄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피고인들은 배터리의 발열을 점검하여 배터리의 폭발 및 연쇄폭발을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가진다. 검사는 박중언이 이 같은 주의의무를 위반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범했다며 그를 기소하였다.
‘발열검사’라 하여 거창한 방식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다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할 당시 식당, 건물마다 설치된 열화상카메라를 기억할 것이다. 체온이 높은 사람을 선별하고 싶다면 열화상카메라에 기준 온도를 설정한 후 사람들로 하여금 카메라 앞을 지나게 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열화상카메라를 이용하면 쉽고도 효과적으로 발열을 검사할 수 있다.
그런데 웬걸, 공판에서 드러난 사실은 아리셀이 열화상카메라가 아닌 손으로 발열검사를 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점이다. 아리셀 내부 CCTV 영상에서, 노동자는 배터리를 손으로 잡아보고는 열이 느껴지면 트레이에 담고 열이 느껴지지 않으면 정상 전지로 분류해 포장하였다. 열화상카메라 등 장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배터리의 발열 여부는 오로지 노동자, 그것도 다수의 미숙련 일용직 노동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었다.
다른 업체들의 경우 일찍이 발열검사의 중요성을 인지해 열화상카메라를 도입하였다. 가령 아리셀의 경쟁사인 비츠로셀의 경우 배터리에 전해액을 주입하여 밀봉한 이후부터 쭉 열화상카메라를 이용해 배터리 온도가 41도 이상인지를 확인하였다. 즉 비츠로셀은 발열의 기준(41도)을 마련하고 열화상카메라를 통해 그 기준에 해당하는 전지를 선별함으로써 객관적이고 안전한 근무 환경을 유지하였다. 아리셀 역시 조금의 비용을 통해 열화상카메라를 설치 및 활용했다면 23명의 무고한 생명이 지금쯤 숨 쉬고 있었을까. 사람의 목숨보다 값비싼 것은 없거늘, 아리셀이 열화상카메라 비용을 아낀 이유가 전연 이해되지 않는다.
비상식적 방법으로 전지 보관, 그로 인한 연쇄 폭발
발열검사만큼이나 중요한 공정은 발열 전지를 정상 전지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리튬 1차전지는 폭발 시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최대한 연쇄 폭발을 막아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편 아직 열이 발생하지 않은 전지라 할지라도 언제든 열이 발생하여 폭발할 수 있으므로, 전체 생산 공정에서 배터리의 발열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각 배터리를 서로 분리해 보관하여 연쇄 폭발을 방지해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피고인들의 배터리 보관·관리상의 업무상 주의의무에 포함된다.
공판이 거듭될수록, 아리셀이 엉터리 발열검사에 이어 엉터리로 배터리를 보관해 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낳았다. 내부 CCTV 영상에 따르면, 아리셀 측 관리자는 2024년 6월 초경 발열 전지와 일반 전지를 구별하지 말고 전부 정상 전지와 함께 보관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는 발열전지가 시간이 지나면 식으니 위험하지 않다는, 비합리적 믿음에서 기인한 조치였다. 이후 같은 달 말경 아리셀 참사가 발생하였다. 폭발한 전지야 다시 생산하면 되지만, 23명의 노동자는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에이징(aging) 공정 역시 위험투성이였다. 에이징 공정이란 갓 생산된 배터리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위험한 바, 배터리가 폭발할 경우를 대비해 배터리들을 최대한 분리해 보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에이징 공정은 별도 공간에 격벽을 설치하고는 배터리를 각각 분리해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리셀의 경우 세척 후 에이징을 실시한다고 내부 표준 작업문서에 규정해 두었다.
그런데 아리셀은 세척을 마친 배터리를 별도 에이징 공간이 아닌 (참사가 발생한) 공장 3동 2층으로 옮겼다. 그곳은 다수의 근로자들이 작업하는 공간인바 별도의 공간에 해당하지 않으며 배터리 사이 격벽도 없었다. 요컨대 참사가 일어난 장소에 보관되어있던 배터리들은 에이징도 발열검사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언제든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위험한 전지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3동 2층이 작업공간이라 격벽을 설치하기 곤란했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위험의 이주화, 대형 참사의 또 다른 원인
아리셀 노동자의 인적 구성만 보더라도 아리셀은 늘 위험한 사업장이었다. 아리셀 노동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였다. 아리셀은 위험한 배터리 생산 공정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기는 것도 모자라, 한국말이 서툰 이주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행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측으로부터 통역을 제공받지 못했고, 다만 한국어를 잘하는 이주노동자 1인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사측의 안내 사항을 전달해 왔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발열검사 등에 대해서도 아리셀로부터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고,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만졌는데 따끈한 전지 있으면 빼놔라’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발열 전지를 분류하였다. 이처럼 아리셀은 업무에 관한 교육을 거의 진행하지 않았고 그조차도 한국어로 하여 참사 발생의 위험을 가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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