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정지원 확대와 공공성 강화, 국공립화가 답이다.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대학의 위기와 정부의 책임성

제21대 대선 후보들의 고등교육 육성 공약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이 다양한 공약이 쏟아졌다. 각 후보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는 AI 육성이나 GTX 전국 확대 등을 통한 경제발전, 대통령 계엄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나 국무총리 선출방식의 변경을 통한 대통령의 권한 축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공약에는 검찰 개혁, 노동권 강화, 법인세 감면 등 갈등 이슈에 관한 공약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공약 리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고등교육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현재 한국 고등교육이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면 이와 관련된 공약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소위 지역거점국립대 육성을 통한 공교육 강화 방안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고등교육의 처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등교육의 위기와 육성 방향: 대학의 역할에 대한 오인과 정부의 책임성 강화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는 무엇보다 대학이 학문을 연마하는 공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학업에 충실한 학생이 아니라 취업률을 높여주는 학생, 연구와 교육에 관한 업적을 쌓는 교수가 아니라 외부 연구비를 많이 가져오는 교수가 우대받는 대학, 책임감을 가지고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전임교수를 마다하고 저비용으로 강의를 맡아줄 비전임교수 채용에 급급해하는 대학, 기초학문의 육성에 대한 책무를 무시하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무차별적 학과구조조정도 마다하지 않는 대학,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춘 인재 배출에 무관심한 대학. 이들이 바로 오늘날 모든 대학이 처한 위기의 단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가 발생한 데 대한 책임은 고등교육 육성에 대한 소명 의식이 부족하고, 이에 필요한 재정지원에 소극적인 정부에 있다. 고등교육 육성에 대한 책임을 사학 법인과 학부모에게 전가했던, 그래서 소위 족벌비리사학이 만연하고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부르게 만든 이승만 시대의 후진적 인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21대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고등교육 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그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이며, 그 근원에는 대학이 경제 분야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기지라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산업 인재 육성 또한 고등교육이 담당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등교육기관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며,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학문분야를 발전시켜야 창의적인 융합 교육을 통해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 양성도 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지배엘리트들이 저지른 지난 12.3 내란은 불구화된 대학 교육과 엘리트 양성 시스템이 얼마나 해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한국 고등교육의 성과와 한계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오래전부터 한국은 높은 수준의 교육열과 성취도로 국제적인 칭송을 받고 있다. Education at a Glance 2024 (2024)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고등교육 이수율(남 63%, 여 77%, 25-34세 기준)은 OECD 평균(남 41%, 여 54%, 독일의 경우 남 36%, 여 41%)보다 훨씬 높으며, 이들 가운데 최고이며, 그 외에도 여러 고등교육지표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한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학생 1인당 공교육비(직접비)는 고작 1.4만 달러(PPP, USD)로 OECD 평균(2.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2021년 기준, R&D 포함).

한국 고등교육의 열악한 현실은 대학교원의 충원 구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4년 교육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고등교육기관의 전체 교원 수는 236,980명으로 전년 대비 4,505명(1.9%P)이 증가하였다. 비록 증가 폭이 그다지 크지 않지만, 대학 교육에 필요한 교원 수가 증가하였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일부 지방대학이 폐교까지 하는 등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원 수가 증가했다는 사실은 대학생들이 ‘콩나물’ 강의실에서 벗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 1: 전임교원의 감소와 비전임교원의 급증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증가한 것은 전임교원이 아니라 시간강사, 초빙/겸임 교수를 포함한 계약직 교원인 비전임교원이라는 사실이다. 아래의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2024년 전체 교원 가운데 비전임교원 수는 149,662명으로 전년 대비 5,352명(3.7%P) 증가하였지만, 전임교원 수는 87,318명(전체 교원 가운데 36.8%)으로 오히려 전년 대비 847명(1.0%P) 감소하였다. 최근 10여 년 동안 교원 수 증감 추이를 살펴보면 비전임교원 수가 2014년의 4.98만 명에서 2024년 14.66만 명으로 무려 3배 가까이 급증한 반면, 전임교원 수는 8.82만 명에서 8.73만 명으로 소폭 감소하였다.

▲<그림 1>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의 수(2014~2024) 자료 출처: 한국교육개발원(2024)

불편한 진실 2: 인문사회계열 중심의 전임교원 축소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교원 수와 감소 추이의 계열별 편향성에 관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전임교원 대비 비전임교원 수가 급증한 것은 계열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래의 그림 2에 잘 나타나듯이 2024년 인문·사회·교육·예체능 계열의 경우 비전임교원의 수가 전임교원 수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예체능 계열의 경우 전임교원보다 비전임교원의 수가 4배 가까이 많다. 공학계열이나 자연계열의 경우에도 비전임교원 수가 전임교원 수보다 많지만, 그 차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의약 계열만이 전임교원의 수가 비전임교원 수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2> 계열별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의 비율. 자료 출처: 한국교육개발원(2024), 소속 학과가 없는 교원은 제외

아래의 <그림 3>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3년 사이에 계열별 전임교원 수의 변화이다. 전체 전임교원의 수는 2021년 90,464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이 그림에 잘 나타나듯이 전임교원 수의 감소 폭은 계열별로 현저히 다르다. 의약계열을 제외한 모든 계열에서 전임교원이 감소하였지만, 인문사회 계열 및 예체능 계열의 전임교원 감소율은 현저하게 높다. 사회계열에서만 1,406명, 인문계열에서는 이보다 조금 적은 1,061명의 전임교원이 감소하였으며, 이는 이 기간에 감소한 전임교원 3,181명의 77.6%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계열과 인문계열 비전임교원의 수는 2021년에 비해서 무려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에 예체능계의 비전임교원의 비율은 6배 가까이 증가하였다(한국교육개발원 2021; 2024).

▲<그림 3> 계열별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의 증감(2021-2024). 자료 출처: 한국교육개발원(2021; 2024), 소속학과가 없는 교원은 제외

비전임교원 수의 증가 원인과 대안: 대학의 재정 위기와 교육재정 확대

2020년부터 전체 교원에서 비전임교원 수가 전임교원의 수를 추월하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 대학의 재정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대학들은 전임교원을 늘리기보다 폐강 요건을 강화하며 과거 강사들에게 맡겼던 강좌 수를 대폭 줄였다. 여기에 더하여 지난 1980년대 초반 졸업정원제 도입에 따라 대규모로 임용되었던 전임교원이 대거 퇴직하면서 결원이 된 자리를 비전임교원으로 대체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대학교원의 '비전임화' 현상은 재정위기에 몰린 대학, 특히 사립대로서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이들의 생존전략을 허용하고 더 나아가 이를 조장한 책임은 다름 아닌 정부에게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등교육을 개선하려면 이에 대한 재정지원을 소홀히 했던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

거점국립대 중심의 대학육성전략은 수도권에 집중된 고등교육 역량을 비수도권에 분산시킴으로써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 있는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공약에는 거점국립대학과 사립대를 포함한 지역의 대학들이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아울러 이들의 공약에는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학 육성 정책이 빠져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사립대 육성은 정부의 책임이 아니며, 오히려 사립대의 자율성과 자생력을 위협할 수 있다'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로 고등교육 육성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립대는 물론이고 사립대 역시 정부가 재정지원을 통해 육성해야 할 공공의 기관으로 여기에 마땅히 포함해야 한다.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대학들만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고등교육 정책은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대학의 공공성 강화와 국립대로의 전환의 길 개방

여기에 더하여 학생 수가 부족한 대학에 대하여 ‘해산 장려금’까지 주며 폐교를 유도하기보다 국가가 이를 환수하고, 이들 가운데 일부를 거점국립대의 로컬 캠퍼스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하다 중단된 '공영형 사립대' 정책과 같이 사학법인의 공공성 강화와 재정지원을 연계해야 하며, 지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립대가 국립대 혹은 시립대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교육 분권에 속도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대학육성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중앙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고등교육 육성 역시 국가의 책무라는 확고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방기했던 대학의 공공성 강화와 재정지원의 책무 이행에 충실해야 한다.

전임교원의 확충과 인문사회계열 육성 및 민주시민 교육의 강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최근 한국은 전임교원의 축소로 인해 대학 교육의 질이 악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학교육의 질은 교원에게 달려 있으며, 전임교원의 확충 없이 대학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전임교원을 비전임교원으로 대체하여 그 수를 늘리는 것이 재정위기에 처한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임시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는 한국 고등교육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비전임교원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전임교원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처우개선이나 교원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원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이공계열에 비해서 정부재정지원의 규모가 현저히 적을 뿐만 아니라 저조한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로 대학구조조정의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인문사회계열의 발전을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 학문만이 아닌 균형 있고 종합적인 학문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들이 공학계열만이 아니라 자연계, 의약계, 인문사회계, 예체능계 등의 분야에 대한 기본 소양을 쌓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여 민주적 시민문화를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학사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가 고등교육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참고 문헌

OECD. 2024. Education at a Glance 2024: OECD Indicators,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c00cad36-en.

한국교육개발원. 2021. 교육통계연보 2021.

한국교육개발원. 2024. 교육통계연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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