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충현, 원청 업무 대신하다 사망…현장에 안전 따윈 없었다"

고 김충현 산재 사망 대책위 1차 조사 발표 "수시로 원청 일 받아…유족·대책위 참여 진상조사위 꾸려야"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고(故) 김충현 씨 산재 사고를 조사 중인 노동조합과 동료들이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김 씨가 당시 왜 원청의 업무를 하고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며 "오랜 경력자가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를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족과 함께 유족, 대책위, 노조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김 씨 동료들과 발전소 비정규직 노조, 김용균 재단 등이 참여하는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에서 '고 김충현 씨 사망사고에 대한 1차 조사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현장 CCTV, 김 씨의 동료 및 회사 관계자의 증언, 김 씨가 작성한 업무 일지 등을 조사한 대책위는 "향후 제대로 된 조사의 기초가 되길 바란다"는 취지로 이번 발표를 준비했다.

지난 2016년부터 약 6년간 태안화력발전소 선반공(기계 정비)으로 일한 김 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경 발전소 부지 내 기계공작실에서 화력발전소에 필요한 특수 장비인 'CVP 벤트 밸브핸들'를 제작하던 중, 작업 중이던 선반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해당 기계공작실에 김 씨는 통상 홀로 작업했고, 사고 당일에도 혼자 일했다.

김 씨는 직원 수 25명 규모의 한국파워O&M 소속으로 태안화력을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의 2차 하청노동자다. 서부발전은 정비 업무를 한전KPS에 외주화했고, 한전KPS는 이를 '특수 정비'와 '경상 정비'로 분리해 경상 정비를 한국파워O&M에 재하청했다.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5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에서 고 김충현 씨 사망사고에 대한 1차 조사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공공운수노조
▲사고가 발생한 설비. ⓒ대책위

사고 경위를 밝힌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은 "CCTV를 본 결과, 설비를 가동하자마자 순식간에 왼손이 빨려 들어갔다"고 전했다. 또 "780rpm(분당 회전수)으로 도는 '척'(고속 회전 가공설비)에 공작물을 넣고 깎아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 설비는 공작물을 꽉 잡아주지 못하는 구조의 설비였다"며 "이때 고속 회전하면, 잘 고정되지 않은 쪽이 불안정하게 회전하고, 이때 소매가 빨려 들어가는 등의 이유로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추정한다"고 말했다.

최 상황실장은 "왜 더 단단히 고정하는 설비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왜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며 "오랜 경력의 재해자가 왜 저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라고 말했다. 김 씨가 만들던 장비는 '발전소 특수 부품'으로 일반 설비를 담당하는 한국O&M의 업무 대상이 아니었다. 즉 원청 한전KPS의 일을 김 씨가 대신 하다가 산재 사고가 났다.

대책위는 김 씨의 지난 한 달 치 업무 기록만 확인했음에도 "대부분의 작업이 1차 하청 한전KPS의 업무로 파악됐다"며 "한전KPS의 기계공작실(김 씨 근무 공간)이 2차 하청업체에 떠넘겨졌지만, 실제론 KPS를 위해 작동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전KPS 하청노동자들이 모인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4명은 2022년 6월 한전KPS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다.

▲대책위가 정리한 고 김충현씨 산재 사망 사고 경위. ⓒ대책위

'안전 무방비' 상태에서 6년 일한 김충현

대책위 조사를 종합하면, 김 씨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감독하는 사람은 없었다. 최 실장은 2차 하청업체의 소장이 김 씨가 다루던 설비와 관련된 기본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김 씨의 팀원들은 대부분 발전소 현장에서 일했고, 김 씨만 기계공작실에서 혼자 일했다. 최 실장은 김 씨가 팀장과 만날 일도 없고, 팀장 또한 김 씨의 업무는 잘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전관리와 관련된 서류는 모두 갖춰져 있었다. 대책위는 김 씨의 'TBM(작업 및 안전 검토 회의·Tool Box Meeting)' 서류 한 달 치를 확인했다. 최 실장은 "문서를 보면 참석자는 1명만 있다. 미팅이 아닌 거다"라며 "혼자 서류 작성하고 결재 올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소장, 팀장이 서명하고 넘어가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심지어 '어떤 위험이 있다'고 수기로 쓴 부분은 다 복사된 상태였다. 복사 용지에 그날 작업 내용만 새로 써왔던 것"이라며 "종이 오른쪽 상단엔 KPS의 작업 의뢰 부서 담당자 서명도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현장 직원 증언을 종합하면, 원·하청 간 작업 지시는 무분별하게 이뤄져 왔다. 기계 가공 의뢰는 '원청→하청→담당 직원' 방향으로 작업 검토와 지시 절차가 정해져 있는데, 절차를 지키지 않고 원청 부서가 하청 직원에게 직통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고 했다. 최 실장은 "업무 기록은 있는데 작업의뢰서(원청 작성)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에 "작업의뢰는 무분별하게 이뤄지는데 안전관리 시스템은 다 깨져 있다"며 "다단계 하청이 구조적 원인"라고 진단했다.

▲기계공작실 안에 있는 김충현씨가 쓰던 책상. 김씨의 책상엔 '이재명과 기본소득' 책이 독서대에 펼쳐져 있었다. ⓒ대책위

"문 정부, 안전인력 확충 '귓등으로도' 안들어"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김용균 특조위'에서 권고한 안전 관리 개선안 중 제대로 이행된 게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권 대표는 2019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간사로 활동했다.

특조위는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 외주화된 '운전 분야'와 '경상 정비 분야' 하청노동자를 모두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당시 정부·여당 및 발전5개사는 고 김용균 씨가 소속됐던 운전 분야의 정규직화만 수용했다. 권 대표는 "그럼 경상 정비의 안전관리 인력 충원이라도 하라고 권고했는데 정부는 정말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7년 후 경상 정비 부문의 하청노동자가 또 산재 사망했다. 운전 분야의 정규직화 약속 또한 김용균 사망 7년째 이행되지 않고 있다.

권 대표는 원청 업체들이 책임 회피성 입장을 내놓은 것을 겨냥해 "민법상엔 도급 규정만 있고, 이에 따르면 서부발전은 2차 하청업체에 대한 도급인이 맞는다"고 강조했다. 만약 서부발전이 산업안전보건법 건설 공사상의 '발주' 개념을 이용해 '우리는 발주자이지 도급인이 아니'라고 강조해도, "기계공작실은 건설공사로 볼 수 없고, 여전히 기계공작실 시설 소유권, 운영 권한 등을 서부발전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족은 이에 "원·하청 3개 회사 모두 사망 사고가 김충현의 잘못이 아님을 밝히고 사과하라"며 "유족, 대책위,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조사위를 구성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안전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실질적 책임자를 처벌하고, 유족에 정당한 배·보상을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

대책위도 같은 요구에 더해, △김용균 사망 이후 정부·여당이 약속했던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위험업무 2인 1조 및 인력충원 △발전소 전체 특별근로감독 실시 △발전소 폐쇄 관련 모든 노동자 총고용 보장 및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요구했다.

▲5일 1차 조사 발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 김충현 씨의 형.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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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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