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홍범도함' 사건? '성소수자 인권달'에 성소수자 운동가 기린 군함명 변경 추진

바이든 정부 응급임신중지 보장 지침도 폐지…위중한 임신·유산 관련 증상 여성 치료 못 받을 가능성 커져

미국 국방부가 다양성 공격의 일환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를 기린 해군 함정 명칭을 바꾸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건강 상태가 위급한 임신 여성에 응급임신중지를 보장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지침을 철회해 미국 여성들의 건강 위험이 커졌다.

<워싱턴포스트>(WP), 미 CNN 방송 등을 보면 3일(이하 현지시간) 미 국방부 당국자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에게 해군 급유선 '하비 밀크호'의 함선명을 변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한국전쟁 참전 이력이 있는 미 해군 출신 하비 밀크는 미국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군에서 강제 퇴역 당한 뒤 1977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되며 미국 첫 동성애자 선출직 공무원 중 하나가 됐고 이듬해 암살됐다. 하비 밀크호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해군성 장관을 지낸 레이 메이버스가 2016년 명명했다.

명칭 변경 결정은 이달 중순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뉴욕타임스>는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이러한 결정이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Pride Month)'에 대한 반발로 의도됐다고 전했다. 미국 성소수자 권리 운동에 불을 지핀 1969년 6월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것으로 시작된 자긍심의 달엔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 인권 의식을 증진하는 행사가 열린다.

하비 밀크 외에도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된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노예 해방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등 미국 사회 운동의 상징적 인물들을 기린 해군 함선 이름이 변경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미 국방부는 3일 성명을 통해 "헤그세스 장관이 모든 국방부 시설과 자산에 붙은 명칭이 최고 사령관의 우선 순위, 나라의 역사, 전사 정신을 반영하도록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선박 이름 변경은 "내부 검토가 완료된 뒤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이 악의적 움직임은 국가안보나 '전사' 정신을 강화하지 않는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유산을 기리는 미국의 근본 정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국방부는 성소수자 차별을 강화해 트랜스젠더 군인 퇴출도 진행 중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군인 1000명을 전역시키기로 했다. 또 트랜스젠더 신고 기간을 부여해 "자발적 퇴역"을 권고 중이다. 국방부는 버티다 "비자발적 퇴역"을 당할 경우 "자발 퇴역"에 비해 퇴직 수당이 절반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트랜스젠더 군인 복무를 사실상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한편 트럼프 정부가 상태가 위급한 임신 여성에 응급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바이든 정부 지침을 철회해 여성 건강이 다시 한 번 위협 받게 됐다.

3일 <AP> 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22년 7월 바이든 정부가 내린 임신 중이거나 유산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 대상 '응급의료 및 분만법(EMTALA)' 강화 적용 지침을 철회했다. 이 지침은 보수 우위 미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철회하는 결정(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을 내린 직후 나왔다. 임신중지가 거의 전면 금지된 주들에서 이로 인해 건강 위험을 겪는 여성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1986년 제정된 응급의료법은 미 전역의 병원들이 보험 가입 여부나 지불 능력과 관계 없이 모든 환자들에게 표준적 응급의료를 제공하도록 한다.

바이든 정부의 2022년 지침은 응급의료법을 적용함에 있어 자궁 외 임신, 유산 합병증, 중증 임신중독증을 포함해 임산부와 관련된 응급 의료 상황을 폭넓게 정의하고, 이러한 환자 상태 안정화를 위해 임신중지가 필요할 경우 의료진이 이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주법이 임신중지를 금지하거나 임신중지가 가능한 상황을 이 지침보다 좁게 제시하고 있을 경우 주법보다 지침이 우선된다고도 못 박았다.

트럼프 정부가 이 지침을 철회하며 임신중지가 금지되거나 제한된 주에서 임신 및 유산 관련 증상으로 생명 위협을 겪는 여성들이 응급임신중지 수술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미 조지타운대 보건법 전문가 로렌스 고스틴 교수가 "이는 기본적으로 공화당주 병원들이 위험에 처한 임신 여성을 돌려보낼 수 있게 승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는 전 정부 지침을 폐기했을 뿐 새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진 않았다. 미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의 법학 교수 메리 지글러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뒤 우린 이미 불확실성과 혼란으로 의료진이 개입을 꺼리게 되는 경향을 발견했다. 의사가 개입을 꺼릴수록 임신에 더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AP>가 지난해 8월 연방 병원 조사를 분석한 데 따르면 바이든 정부 지침이 존재했던 때조차 많은 임신 여성이 필요한 응급 치료를 받지 못했다. 통신은 2022년 이래 자궁 외 임신 등으로 응급실을 찾은 위급한 임신 여성 100명 이상이 치료를 거부 당하거나 부적절한 치료를 받았다고 짚었다. 응급임신중지가 필요한 상황이거나 이미 유산이 진행되고 있더라도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주의 의료진이 처벌이 두려워 개입을 꺼린 탓이다.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재생산권센터의 낸시 노섭 회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여성이 생명을 구하는 임신중지를 받는 것보다 응급실에서 죽길 원한다"며 지침 철회가 "임신중지가 금지된 모든 주의 병원에 이미 존재하는 공포와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4년 12월13일 미국 해군 급유선 하비 밀크호가 항해하는 모습. 이 함선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하비 밀크를 기려 명명됐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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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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