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배제·포퓰리즘 난무한 선거전, 왜?

[분석] 정치적 극단화 영향…통합·상호존중 회복 시급

6.3 조기 대선은 선거기간 내내 유난히도 혼탁한 선거전 양상이 이어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그로 인한 대통령 탄핵 결정, 1.19 서부지법 폭동사태 등 배경이 되는 정치적 격변 상황이 영향을 미친 탓도 있지만, 정치적 극단화가 심각한 수준인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면이 있다.

'혐오의 정치화'…한국정치도 미국·유럽 따라가나

이번 대선을 전후해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이자 문제점은 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치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단순히 한국사회에 혐오·배제 문화가 내면화된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공격해 표를 결집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

미국·유럽에서 나타난 극우세력의 소수자 배제 정치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우파 정치집단에서 이런 사례가 나타나는 일이 잦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선거 막판 유세 연설에서 더불어민주당 선거 차량이 외국 출신 귀화인 유권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경기 안산에서 중국어 유세 음성을 송출한 일을 겨냥해 "중국 사람 많이 산다고 민주당이 중국말로 선거 유세를 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중국어로 연설하면 되겠나"라고 혐중 정서를 이용한 공세를 폈다.

스스로 '페미니즘의 안티테제'를 자처해온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정치인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는 전 국민이 시청하는 TV토론에서 여성 신체에 대한 성폭력 행위를 묘사한 발언을 구체적으로 재현해 큰 파문과 충격을 안겼다. 국민의힘 소속 지방의원이 중학생들에게 이 발언을 언급하며 접근해 경찰 고발을 당하는 등 2차 가해 사례까지 나왔다.

민주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당 및 이재명 후보 지지층 입장을 대변해온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문수 후보 배우자의 노조 비하 발언을 비판하던 과정에서 자신이 여성·노동자를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인식을 보여 논란이 됐고, 결국 이재명 후보로부터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경고를 받아들었다.

혐오는 적대를 먹고 자란다

통합을 지향하기는커녕 차별을 부추기거나 이를 이용해서라도 '우리 진영'의 득표 활동에만 도움이 되면 된다는 식의 정치에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이른바 정서적 극단화(또는 양극화)이다. 정서적 양극화란 상대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지나치게 커져,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잘못에 눈을 감거나 나아가서는 민주주의 원칙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현상을 말한다.

민주당의 경우,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나 비판을 '내란 공범'과 바로 동일시하는 듯한 인식을 보인 것은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히 이재명 후보에 대해 대법원이 선거기간 직전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한 데 대해, 대법원장을 비롯한 10인의 대법관이 이재명 후보를 제거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 판결을 했다는 주장이 민주당 지지층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재명 후보 본인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법원을 겨냥 "정치에 개입한 것이 명백하다"고 해 같은 인식을 보였다.

반대편에서 나타난,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파면 결정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옹호하는 우파 진영 일각의 정서는 "민주주의 절차를 파괴하면서까지 반대 진영을 억압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진영 간 상호 혐오가 심해져 그것이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로까지 이어진"(이상경 서강대 교수, 2.21 <프레시안> 기고) 경우라 할 수 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선거기간 계엄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몇 차례 밝히기는 했으나, 계엄을 옹호해온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 등과의 관계를 명확히 끊지 못하고 이들의 지지표를 흡수하려는 기대를 보여 그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또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주장과도 선을 긋지 않고 "사전투표에 부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신고하라", "적발하면 완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등의 언행을 김 후보가 직접 나서서 하기도 했다.

"반대 정당·세력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음모론은 때에 따라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반대편에 선 유권자들의 적개심과 혐오를 강화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확인됐다"며 "이 과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집단 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하고, 결국 사회 공동체 전체가 분열에 이를 수 있다"(☞관련 기사 : [이상경 칼럼] 그들은 왜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나?)고 한 전문가는 경고한다.

한국'정치'는 한국'사회'의 거울

이같은 특이사례를 제외하고도 이른바 '막말'로 흔히 묘사되는 혐오·배제·대상화 발언도 선거기간 내내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여성·장애인·이주민 등 정치적 소수자에게는 상처와 분노를 남겼다.

정당의 공식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비판자를 ×신 만든다"는 장애혐오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대선후보가 젊은 여성 정치인을 가리켜 "'미스 가락시장'(으로) 뽑아서 가락시장 홍보대사 임명장 줘야겠다"고 한 일, 한 국회의원이 여성에게 '출산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가 선대위 직책에서 사퇴한 일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넘어 한국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드러낸 장면으로 꼽힌다.

대선후보 배우자가 "제가 노조하게 생겼나? 노조는 아주 과격하고, 세고, 못생기고... 저는 반대되는 사람이다. 예쁘고, 문학적이고, 부드럽고"라고 노조 비하 발언을 하거나, 대선후보가 "사랑이 있으면 다리 밑에서도 살 수 있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이건희 회장 딸도 극단적 선택을 해버렸다"고 한 일도 노동·인권 감수성 부족 사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시민사회에서 나온 "성평등이라는 정책 프레임은 실종시킨 채 단지 여성을 복지나 안전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만 다뤘을 뿐"(한국여성의전화), "공약과 비전이 사라진 21대 대선에 성폭력 발언, 여성 비하 발언, 불법적 댓글사건 등 한국사회·정치의 암울한 이면이 여지없이 드러났다"(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등의 비판을 정치권뿐 아니라 한국사회 구성원 모두가 새겨들어야 한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유세 중인 가운데 일부 학생들이 최근 이 후보의 TV토론 여성 신체 관련 발언을 규탄하며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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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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