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의 'AI 대선공약'에 정의로운 전환은 없다

[시민건강논평] 정의로운 AI 전환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많은 분들이 사전투표를 마쳤을 듯 하다. 친위 쿠데타로 촉발된 조기대선인만큼 '내란 종식'이 선거 국면 전반을 지배한 최대 화두였고, 정권 교체 여론이 줄곧 우세하였다는 점에서 선거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민주당은 유세 기간 동안 마치 부자 몸조심하듯이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이 민감한 이슈는 피해가는 행보를 보였다. 대선 정책공약집도 사전투표 하루 전날에서야 공개했는데 이는 2017년 조기대선 때보다 5일 늦은 것이다.

아무리 '묻지마 진영투표' 성격이 강한 분위기라도 공약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은 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특히 차기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출범하는 관계로 대선 공약이 정권 초기 국정운영 과제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부분적으로 발표됐던 공약들이 대부분 그대로 담겼지만 새로 제시되거나 수정된 내용도 적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국정철학과 비전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큰 틀 속에서 각 정책들이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볼 기회를 제한하였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내용이 더 큰 문제다. "진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며 '회복·성장·행복'을 3대 비전으로 제시했지만, 정책 비중만 보더라도 "진짜 성장", 즉 경제성장에 무게추가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전 논평에서 계속 지적했던 바이지만, 공약집에서조차 이렇게 노골적으로 성장 일변도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구조적 불평등 해소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 대선 때 거론되기도 했었던 '경제민주화'도 종적을 감췄다. 역대 어느 정부도 성장 기조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지만, "제2의 IMF"에 비견되는 상황이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경제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 듯 하다.

동시에 이번 성장론의 특징이 '기술주도 성장'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AI 대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 양당 후보 모두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겠다는 입장인데,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일찌감치 "AI 기본사회 구축"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산업 육성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공약집에서도 '진짜 성장'의 5대 전략 중 1대 과제로 "AI 3대 강국 진입과 미래전략산업 육성"을 제시했다. 참고로 'AI 3대 강국' 도약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내세운 정책 목표이기도 하다.

이렇게 특정 산업 영역이 '제1공약'으로 다뤄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개 거시적이면서 범시민적 삶의 문제와 관련된 의제가 상징성 있는 첫번째 공약으로 제시됐던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그런데도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는 건 그만큼 국가의 미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글로벌 AI 기술패권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된다는 인식이 현재 우리 사회에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일 테다. 30년 전 전 세계에서 "유례 없이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한 덕분에 이만큼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인식도 한몫 거들고 있는 듯 하다. 경제지와 보수 언론에서도 투자 재원 마련 등 실행가능성 문제를 지적할 뿐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방향대로 공약들이 실현되면 '첨단산업 생태계'는 육성될지 모르나 '진짜' 생태계는 황폐해지고 시민들의 삶은 더욱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먼저 우리는 그간 국가 경제의 견인차로 절대적 위상을 누려왔고 이제는 AI 산업의 필수 부품 생산으로 각광받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양의 전력이 소모되는데, 2023년 기준으로 반도체 생산 산업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44.39TWh(테라와트시)로 데이터센터 사용량(3.75TWh)보다 약 12배 많다.

현재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LNG 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경우 탄소 배출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핵발전소 신설 대신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동시에 핵발전 진흥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미심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비수도권 지역에 발전소와 송전탑을 건설하고 '에너지고속도로'를 구축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에너지 수탈'이라고 볼 수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또한 반도체 생산 공정에는 많은 물이 사용된다. 메가 클러스터의 공업용수 수요는 하루 약 170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공급 가능량은 77만 톤에 불과한 상황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몇 해 전 대만이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반도체용 공업용수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듯이 우리 역시 물 부족 사태를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인근 지역에 '기후대응댐'을 건설할 경우 심각한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

이밖에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양의 폐수와 각종 유해화학물질을 배출하며 수질오염과 토양오염, 대기오염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반환경적 산업이다. 아울러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반도체 노동자들이 입는 건강 피해 문제와 '특별연장근로' 적용 확대와 같이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문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이렇게 노동자와 자연을 착취하는 반도체 산업을 적극 지원한다고 해서 그만한 결실을 거두리라는 보장도 없다. 장기간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는 만큼 투자 수익이 발생할지 불확실할 뿐더러 고용 창출 효과도 생각보다 크지 않고, 대체 기술 등장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상기 자료 참고). 그리고 재벌 대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 R&D 투자 지원과 대규모 산업 인프라 지원 등은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로 귀결된다.

AI와 관련된 접근 역시 이것이 시민의 삶과 건강,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고려가 결여돼 있다. 그저 기술낙관론에 기댄 채 '인공지능 대전환(AX)' 시대에 맞게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AI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 산업 육성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장밋빛 전망만 가득하다. AI 예산 증액을 비롯해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 개 이상 확보, 그리고 '한국형 챗지피티'를 만든다는 '모두의 AI' 프로젝트 등이 그러한 공약들이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 역시 막대한 전력과 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AI의 무분별한 확장은 기후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 AI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다시 화력 에너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하는데, 일례로 구글의 탄소 배출량은 2019~2023년 동안 48% 증가하였다(☞관련자료 바로가기). 하지만 우리 사회는 AI 기술 개발을 통해 기후위기도 해결할 수 있다는 가속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인 듯하다.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통과된 'AI 기본법'에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또한, AI는 시민들의 데이터 인권과 창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심화할 수 있지만, 'AI 기본법'에는 이러한 위험성이 무시되고 있다. 또한 산업 발전에 저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고위험 AI에 대한 사전 규제도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AI 의료기기를 포함한 신규 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시장에 즉시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의 일부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상태이기도 하다.

아울러 AI 발전은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게 될 것이다. 국내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의 일자리가 AI 때문에 없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실제로 콜센터 상담사의 말투와 노하우를 학습한 AI 상담 서비스가 인간 상담사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매년 최대 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AI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최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렇듯 맹목적인 AI 산업화는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 큰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거대 양당이 이런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AI를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범시민 AI 공론화 위원회'를 설치하여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AI 실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AI 데이터센터를 "공공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고, 디지털 성착취를 퇴출하는 등의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이렇듯 AI 사회로의 전환은 '정의로운 전환'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적 전환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전환은 '체제 전환'의 긴 안목에서 정확하고도 효과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이 이런 관점을 구현할 정권을 창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선택과 실천을 통해서 이번 대선 공간을 '정의롭고도 변혁적인 AI 전환'이라는 담론을 정립·강화하고 확산할 수 있는 교두보로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진보정당 후보의 공약을 주요 언론을 통하여 접하고 '정의로운 AI 전환'이라는 관점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3% 이상 득표했기 때문이었다. 6월 3일은 대통령 선거조차도, 소중한 나의 한 표도, 체제 전환과 목적의식적으로 연결시키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실천의 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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