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대표된 온라인 커뮤니티 겁내는 정치, 시대정신과 함께할 자격 없다

[시민건강논평] 광장의 빛이였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정치

무려! 2025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성 국회의원을 '미스 가락시장'으로 부르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산 가산점'을 운운하는 공당의 선거운동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재명후보는 2022년 20대 대선에서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하라고 윤석열 후보를 몰아치며 자신을 '여성안심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그는 "빛의 혁명"의 역사적·정치적 의의는 강조하면서도 정작 광장을 빛나게 물들였던 '2030여성'에 대한 치하는 아끼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절절했던 구조적 성차별은 왜 나중으로 밀려나고 있는가.

16일에 나온 민주당의 여성공약은 '여성이 안전한 나라'이다. 교제폭력과 디지털성범죄 등 여성대상 범죄대응 그리고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등이 포함되었다. 반면, 탄핵광장에서 많은 여성들이 요구했던 사회대개혁 과제인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책과 비동의강간죄 도입은 누락되었다. 2024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관련 의약품을 도입하라는 내용을 담은 전향적인 권고안까지 냈다. 그러나 지난 대선과 달리 임신중지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공약에서 제외되었고, '낙태죄' 후속 입법 계획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뻔한 답변을 내놓았다.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과 자신의 안전에 대해 신뢰를 가진 여성들은 더 많은 사회적 참여와 경제활동의 기회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여성인권운동은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공∙사 공간에서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며, 억압되거나 강제되지 않는 재생산권리를 통해 주체적 삶을 정립할 수 있도록 전진해왔다. 이런 권리들의 보장수준을 '성평등지수' 또는 '유리천장지수'로 측정하고 더욱 개선해 가는 것이 현대국가들의 목표이다.

성평등은 우리 논평을 비롯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거듭 말했듯이 절대로 남성들의 특권과 지위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젠더갈등으로 이분되거나 폄하될 '불온'의 온상도 아니다. 성평등한 사회가 일관되게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근거들은 말 그대로 차고 넘친다.

인적자원의 관점에서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에 투자하여 경제적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최근 주류 경제학의 접근이며, 국제투명성기구나 세계은행은 공공분야에서 여성비율이 높고 여성 리더가 많을수록 부패도가 낮다는 연구를 인용하며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성평등한 사회에서 남성들의 개인적 삶도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고 직장에서의 생산성도 높아진다. 남성들의 자살 위험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친밀한 여성파트너를 살해할 위험까지 낮춘다는 사실들도 밝혀져 있다. 정치체제와 여러 사회제도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인구집단의 건강 수준에 관한 수많은 사회역학 연구의 결론도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2005)이다.

또한 세간의 인식과 달리 한국 청년남성들의 구체적인 성평등 의제에 대한 동의 정도는 결코 낮지 않다. 그렇다면 왜 마다할 것인가. 이런 기회를 적극 받아들이는 것이 민생을 돌보는 잘사니즘 실용주의, 흑묘백묘론의 요체가 아닌가.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또래 남성들의 상처'를 운운하며 모두의 삶에 더 나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성차별 구조의 타파를 직격하는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실제로는 과잉대표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겁내며 자신들의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 이런 정치는 시대정신과 함께 할 자격이 없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주장하면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과 건강권을 요구하는 데 대해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는 변명의 정치, 임상적·제도적 차원에서 기존의 보건의료체계에 무난히 안착시킬 수 있는 포괄적 성재생산권 보장 약속을 하지 않는 배제의 정치,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처한 부당한 젠더불평등 구조를 온존시키려는 자들과 권력을 나누겠다는 편향된 정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위장된 선전, 차별적 실용주의라고 진단한다.

구조적 성차별에 왜 도전하지 않는가. 만연한 차별을 지지하는 세력의 표심까지 도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정치인가. 우리는 춥고 외로웠던 사람들의 희망을 부수고 그들의 고통을 도리어 레드카펫 삼아 정권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기만에 분노한다.

또한 우리는 저들이 말하는 실용주의가 경제적 총합으로서의 이익 또는 일부 기득권세력의 선호를 우선해서는 안 되며, 게다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 단위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생존을 바라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노동자의 권리를 유예하고, 기후재난의 시대에 생태환경을 불가역적으로 파괴하고, 오늘 선적된 수출품이 참혹한 반인도적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의 무기로 쓰이는 실용주의가 과연 우리 공동체의 지향일 수 있는 것인가.

대체 사회적 합의란 무엇인가? 사회적 합의에 대한 요구는 누구에게나 공평했던가? 우리는 권력자들의 반칙과 위법이 정당한 법제도적 처벌조차 모면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당장 사형이나 무기징역 처벌밖에 내려질 것이 없는 내란수괴 윤석열이 불구속 상태라는 것만 봐도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 중대한 사회적 합의가 특권 앞에 무력해져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제인권규범의 이행이자, 다수 시민이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임에도 왜 또다시 나중으로 밀려나는가?(☞관련기사 : "윤석열도 없지만 성소수자 차별도 없는 사회, 언제 오나요?") 국가권력이 약자들의 입막음을 위해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을 내세울 뿐, 사회적 합의를 지키려고 하거나 스스로 옳은 사회적 결정을 이끌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그 권력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지속할 수 없다.

지난 5월 14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700회 수요시위에서 혐오발언으로 집회를 방해하는 극우시위대와 방관하는 경찰을 향한 권영국 후보의 일갈은 이번 공식선거운동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조용히 하지 못할까. 감히 전쟁범죄의 피해자를 모욕해? 너희들이 인간이야? 양심을 가진 인간이냔 말이야. 그리고 경찰에게 이야기합니다. 집회를 방해하고 있는 저 인간 이하의 자들을 왜 방치하고 있는 건가. 당장 집회시위 법률 위반으로 현행범으로 체포하라"

이 발언은 국가와 치안이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 기계적 중립의 피해가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 보여준다.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어떤 시민들을 방기하는 정치는 실용주의도 민생도 아니다. 불평등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더 나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려고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실용이자, 민생이다.

12.3 내란사태는 급진적인 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많은 시민들이 평소라면 주저했을, 대승적인 결단과 호혜적 부조를 구현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내란으로 드러난 사회위기를 극복하는데 자신을 던진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정치를 보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여전히 시민들은 내란종식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제도권 정치가 내란세력을 이겨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만 그 불안감을 끌어 써서는 안된다. 단지 득표율로서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급진적인 질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내란세력들과 민주공화국의 파괴 세력들이 하지 못했던 것,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들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아주 멀리 전진시켜 놓아야 한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감과 연대에 기반하여 "여성들의 고통에 놀랍도록 무감각한 사회에 맞서 더 이상 모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언한"(<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롤링다이스) 2025년의 유권자 시민들이 이번 선거에 거는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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