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사전투표를 시작한 날인 5월 28일 예전부터 알고 지낸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와 주요 정당이 내건 보건의료 공약과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보건 의료정책 방향에 관한 것이었다. 요지는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의 고충이나 그들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 매몰되거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제발 환자와 환자단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달라는 것이다.
그는 글과 함께 의미심장한 두 사진을 올렸다. 민주당의 보건의료 정책 핵심 관계자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관계자들이 대한의사협회를 방문해 협회장을 비롯한 집행부와 활짝 웃으며 기념 촬영한 사진이었다. 한마디로 환자단체를 찾아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고 힘 있는 단체만 찾는다는 볼멘 생각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저희 환자단체연합회는 현재 10개 환자단체, 9만 2천 명의 환자와 가족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0년 창립 이후, 저희 단체는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같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오직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 때문에 정치활동을 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선거 때마다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는 "대선 후보나 대선후보를 낸 특정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회단체나 직능단체가 제안한 정책이 공약에 반영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다”라며 “(환자단체연합처럼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할 수는 없지만 좋은 대통령이 당선되어 환자가 병원비 걱정 없이, 간병 걱정 없어, 응급실 뺑뺑이 걱정 없이, 의료공백 걱정 없이, 안심하며 차별 없이 치료받는 세상을 바라는 간절한 환자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을 겁니까?"라고 항변했다.
대한민국에서 지난 1년 3개월 동안 의대 정원 정책을 둘러싼 의정 갈등과 의료공백으로 가장 큰 고통과 피해를 겪은 것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다. 이러한 의료공백을 만든 공동 가해자이자, 공동 책임자는 정부와 의료계라고 할 수 있다. 의정 갈등은 나아가 의사(정부)와 환자, 또는 의사와 국민 간 갈등으로 번진 셈이다.
대선 공약, 환자(환자단체) 요구 반영 미미해
안 대표는 "새 정부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선후보들이 의료공백의 공동 가해자이자 공동 책임자인 의료계에는 앞다투어 찾아가고 의료계의 요구사항을 중요 대선공약으로 발표했다. 이에 반해 의정 갈등과 의료공백의 최대 피해자인 환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선후보들은 없다. 지금까지 발표한 어느 대선후보의 공약에도 환자와 환자단체의 요구사항은 아예 없거나 아주 적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선 공약을 보면 '의료대란 해결 및 의료개혁' 부문의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 중심 의료개혁 공론화 위원회' 신설에서 의료인, 전문가, 환자 및 시민대표가 모두 참여하여 사회적 논의 합의 추진과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의료개혁 추진 방향 설정에서 환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 마련과 환자의 건강권 보호, 투병 및 권익 증진을 위한 체계적 정책 확립에서 안 대표가 주장한 내용 일부분이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의 공약은 과거에 견주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방안은 드러나 있지 않고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안 대표는 더 구체적이고 과감한 환자 중심 의료정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보여왔던 의사(의료인) 중심이 아니라 환자(국민)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보건의료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공급자 아닌 수요자 중심, 환자정책국 만들어야
이는 다음과 같은 그의 강력한 외침에서 나타난다. "의사 직능단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독점적 의료행위 권한을 무기로 정부와 싸우는 이런 비인권적인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환자의 투병과 권리를 보호하는 환자기본법을 신속히 제정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에 환자정책과, 환자안전과, 환자피해구제과를 포함하는 환자정책국도 신설해야 합니다."
안 대표는 또 "간병사 제도를 도입하고 간병비 급여를 확대하고, 중증질환 환자 대상으로 간병 기능을 대폭 확대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제도 개혁도 환자 중심으로 해야 한다.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신속히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도 장애인, 여성, 노인, 청소년, 청년처럼 투병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나 센터가 필요하다. 응급의료기관과 소방청 중심이 아닌 환자를 중심에 둔 응급의료체계 개혁을 통한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작동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소비제품이나 음식료품을 만들면서 소비자들의 요구와 만족도를 무시한다면 그 제품은 외면당할 것이다. 교통 정책이나 시스템을 만들고 운용하면서 자동차 운전자뿐만 아니라 보행자, 그것도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모두가 불편하지 않고 안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국민, 환자 또는 예비 환자 명심해야
산업현장에서도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해 실행에 옮길 때 사용주나 경영진들의 뜻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직접 안전보건교육, 유해·위험 요인 발굴, 안전보건 체계와 작동 시스템 등 모든 부문에 참여시켜야만 비로소 위험을 사전예방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현재 환자이거나 예비 환자, 즉 미래 환자라고 할 수 있다. 또는 자신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아들딸, 아버지 어머니에게 해당하는 일일 수 있다. 안 대표의 목소리를 모두 지금 당장 대선 후보나 정당들이 반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를 맡게 되는 후보와 정당은 공약을 다듬고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성찰적 반영을 신속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능력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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