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로컬 브랜드 상권이라는 'O리단길'은 이제 그만!

[기고] 윤석열 정부의 로컬 브랜드 상권 사업, 지금은 멈춰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골목상권 구상'의 출발

2021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장예찬의 주선으로 연세대 모종린 교수를 연희동에서 만난다. 골목상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이 자리 이후,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119번으로 '지역사회의 자생적 창조역량 강화'를 채택하고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 로컬 창업 생태계 조성 등을 추진했다. 모 교수는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산하 로컬컨텐츠구축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2024년 12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은 '다시 뛰는 소상공인·자영업자, 활력 넘치는 골목상권'을 주제로 전국의 상권기획자, 전문가들을 불러 민간상권관리자 육성, 로컬메이커 스페이스 조성 등의 구상을 발표한다. 그리고 다음 날, 계엄령을 선포하고 내란을 일으킨다.

윤 정부는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 정부가 추진하던 로컬 브랜드 상권 조성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실

로컬 브랜드 상권이라는 'O리단길' 양산 정책

2024년 4월 23일, 중소벤처기업부는 '글로컬 상권 창출' 2개 팀과 '로컬 브랜드 창출' 6개 팀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오영주 장관은 이 사업이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대안이라며, 'O리단길' 육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른바 '리단길'이 곳곳에서 남긴 폐해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전국 골목길이 '핫플'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되며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켰고, 프랜차이즈 천국이 된 후 쇠락하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모종린 위원장은 농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농촌마을도 로컬 콘텐츠 타운이 될 수 있다며 군산과 양양을 성공사례로 꼽았다. 그러나 군산처럼 근대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하거나, 양양처럼 자연환경 자체가 콘텐츠인 지역은 드물다.

게다가 양양은 이미 오버투어리즘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소음과 쓰레기, 무분별한 클럽과 숙박업체의 난립으로 인해 피서객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콘텐츠가 없으면 그냥 포기해라"는 비현실적 기준

모 위원장은 지방시대위원회 세미나에서 강원도 도계와 같은 지역에서도 로컬 상권이 가능한지 묻는 지역 공무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콘텐츠가 없어서 그렇다. 콘텐츠가 나올려면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한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가려면 경주 황리단길이나 수원 행궁동, 전주 한옥마을처럼 어마어마한 건축자원이 있어야 한다. 들어가기 쉬운 곳은 다 들어갔다. 건축 환경을 공급해 주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느 지역은 가능하고 어느 지역은 불가능한 거니까 그분들은 불가능한 환경에 살면 그냥 포기하고."

콘텐츠가 불가능한 지역은 포기하라는 이 논리는, 로컬 브랜드 상권을 지방소멸 대책으로 내세우는 정책의 근본적 모순을 보여준다.

민간기업이 만드는 위험한 '로컬'

'글로컬 상권 창출'로 선정된 한 업체는 종로구와 함께 서촌에 'K-크리에이티브 타운'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이 업체는 과거 잡지를 발간하며 해방촌의 젠트리피케이션 등 소재로 지역과 소상공인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지금은 콘텐츠를 넣어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공간 개발 기업으로 성장했다.

과거 이 업체가 주도적으로 만든 포럼에서는 부동산 전문가가 나와 "뜨는 동네 매입 전략"을 알려줬고, 청중은 그 섹션에 가장 뜨겁게 반응했다. 이 업체 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이제 예전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뜬 로컬 브랜드의 성공 사례

로컬 브랜드 상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대표 성공사례로 꼽는 성수동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심각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일보 <팝업스토어의 저주…성수동 구두명장 1호, 56년만에 길을 잃다> 기사에 등장한 구두 장인 유흥식 씨는 대통령의 구두를 만든 이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팝업이라는 것은 하는 사람이나, 세를 준 사람이나 다 도둑이야. 큰 회사에서 한 보름 쓰고 몇억 내놓는 거 일도 아니게 알더라고. 그러니까 집주인들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되고 임대료가 끝 간 데 없이 오른 거지."

보수적인 중앙일보마저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직시하는 상황이다. 소상공인들은 성수동구길이나 성수역 북쪽까지 밀려나 버티다, 결국 경기도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도시재생 → 투자 유입 → 원주민 축출의 고리

서촌도 마찬가지다. 중기부가 K-타운을 만들겠다는 서촌은 2018년, 300만원 임대료를 120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건물주와 세입자 간 극단적인 갈등이 일어났던 곳이다. '골목형 시장육성사업' 발표 직후 외지 투기자본이 몰려온 결과였다.

행정은 상생협약을 유도했지만, 자본 앞에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그 사건 이후 7년이 지났지만, 건물은 여전히 공실 상태다. 건물주는 당시 대립했던 임차인과 시민들을 상대로 아직도 고소를 이어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처가 남은 골목이다.

이처럼, 국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재생사업이 부동산 호재로 전환되고, 투자자 유입 → 지가 상승 → 원주민 축출로 이어지는 일은 공식처럼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도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제 없다"고 말하는 이가 이끄는 부동산 기획회사가, 법·제도적 장치 없이 관광 상권을 만들겠다고 나설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는 자명하다.

내란 다음 날 자영업자에게 닥친 현실

몇 년 전 연남동에서 열린 로컬 브랜드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코로나 때도 노하우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며 생존을 능력의 문제로 몰았다. 당시 나는 놀라움을 넘어 분노했다. 팩트도 틀렸다. 코로나 이전엔 잘되던 많은 가게들이 이후 집합금지라는 불가항력에 무너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다시 뛰는 소상공인"을 외친 다음 날 내란을 일으켜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코로나 때보다 더 큰 불안을 자영업자들에게 안겼다.

이제 중기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지난 3년간 리단길을 전국에 복제하려한 로컬 브랜드 상권 사업을 멈추고, 내란 이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위한 회복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없이 어떻게 지역이 발전하느냐"는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을 앞세워 전국 골목길을 투자자 놀이터로 만들려던 정책을 돌아보고 냉정한 평가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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