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은 '동네북'이 아니다

[기자의눈] 이준석이 쳐든 여성혐오라는 깃발은 퇴장해야 마땅하다

'계집신조.'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밈이다. 군대의 복무신조를 차용한 것으로 '여자는 남자 말에 말대꾸 하지 않는다', '여자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설거지할 때 물소리뿐이다', '여자 목소리는 80데시벨을 넘어선 안 된다' 등의 여성혐오적 내용을 담고 있다. 경기 안양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성 청소년들이 이를 손피켓으로 제작해 들고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성혐오가 '놀이'가 된 것이다. 이를 마주한 여성 청소년들은 어떨까.

공교롭게도 전 국민이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의 3차 TV토론 발언 때문이다. TV토론을 시청한 국민들이 여성혐오 표현에 노출되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글을 인용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아들의 과거 행적을 부각시키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폭력 행위를 전국민이 보는 TV토론에 재현했다. 여성을 성적, 정치적으로 대상화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시청하던 모든 국민이 고스란히 피해자가 됐다. 아동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준석 후보가 보여준 최대 정치적 치적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적힌 일곱글자, "여성가족부 폐지"다. 여성혐오에 편승한 정치가 이준석 정치의 정수(精髓)다. 인권위 교육 책자에도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대표적 여성혐오 사례로 소개된다. "여성혐오나 차별은 망상에 가까운, 소설·영화를 통해 갖게 된 근거 없는 피해의식." 그가 2021년 한 인터뷰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며 했던 발언이다. 이준석 후보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청년 여성들의 집회 참여에 대해 "여성이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에 치안이 아주 좋은 국가"라며 '훌륭한 치안'을 여성 정치 참여의 배경으로 언급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준석의 혐오정치는 여성을 넘어 사회적 약자 전반을 향해갔다. 평등한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에 대해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의 불법 시위"라며 "선량한 시민"과 장애인 사이의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이준석 후보는 "무임승차 최다역은 경마장역"이라며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고, 이번 대선에서는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공약했다. '박근혜 키즈'로 정계에 입문한 이준석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한 방식은 혐오뿐이었다.

TV 토론에서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이준석 후보는 이날(30일) "저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실망과 상심을 안겨드렸다"며 "표현의 수위로 인해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15%를 넘어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두고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다"고 막판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왜 자신의 표현이 문제였는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이준석 표 혐오 정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기꺼이 이준석을 받아안았다. 지난 대선에서 '세대포위론'의 탈을 쓴 혐오 전략을 수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세대포위론은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 60대 이상의 전통적 지지층과 함께 민주당 지지의 핵심인 4050세대를 포위하자는 전략이었지만, 여성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양상으로 발현됐다. 대선 초반 신지예 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를 영입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신 씨를 사퇴시키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띄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한 것도 이준석 후보의 혐오정치에 올라탄 결과다.

이번 대선에서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이준석 후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사전투표가 시작된 전날(29일) 0시 무렵까지 이준석 후보에게 단일화를 호소했다. 정치 공학적 표계산으로 연결된 이들은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역이용했다. 당 지도부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8일 창원시 유세 중 이준석 후보가 TV 토론에서 언급한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폭력 행위를 직접 묘사한 발언의 표현을 인용하며 이준석 발 여성혐오를 재생산하기까지 했다.

김 후보는 TV토론 다음날(28일) 이준석 후보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29일 딸과 함께 사전투표를 마친 뒤에도 기자들이 이준석 후보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저는 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내용 자체에 대해서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재차 답변을 하지 않았다. 같은 당 여성 국회의원을 향해 '미스 가락시장'이라고 언급했던 김문수 후보 역시 이준석 후보의 여성혐오를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혐오 정치에 대해 '전략적 방관'을 선택해왔다. 10대 대선 공약에 여성 공약을 포함하지 않았고, 여성·성평등 의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조차 '이대남' 눈치를 봤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도 '비동의 강간죄'를 공약했다가 이준석의 개혁신당에서 공세가 나온지 하루만에 "실무적 착오"라며 철회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비동의 강간죄'와 '낙태죄 대체입법'에 대한 '논란'을 의식해 공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임신중지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이번 공약집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한 민주당 남성 중진 의원은 "스스로 비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국회, 나아가 한국사회에는 여성혐오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게 됐다. 전날(29일) 긴급기자회견을 연 이준석 후보는 "상식의 눈높이에서 묻는다. 제가 (토론에서) 한 질문 가운데 어디에 혐오가 있느냐"고 물었다. 정치권에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정치 지도자, 국회의원 하나 없었고 '페미'는 낙인이 됐다. 일상에서 여성들은 '집게손가락'을 이유로 사상검증을 당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도 '묻지마 살인'이 됐다. 학교에서는 '계집신조'가 놀이처럼 번졌고 어린아이들의 입에서도 '앙 기모띠'(기분이 좋다는 뜻으로 일본 성인물에서 주로 나오는 표현)라는 소리가 나온다.

여성들은 그래서 광장에 터져나왔다. 일상의 혐오에 내몰린 여성들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친 이유였다. 이들은 광장의 선봉에 섰고 칼바람이 부는 남태령 고개를 지켜냈다. 이들은 창문이 깨진 트랙터에 주저앉은 농민들을 위해 콘크리트 바닥에서 꼬박 밤을 샜다. 농민들을 고개 너머 용산으로 보낸 승리를 뒤로 하고 이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시위,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로 향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한 대통령이 촉발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이끌었다.

12.3 계엄 이후 '다시 만날 세계'에서 이준석 후보와 그가 쳐든 여성혐오라는 깃발은 퇴장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의 유산을 떠받드는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 역시 이준석 후보의 손을 잡고 퇴장하시라. 민주당내 '출산 가산점' 논란이후 이재명 후보는 "20대, 30대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어려운 위기 국면 특히 이번 내란 국면에서 큰 역할을 해줘서 새로운 우리 사회의 희망을 만들어주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정말 2030 여성을 '빛의 혁명'의 주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숨지말고 여성혐오와 맞서 싸우라. 그리고 퇴장시키라. 대한민국 여성은 '동네북'도 '집토끼'도 아니다.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던 시민들(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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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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