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이 만들어 갈 새로운 이야기들

[기고] 지구를 위해, 세계를 위해

얼마 전, <헌등사>(다와다 요코)라는 소설을 읽었다. 기후재난과 환경재난으로 인해 문명의 성격이 크게 변화한 근미래의 일본 사회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화학물질과 방사능에 노출된 노인들은 쉬이 아프거나 죽지 않는 몸이 되고, 아이들은 오렌지조차 씹어 삼키기 힘들 만큼 허약한 몸으로 태어난다. 이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전도는 우리의 문명이 대단히 섬세한 기후적, 생태 환경적 토대 위에 세워져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지만, 기후가 변해 쌓아둘 식량이 부족해지면 곳간은 필요 없어진다. 그리고 곳간이 없다면 인심도 없어지는 것이다.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는 '기후위기는 상상력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기후위기가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구성해 온 규칙 자체를 무효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다. 헐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는 망가진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한다는 서사적 해법을 제시했지만 영 마뜩잖다. 그 우주선에 보통 사람들의 자리는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지금, 여기에서 노력하는 것이 옳다.

이런 생각으로 대선 후보의 말들과 공약들을 살폈다. 정치학도 사회학도 아닌 인문학, 그중에서도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권영국 후보였다. 그는 "기후정의 확립으로 생태평등사회로의 전환", "'동물복지'를 넘어 '동물권'으로 대전환"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자연에 대한 추출과 착취를 중단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비인간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서사적 차원에서 이보다 더 원대한 비전을 보여준 후보는 없다.

18일 TV 토론에서 보여준, 김문수 후보의 원자력발전 비중 확대 공약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었다. "원전 비중을 늘리는 것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계속 짓자는 것"이라는 권 후보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이 말이 겨냥한 것은 단지 에너지 문제만이 아니다.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가 갖게 된 불안감과 죄책감, 즉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의 개발이 옳지 않으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자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조차도 성장의 신화, 그리고 과학기술만능주의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왜 계속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아파트인가? 이 본질적 질문을 던진 후보는 권영국이 유일했다.

이러한 언어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적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권 후보와 민주노동당은 소외된 노동자들의 투쟁에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적극적으로 결합하며 그들을 대변해 왔다. 선거운동 첫날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중구의 세종호텔과 한화빌딩의 고공농성 현장이었다. 또한 그는 장기간 이어진 탄핵 국면에서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 권 후보가 대선 완주 의지를 밝히며 "모두가 우클릭하는 이 시대에 광장의 외침을 잊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실로 큰 의미를 가진다. 광장의 언어는 어느 한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독점할 수 없는, 정치공학적 함축이 불가능한 다중성, 다성성의 언어다. 다만 커다란 지향이나 방향성은 있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보다 더 평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권영국은 닳고 닳은 정치판에 광장의 언어를 확산시키는 매개자이다. 권영국이 얻는 한표 한표는 곧 스피커의 볼륨이 되어 광장의 외침이 더 오래, 더 널리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가 24일 춘천 시내에서 거리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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