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9년 1월 20일자에 한 칼럼이 실렸다. 이 칼럼은 익명의 변호사 사무장이 "심지어 룸살롱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 외근 사무장이 만나 형량과 재판 기일을 결정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한 말을 인용했다. 당시 칼럼을 본 판사들이 들고 일어서면서, 결국 '사과 기사'를 싣는 촌극으로 끝났다. <룸살롱 공화국>을 쓴 강준만은 이 사건을 두고 "아무려면 룸살롱이 법정이었겠는가. 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하면서 교훈으로 삼자는 뜻에서 나온 선의의 과장법으로 보는 게 옳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룸살롱 문화의 심각성을) 가볍게 넘길 순 없잖은가"라고 했다.
2004년 춘천지방법원 현직 판사가 사법연수원 동기(법조계 지인)으로부터 성접대를 받아 세상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춘천 지역 S 룸살롱 관계자와 매니저(속칭 마담)가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매니저가 "내가 접대하는 손님 중에 누가 있는 줄 아느냐"며 춘천지법 현직 판사의 이름을 거론했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 "내가 접대한 손님 중에 현직 판사가 사건 청탁 대가로 향응을 받았다"고 진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춘천지법 판사 룸살롱 성접대 사건'의 결론은 놀랍게도 허무하게 끝났다. 판사는 사표를 냈고 검찰은 "판사가 송별 회식에 참가해 성접대를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직무 관련성이 없어 입건을 유예하기로 했다"고 무혐의 처분을 냈다. 청탁금지법 제정 전의 일로, 판사가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발견되어도 무혐의가 나오던 시절이다. 이준석 후보를 서포트하는 개혁신당 공동선대위원장인 함익병 씨의 세계관과 딱 맞아 떨어진다.
함익병 씨는 지난 2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고발한다!' 생방송 중에 지귀연 판사의 룸살롱 의혹에 대해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지귀연 판사가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 그러는데 제 나이 또래면, 룸살롱을 안 가본 사람이 저는 없다고 본다"며 "아주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간 분은 있겠지만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인연으로, 룸살롱은 한두 번은 다 가게 된다. 저 역시 룸살롱 다 갔고요, 성직자 빼고 대한민국의 50대 이후에 남성이라 그러면 어떻게든지 가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안 갔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드물다"며 "갔다는 게 자랑도 아니고, 안 갔다는 게 자랑도 아니다. 우리 사회 문화가 한때 그랬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후 맥락을 보면 함 위원장은 룸살롱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진을 찍은 지귀연 판사를 옹호하고 있다. "룸살롱 가서 친구 세 명이 술 먹다가 이렇게 어깨 올리고 사진 찍은 분 있으면 단 한 분이라도 나와 보라", "적어도 그 사진은 룸살롱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곳이 룸살롱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과연 함익병 씨는 '룸살롱'에 관한한 전문가로 추정된다. 룸살롱만이 가진 구조를 캐치할 수 있는, 최소한 룸살롱 사정에 밝은 사람임엔 틀림 없는 것 같다.
함익병 씨가 지지하는 이준석 후보도 2013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소재 호텔 지하 룸살롱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2022년에 경찰이 공소시효 만료로 인한 공소권 없음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일이 있다. 이준석 후보는 당시 상황을 해명하면서 '성'도 '상납'도 없었다고 했지만, 본인 입으로 '룸살롱에 가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말한 적은 없다.
아마 "저 역시 룸살롱 다 갔고요"라고 밝힌 함익병 씨의 추정대로, 아직 40대이긴 하나 이준석 후보 역시 룸살롱을 갔을 지 모르는 일이다. 기왕 함익병 씨가 얘기한 게 있으니, 대선 후보 검증 차원에서라도 이준석 후보는 시간이 될 때 '성접대 무혐의'와 별개로 '룸살롱'이란 곳에 갔는지, 안 갔는지 한번 쯤은 명확히 밝혀주고, 만약 룸살롱에 갔다고 한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적절한 느낌이었는지 부적절한 느낌이었는지)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 안 갔다면 '룸살롱에 간 사실 자체가 없다'고라도 명확히 밝혀달라. 불법도 아닌데다, "갔다는 게 자랑"도 아니고 "안 갔다는 게 자랑"도 아니지 않나. "우리 사회 문화가 한때 그랬"으니, 공직에 나서겠다는 이준석 후보도 이 부분은 명확히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한편, 룸살롱에 대해 잘 아는 함익병 씨가 지귀연 판사 사진 배경이 '룸살롱이 아니다'라고 단정한 것과 별개로, 함익병 씨의 이론에 따르면 지귀연 판사가 룸살롱에 간 것 자체는 사실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지귀연 판사는 50대 이후 남성이고, 성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 사진 배경이 룸살롱이 아닌 것은 룸살롱에서는 친구 셋이 사진을 절대 찍지 않기 때문인데, 바꿔말하면 사진을 찍지 않고 룸살롱을 다닌다는 것 아니겠나. 함익병 씨에 따르면 부처 불문 대한민국의 50대 이후 남성 고위 공직자들, 검찰총장을 비롯해 고위급 검사들도 다들 룸살롱을 가봤을 것이다.
함익병 씨는 "전체 맥락은 부당한 사법부 압박을 비판한 것"이었다며 "크게 잘못했다고는 생각 안 한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준석 후보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평가한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함익병 씨도 아마 '룸살롱 다니는' 판사가 있다면, 그 판사가 룸살롱을 다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그 판사에게는 재판을 받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룸살롱은 한국에만 있는 단어다. 프랑스에서 제한된 회원들의 사교 모임을 의미하는 'salon'이란 말 앞에 영어 단어 'room'이 붙어 제3국인 한국 사회에서 '룸살롱'이 탄생했다. 교양 사교 모임인 살롱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다소 퇴폐적인 일들을 벌이곤 했다고 해도, 한국의 '룸살롱'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곳은 '칸막이'의 세계이고, 부도덕과 퇴폐를 공유하고 감싸주는 '의리'와 '조폭'의 세계다.
강준만은 "룸살롱의 물리적 본질은 '칸막이'가 아닌가. 칸막이는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이며, 패거리주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지역 갈등에서 유흥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했다. 1961년 생으로 강남에서 크게 피부과 사업을 벌여 성공한 50대 이후 남성의 '룸살롱 소신'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지지하는 명사의 인식 수준이 경제력 있는 기득권 남성들의 반여성주의적 패거리 문화를 옹호하는 정도에서 멈춰있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준석 후보가 주장하는 '성평등(남성 역차별)'과 '공정', '자유'가 '50대 이후 남성'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 기득권 세력의 '패거리주의'에 근거했다는 심증에 확신을 보태주는 함익병 씨의 '커밍아웃'이 반갑다. 군대 안간 여성은 권리의 4분의 3만 행사하라거나, 독재가 뭐가 나쁘냐는 수준의 저렴한 '술자리 토크'가 개혁신당의 대선 공약에 스며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이준석과 그 주변의 세력은 어쩌면 이 사회에서 '압도적'으로 낡은, 그리고 가장 위험한 인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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