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노예 해방을 둘러싸고 벌어진 남북전쟁(1861~1865년)이 끝나고 1870년대 들어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인에 대한 반감과 반발이 더욱 노골화되었다. 노조간부들과 캘리포니아 주지사 존 비글러(John Bigler)가 중국인에 대한 적대감 내지 적개심을 등에 업고 중국인을 악마에 빗대 공격했다.
로스앤절리스에서는 중국인들을 쫓아내라는 소요가 멈출 줄 몰랐다. 그것도 모자라 1800년대 종반부터 중국인의 행동과 생활까지 규제하는 각종 법규를 쏟아냈다. 그럼에도 중국인 이주자가 늘어나서 저임노동자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자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했다.
대통령 러더포드 헤이즈가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그에 맞서 주정부가 주헌법 개정을 통해 중국인의 주거지를 지정하는 한편 중국인은 기업, 주정부, 지방자치체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러자 연방정부가 미국사회에 팽배한 반중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모든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을 제정했다. 그 때가 1882년이었다.
무엇 무엇을 위반하면 투옥 또는 추방한다는 등 행동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강력한 이민규제법이 제정되자 모든 중국인들이 곤경에 처했다. 그 법은 이미 미국에 거주하던 모든 중국인에게 적용되었다. 그 같은 살벌한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시애틀을 비롯해 미국 지역사회 곳곳에서 중국인을 축출하려는 난동이 벌어져 살상행위가 속출했다.
그 까닭에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미국에 그대로 잔류해야 하느냐, 아니면 중국으로 귀환해야 하느냐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미국에 거주하던 중국인이 출국했다가 재입국하려면 별도의 허가서가 필요했다. 그 법은 미국에 거주하던 모든 중국 이민자의 시민권자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중국인은 미국사회에 동화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이어 1884년 중국인 배제법 개정에 따라 중국 이외의 국적을 가진 중국인에게도 그 법이 적용되었다. 1902년 개정법은 모든 중국인은 거주지를 등록하도록 규정했다. 그것은 모든 중국인은 거주증명서를 소지해야 하며 없으면 추방한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모든 중국인한테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한 셈이었다. 한마디로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합법화였다.
그럼에도 중국인의 불법입국이 줄지 않았다. 그 사실은 중국인 배제법이 중국인을 불법적으로 입국시키는 갖가지 교묘한 '인간밀수' 수법을 고안해 내는 결과를 낳았다는 소리다. 불법입국 수법은 중국인 이외에 다른 나라 이주민에게도 알려져 미국의 불법체류자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의 중국인 배제법은 캐나다의 이민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캐나다가 자국에 입국하는 중국인에게 인두세를 부과하는 1885년 중국인 이민법을 제정했다. 캐나다는 또 미국정부의 압력을 받아들여 1923년 모든 형태의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인 이민규제법을 만들었다. 캐나다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국에 밀입국하는 중국인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함으로써 발생한 노동력 공백을 일본인 쿨리들로 빠르게 채웠다.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이 하던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그대로 도맡아서 하는 한편 사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일본인 이민자가 늘어나자 미국이 일본인 이민에 대해서도 차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미국은 급기야 1924년 이민법을 대폭 강화했다. 중국인을 포함해 모든 동아시아 국가의 이민자를 규제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사실상 모든 동아시아 국가의 이민자를 봉쇄한 셈이었다. 미국은 일자리 감소를 그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고 백인우월주의의 인종차별의식을 정책에 반영했을 뿐이었다.
모든 중국인을 추방의 공포에 떨게 만든 중국인 배제법은 61년이 지난 1943년 매그너슨 법(Magnuson Act)이 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일본이 만주침략을 감행하자 중국이 일본에 대항하여 선전포고를 했던 덕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미국의 동맹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 법에 따라 대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숨을 죽이고 숨어살던 중국인들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
미국은 150년전에도 멕시코를 통한 중국인의 입국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선경비를 강화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미국은 외국인의 불법입국을 막는다며 국경지대에 그 때보다 더 많은 무장병력을 배치하고 더 높은 장벽을 쌓고 있다. 트럼프 1기행정부가 장벽을 건설하다가 바이든 행정부가 일단 중단한 상태였으나 여론의 압력에 눌려 부분적으로 재개했었다.
그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외국인들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국에 밀입국하려는 행렬이 줄지 않고 수법도 변함이 없다. 또한 미국-멕시코 국경선을 뚫고 미국으로 잠입하는 불법이민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멕시코를 넘어서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저 멀리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도 밀입국자의 행렬에 끼려고 몰려든다.
북아메리카 서해안 대도시의 차이나타운은 그 옛날 막노동꾼으로 미국에 팔려간 중국인 쿨리들이 미국정부의 단속과 박해를 피해 몰려들면서 형성되었던 빈민촌이었다. 중국인들이 마음 놓고 거리를 오갈 수도 없을 만큼 사회 분위기가 험악해져 주류사회에서 배척받던 중국인끼리 모여 살던 게토(ghetto)였다.
미국에서 중국인 축출운동이 벌어져 생명조차 위협받자 그들이 몰래 숨어살던 은신처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곳에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공포 속에 숨죽이고 살면서 호텔, 식당, 세탁소 등등 접객업소에서 허드렛일을 싸구려 품삯에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챙겼다. 그 대표적인 곳이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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