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와 한국 KBS, 정치적 중립성의 요체는?

[기고]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BBC vs. 권력에 출렁이는 KBS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한국과 영국의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즉 KBS와 BBC에 대해 나누고 싶다.

KBS 는 공영방송인가, 공룡방송인가, 공용방송인가?

한때 한국 사회엔 "우리도 BBC 같은 공영방송이 필요해!"라는 열망이 넘쳤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오직 국민을 위한 방송. 그러나 지금 KBS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시선은 아주 차갑다. "KBS야, 도대체 누구 편이니?"라는 국민들의 질문은,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 생겨난 절규다.

정권은 "내 거야"라며 손을 내밀고, 국민은 "정말 내 편 맞아?"라며 눈치를 본다.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방황하는 KBS의 모습은, 삼각관계에 빠진 연인처럼 불안하다.

BBC, '중립' 이라는 외투 속 권력의 그림자

BBC는 1세기가 넘은 지난 1922년에 설립된 이래, '공영방송의 교과서' 로 불려왔다. 수신료로 운영되고, 광고 없이 버틴다. 영국에서는 TV를 켜는 순간 수신료가 따라온다. 이쯤 되면 '국민의 방송' 이 아닌 '국민의 비용' 이다.

BBC는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총리가 바뀌면 BBC 국장이 바뀌는 '마법'이 벌어지고, 보수당 정권 때는 보수 인사가, 노동당 정권 때는 노동당 인맥이 중용된다. 정치권과의 '우아한 거리두기' 속에도, BBC의 독립성은 종종 권력과의 스킨십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BBC는 적어도 '눈치싸움' 보다는 '긴장관계 '를 택한다. 총리가 인터뷰를 거부하면 아예 뉴스에 빈 의자를 놓아두는 BBC의 태도는,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상징적 행보다.

KBS, 과연 '국민의 방송' 인가 아니면 '정권의 기상청' 인가

KBS는 '국민의 방송' 을 자처하지만, 국민들은 묻는다. "그 국민이 정권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의 뉴스톤도 바뀐다는 의심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마치 정권 변화에 따라 날씨가 바뀌듯, KBS 뉴스의 기류도 출렁인다.

KBS의 이사회는 정부가 임명하고,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끼워져 사실상 '강제징수' 된다. TV를 보지 않아도 내야 하는 수신료. 국민입장에서는 물도 안 마셨는데 계산서를 받아 든 느낌이다.

그래서 KBS를 향해 이런 말이 나온다. "공영방송이 아니라 공용방송이다. 정권이 번갈아 가며 쓰는."

KBS의 뉴스 편성도 논란이 많다. 여당에 대한 스캔들이나 부정부패 관련 보도는 극도로 소극적이고 최소한 만 보도한다. 반면 야당에 대한 의혹은 적극적, 열광적으로 확대 편파 보도된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또한 야권 인사에는 현미경을 바짝 들이대고, 여권 인사에는 망원경을 멀리 들이대는 너무도 편파적인 보도 태도는, 중립성이 아닌 선택적 접근을 보여준다.

'정치적 중립성' 이라는 줄타기

BBC와 KBS 모두 완벽한 중립을 실현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두 방송의 차이는 분명하다. BBC는 권력을 찌르며 중립을 실천하려 하고, KBS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이른바 중립을 '추구' 만 한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권력으로부터 견제의 힘, 비판의 화살, 언론의 자유를 잃을 때 민주주의는 곧 위협 받는다.

BBC는 "나는 비판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저널리즘의 정신을 여전히 품고 있다. 반면,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 정체성을 재조정한다. 독립한 것처럼 보이지만, 냉장고 안에는 여전히 정권만을 위한 '정권표 반찬' 이 가득하다.

중립성의 미래, 문화로 정착해야

결국 중립성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BBC가 정권 눈치를 안 보는 이유는, 영국 국민이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손댈 수 없게 만드는 감시의 시선, 그것이 진짜 독립의 기둥이다.

KBS도 변해야 한다. 제도 개혁보다, 내부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기자가 자유롭게 질문하고, 보도국이 정권과 일정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중립' 이라는 말을 입으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진짜 뉴스에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청자의 의식이다. 공영방송을 신뢰하려면, 국민이 더 비판적으로 뉴스를 바라보고, "왜 이 뉴스는 불편하지?"라는 의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공영방송의 진짜 힘은 정권도, 방송사 내부도 아닌, 깨어 있는 시청자, 사상가 함석헌의 말을 빌리면 '생각하는 씨알' 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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