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바에 3.3% 사업소득세 떼는 시대, '노동자'가 중요한가

[프레시안books] 임준의 <오늘도 무사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석방된 내란범죄 우두머리가 공원에 출몰할 만큼 혼란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노동하는 사람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정책 논의는 이슈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안전망이 없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 의료보장 체제의 문제점을 파헤친, 인하대 의대 임준 교수의 <오늘도 무사히>(후마니타스)가 지난해 12월 출간됐지만 아무도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기였다.

책을 홍보하고 싶었고 많이 팔리길 바랐는데 작은 노동단체 활동가들도 광장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수개월을 날려버렸다. 늦기도 하였고 헛되다 할 수도 있지만 <오늘도 무사히>가 지금이라도 많이 팔려서 6월에 시작될 새 정권, 새 정부가 귀담아듣길 바라며 책을 소개하고 싶다.

얼마 전 세계 노동자들이 기념하는 4.28 Workers' Memorial Day가 있었고, 우리나라 정부도 4.28 '산재노동자의 날' 기념행사를 했다. 4월 17일에는 이진희님이 세상을 떠났다. 2016년 스물아홉에 학비 마련을 위해 들어간 공장에서 닷새 만에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지 10년,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던 진희님은 깊은 새벽 뇌출혈로 깨어나지 못했다. '산재노동자의 날' 행사라고 모여 관료, 전문가, 이익단체들이 축사를 주고받을 때 이진희 님의 가족과 내가 아는 산재 노동자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위로의 인사라도 받았는지 모르겠다.

산재보상 요구가 곧 사회운동이 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프고 다친 노동자를 외면해온 산업화의 역사, 기업을 비호하는 정치와 사회제도, 공급자 중심의 보건의료체제가 동시대 노동의 현장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알고 싶은 이에게 <오늘도 무사히>는 너무 적절하다.

2024년 산재 사고사망 노동자는 827명이라고 고용노동부가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은 산재보험과 다른 제도로 집계되지만 노동자임이 분명한 농어업노동자, 선원, 공무원, 군인들의 사망자료까지 모아 더하였더니 5년간(2019~2023년) 1만2848명이 일하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하루 7명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죽음을 찾아낸다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직업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산재는 어떨까. 고용노동부가 산재통계라고 발표하는 수치는 노동자들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거나 회사부담으로 치료하는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 일부의 숫자일 뿐이다. 건강보험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한 경우보다 건강보험으로 치료한 경우가 10배가 많았다는 것을 임준 교수가 이미 2007년 연구에서 밝힌 바 있다. 산재보험제도가 복잡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재보상 수를 바탕으로 발표하는 산재통계가 엉터리인 이유다.

ⓒ프레시안

보건복지부는 건강증진사업으로 노동자 금연 운동을 하지만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짧은 휴식시간에 상사나 동료가 담배를 권하면 거절할 수 없는 노동현장의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노동자들, 노동조합의 울타리가 없는 이들은 건강하지 못한 몸이 되면 일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몸일 때 더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이진희님을 비롯해 6명의 메탄올 실명 노동자들은 메탄올 때문에 몸에 이상이 오면 약국에서 감기몸살 약을 사먹고 다시 야근을 하러 들어가고, 눈이 침침해 졌을 때는 안과의원에 갔다. 주야 맞교대로 기계를 돌리는 공장에 다니면서도 공장 노동과 몸 상태가 연관을 맺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노동자의 생각 이전에 시스템이 있으면 될 일이다. 공단 근처의 약국이면 '어느 공장이냐' 묻고 감기몸살 약까지 먹고 다시 일하러 가는 노동자를 불러세울 수 있다. 안과의원은 처음 보는 안과 증상에 놀라고 말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물어볼 볼 수도 있다. 공단지역의 의원과 약국에서 노동자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은 지금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건강은 이른바 산업안전보건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일부 전통적 산업과 고착된 고용구조를 중심으로 기술적 공학적 사업을 집행한다. 노동자 건강을 공학적인 문제로 치환하여 컨설팅 산업으로 만들면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기술적 전문성이 있어야만 노동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도치된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작업장에서 서비스의 대상이 된다.

일반 보건의료제도는 건강을 노동과 무관한 개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국민 다수가 일하는 사람들인데도 병의원에 가면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에 온갖 비용이 청구되는 고가의 의료장비와 낯선 의료행위가 도입되고 국민들의 의료비도 덩달아 늘어난다.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기술의 문제로만 보거나 노동을 배제한 시스템 사이 어딘가에서 공장의 청년들이 실명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도 무사히>에서 임준은 시대가 바뀌어도 노동자를 기계 부품으로 취급하는 체제는 그대로라고 말한다. 차별과 배제는 사람의 감정을 위축시켜 심혈관계와 내분비계의 항상성을 깨뜨려 실제로 건강을 위협한다. 노동시장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차별받지 않기 위해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위기감이 사회 전체에 퍼졌다.

카페 알바에게도 3.3% 사업소득세를 떼는 가짜 프리랜서가 범람하는 시대다. 노동자냐 아니냐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는 시대다. 누구를 위해 산재보험, 건강보험이 따로 운영되어야 하나. 보편적이고 공공적인 보건의료시스템을 만들자. 어떤 이름의 제도냐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변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와 경제사회의 변화 속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는 시스템을 상상할 수 있지 않나.

대선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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