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오전 11시22분. 123일 만에 윤석열 파면이 인용됐다. 꽉 채운 4개월 동안 추운 길에서 보냈던 시간을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순간의 고양감과 여운을 떨치지 못하고 곧장 집을 나섰다. 파면 선고의 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점심 선전전이 끝나기 전에는 도착하고 싶었다.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길 내내 햇빛이 쏟아졌다. 드디어 지난하던 겨울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버스에 오르니, 파면 집회에 꾸준히 참석한 것을 아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드디어 끝났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잔뜩 열이 올랐던 머리가 차게 식었다. 친구에게는 곧장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내란범들은 아직 자유롭고, 고공에서 내려온 사람도 하나 없다. 자본은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았으며, 동덕여대는 여전히 학생을 탄압했고, 옳은 일을 한 지혜복 교사도 여전히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모두 함께 쟁취한 봄인데도 모두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승리를 축하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쉽다. 그게 당연하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탓할 수도 없고,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심 뾰족한 마음이 드는 건 죄책감 때문이었다.
니토덴코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희망뚜벅이 마지막 날이던 지난 삼일절, 세종호텔 앞 중간 집회에서 세종호텔 연대 발언을 했었다. 세종호텔 동지들에게 연대하게 된 이유가 발언의 주를 이뤘다. 2023년과 지난해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중 명동역 앞을 지날 때, 세종호텔 동지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행렬을 환대해주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의 고마움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내가 울 자리가 아님을 아는데도 눈물이 계속 났다.

세종호텔 해고자인 고진수 동지가 고공농성을 시작하기 전 문화제에 참석했다. 윤석열 파면 집회가 끝나고는 농성장에 인사하러 들렀다. 고 동지에게 더 미안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광장이 열리기 전부터 친구 사이였던 동지가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생일파티를 한다고 하여 방문하게 된 날 고진수 동지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면, 기사 속 이야기로만 세종호텔의 투쟁을 알았다면, 그 미안함을 몇 번의 문화제 참석으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지난 2월 13일 새벽 여섯 시 반, 늘 조용하던 시간에 X(옛 트위터) 타임라인이 북적거렸다. 고공농성이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구미에서 고공농성 중인 옵티칼지회의 박정혜, 소현숙 동지의 소식인 줄 알았는데 고진수 동지가 교통시설 구조물에 올라갔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겨우 안부를 묻는 사이인데, 그것도 아는 사이라고 심란한 마음에 한참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지금 바로 고공농성장으로 와 달라는 말이 가슴에 쿡 박혔다. 틈이 나는 대로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핸드폰을 확인하던 차에 고진수 동지의 고공농성 돌입 성명문이 올라왔다. ‘동지들의 열렬한 연대에서 고공농성 투쟁의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데 당장이라도 농성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대신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핑계를 책임감으로 포장하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내내 생각했다. 동지의 곁으로 달려가지 못하는 내 알량함도 책임감이고, 자신과 일터를 지키는 송곳이 되겠다며 고공으로 올라간 고진수 동지의 투혼도 헤아릴 수 없는 책임감일 텐데. 왜 정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 걸까.
백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다. 어쩌면 고진수 동지가 승리해 땅을 밟고, 세종호텔의 조합원 동지들이 전부 복직하게 되더라도 그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윤석열을 파면하고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잔뜩 남은 것처럼, 세상은 여전히 고약한 곳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한바탕 울고 전부 잊어버리고 싶다. 가끔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그게 더 편한 길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니까.
다만 죄책감을 지우려 농성장을 찾는 연대자의 얄팍한 마음도 고진수 동지는 연대라고 말해주었다. 동지들의 열렬한 연대에 힘입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투쟁에 어떻게 화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게 연대가 어떻게 외로움을 이기는지 배우고, 동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배웠는데, 어떻게 그의 투쟁에 연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가 뿌린 연대의 씨앗이, 그의 연대를 이어받은 이들이 뿌린 연대의 씨앗이 더 멀리, 더 높게 자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연대가 승리의 계단이 되어 고진수 동지가 땅을 밟게 되면 좋겠다. 파면광장에 먼저 찾아온 봄이, 여전히 투쟁하는 모두의 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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