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중인 해고 노동자, 고진수입니다

[고공농성 100일 기념 릴레이 기고 기획①] 세종호텔 고공농성 100일, 하늘에 맡길 수 없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가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고공에 올라간 지 100일이 돼갑니다. 그 사이 윤석열은 파면되었지만 세종호텔의 실질적 책임자인 주명건, 주대성은 일말의 소통 가능성도 내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고공농성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들과 농성 당사자의 글을 연재하여 이 투쟁의 절박함과 결의를 드러내어 알리고 더 많은 연대자를 조직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저는 세종호텔에서 해고된 노동자 고진수입니다. 현재 10미터 높이의 명동대로 교통시설 구조물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당사자입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함께 다시 노동자가 되고 싶어 많은 차가 오가는 명동대로 한가운데에 올라왔습니다.

저는 2001년 11월 세종호텔 일식당에 계약직 일식 요리사로 입사했습니다. 3년 지난 뒤 2004년에 정규직이 됐습니다. 그즈음부터 노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법에 대해 많은 걸 아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은 가장 상위법인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이니만큼 조합원이 되기까지 어려운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니까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제가 인생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고공농성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고공에 올라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지금도 왜 노동조합과 노동조합원이 이렇게 탄압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시 요리사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주명건과 같은 이미 수백 수천억을 가진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을 왜 그리 두려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종호텔 해고자 고진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수익사업체일 뿐 대양학원재단 이사회가 진짜 사장입니다. 오랫동안 세종대 설립자 장남 주명건 전 이사장이 세종대학교와 세종호텔의 황제로 군림해오다, 2004년 회계 부정과 비리로 이사장에서 쫓겨난 후 이명박 정부 때 사면 복권돼 세종호텔 회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암흑시대가 시작됐습니다. 2011년 주명건의 사주로 어용노조가 만들어지고, 280명 대부분이 정규직으로 일하던 세종호텔은 10년 만에 정규직이 10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민주노조를 뿌리 뽑겠다는 의도로 끝내 정리해고를 강행했습니다. 이제 세종호텔은 정규직이 21명만 남은 호텔이 됐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이후 조기 대선을 앞두고 노동악법 철폐를 외치며 광화문 광고탑에 올라 27일간 단식 고공농성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고공농성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한 공간에 다른 동지들도 있었기 때문에 외롭다는 느낌은 받은 적 없습니다. 단식도 함께 강행했지만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굶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해고자가 아니었던 저는 첫 번째 고공농성 이후 노조의 역할로 다시 현업에 복귀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민주노조 탄압은 지속돼왔습니다. 구조조정도 계속 진행됐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자 세종호텔은 이를 핑계로 남은 정규직 대부분을 구조조정하고 끝까지 상생을 요구하는 민주노조 조합원 12명을 정리해고했습니다.

명백한 부당해고를 자신한 노조의 기대와는 달리 노동위원회와 사법부는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9일 뒤인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최종 판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텔 앞 길거리에서 3년 넘게 농성하던 해고자들은 더 강력하게 우리의 요구를 알려야 했고, 지부장인 제가 또다시 고공농성에 올랐습니다.

▲세종호텔 해고자 고진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2월13일 새벽 4시, 호텔 바로 앞 지하차도 교통시설물에 올랐습니다. 하루에도 차량 수천 대가 오가는 4차선 도로 위 좁은 공간에서 혹시라도 물건이 떨어질까 조심 또 조심하며 물품들을 올렸고, 무엇보다 중요한 해고자들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처음 올라간 며칠 동안은 정신없이 지나가고 날씨도 그렇게 많이 춥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바로 강추위가 이어져 좁은 공간에서 핫팩과 침낭으로만 버티며 날씨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풀릴 때까지 그저 버텼습니다.

저는 농성장에 올라올 때 북을 챙겨서 왔습니다. 풍물놀이할 때 쓰는 그 북입니다. 출퇴근 시간 이곳에 사람이 있다고 알리기 위해, 우리의 요구가 담긴 커다란 현수막을 봐주기를 바라며 70일이 넘는 지금도 매일 북을 치고 있습니다.

행인들은 북소리에도 위를 올려다봐주지 않습니다. 간혹 올려다본 분들도 무심한 표정으로 바삐 지나갑니다. 솔직히 두 번째 고공농성 중인 지금은 첫번째보다 더 힘이 듭니다. 지금도 잠이 들었다가 깰 때면 '여기가 어디더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더라'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칩니다. 고공의 일상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지나가는 수천 대의 차량 소음과 매연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183센티미터, 80킬로그램의 저에게 세로 폭 80센티의 이 구조물은 많이 좁습니다. 일어서지 못하고 기어 다녀야 하며 잠을 청하기 위해 누우면 편하게 몸을 뒤척이지도 못합니다.

비바람이 불 때는 흔들리는 구조물에 불안해하며 잠을 뒤척이다가 눈을 뜨면 마주하는 현실에 또 먹먹합니다.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올라온 곳이 어찌 보면 감옥에, 그것도 독방에 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추위를 견디고 지금은 날씨가 좋아서 그나마 고충이 덜하지만 이제 곧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을 이곳에서 보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아득해집니다.

▲세종호텔 해고자 고진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아들을 군에 보내고 20일 만에 고공에 올랐습니다. 이제 곧 농성 100일이 됩니다. 집에 혼자 있는 아내에게는 형용 못할 만큼 미안함이 큽니다.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그리움이 큰 만큼 세종호텔 자본에 대한 분노도 커집니다. 재벌가를 꿈꾸는 주명건 일가의 탐욕에 분노가 치밉니다. 어떤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고공농성을 더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명동에 오게 되신다면 명동역 10번 출구로 오셔서 농성장을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와주신다면 지상에 있는 조합원 동지들과 말벌 동지들이 진심으로 환대해줄 것입니다. 저도 고공에서 북을 치며 환대하겠습니다. 연대의 힘은 크고 강하다는 것을 믿기에 그 희망을 품고 고공에 올라왔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동지들이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지금 비가 오고 있습니다. 고공에는 지상보다 조금 먼저 비가 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속히 승리하며 이 비를 동지들과 함께 맞고 싶습니다.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호소드립니다.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에 세종호텔 사측이 복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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