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 프란치스코 교황과 파시즘 그리고 혜화동 성당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이 글에는 영화 <콘클라베>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들려오자,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이 종교인, 비종교인 할 것 없이 슬퍼한다. 그는 한국인들의 뇌리에 "고통 속에 중립은 없다"라며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각인 되어있다.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벗 프란시스코가 천국으로 갔다. 이제 바티칸에서는 영화 <콘클라베>처럼 새로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릴 것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새로운 교황을 뽑는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시대 가치를 반영할 것인가?'가 주요한 핵심이다. 상반되는 두 개의 가치관이 진보와 보수, 전통과 개혁, 神성과 人성, 주류와 비주류, 제국주의와 식민지, 이성과 신앙, 확신과 의심이라는 모습으로 충돌한다.

스토리는 교황을 뽑는 과정을 정치적 음모, 갑작스러운 폭탄테러 그리고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을 엮어서 추리-스릴러물처럼 구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력한 후보들이 낙마하고, 로렌스 단장은 이 과정에서 보여준 냉철한 이성과 단호함을 높이 평가받아서 추대받는 분위기가 된다. 로렌스 자신도 마치 세례 요한처럼 '자신의 사명인가?' 혼란스러워하며 투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은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콘클라베 장소 한쪽 벽이 허물어진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자폭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난 것이다. 극우적인 성향의 전통주의자인 테데스코 추기경이 이민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며 선동하자,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그를 새로운 교황으로 추대하는 쪽으로 쏠린다. 그때 아프리카와 중동의 분쟁지역에서 줄곧 사역해 온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이 등장하여, 그러한 분노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하였는지를 증언하며 추기경들을 가까스로 돌려세운다.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은 현대산업사회에 있어서 정치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신이 대의와 공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서 우월한 신분을 이용한 매관매직도, 또 다른 음모를 꾸미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대부분 추기경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선택한다. 추기경들조차도 완전한 '선'을 믿지 않으며, 정치란 이런 정치꾼들이 하는 것이고, 그들이 추기경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 차선이라고 믿는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 포스터 ⓒ하우스프로덕션스

필자가 주목하는 인물 중에 알도 벨리니 추기경이 있다. 교황의 오랜 친구, 바티칸의 이인자인 그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테데스코 같은 극우성향의 전통주의자보다는 차악인 트랑블레를 선택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로렌스 단장은 벨리니의 발언 뒤에 트랑블레와의 거래가 있었던 것을 눈치챈다. 벨리니 같은 부류의 추기경들에겐 교황이 누가 되었든 간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교회가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가장 신뢰할 만한 외모를 지닌 스탠리 루치 배우가 열연한 벨리니의 교묘한 논리를 들으면서, 현 시국에서 많은 한국의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머릿속에서 중복되었다.

형식적으로 잘 짜인 각본을 바탕으로 연기, 편집, 미술, 촬영, 사운드 디자인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며, 새로운 교황을 뽑는 과정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연출되고 있다. 배역의 흥미롭고 구체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한정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고, 미술 역시 토머스 로런스 추기경역의 레이프 파인즈(Ralph Fiennes)를 비롯하여 스탠리 루치(Stanley Tucci/알도 벨리니 추기경 역), 존 리스고(John Arthur Lithgow/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 역),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아네스 수녀 역)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처럼 화면 곳곳을 다채롭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촬영과 편집 그리고 사운드 디자인의 협업을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성취로 삼고 싶다. 촬영의 다양한 앵글과 샷, 이를 리듬 있게 배치하고 길이를 조절한 편집은 영화의 기둥 축이다. 거기다가 이를 돕는 사운드 디자인은 분위기를 더욱 밀도 있게 몰아붙인다. 영화 전체적으로 롱테이크와 열린 형식이 주를 이루는 종교 소재의 예술영화보다는 할리우드식 장르영화의 관습을 따른다. 왜냐하면 영화를 통하여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역시 파시즘의 후예들이 정권을 잡은 현재 이탈리아의 상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차대전 마지막 기간인 1943년 9월 9일부터 1945년 5월2일까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내전(이탈리아어: Guerra civile italiana)으로 파시즘은 패배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최근 유럽 전반의 경기침체는 파시즘 부활의 배경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 근본주의 충돌은 유럽까지 전선을 확대하면서 파시즘이 온전히 등장할 수 있게 하였다. 테러는 극우세력들을 결집하면서 혐오의 대상은 과거 유대인에서 이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모슬렘 이민자들을 향한다. 콘클라베 투표 중에 벌어진 바티칸 광장의 폭탄테러 후 테오테라 추기경은 "이민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나 돌아오는 건 테러뿐이다!"라고 한다. 이는 과거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던 혐오와 같다. 이들의 혐오는 상대를 판단하는 확신(certainty)에서 시작된다.

드디어 마지막 콘클라베에서 의외로 무명에 가까웠던 베니테스 추기경이 추대된다. 테데스코에 맞섰던 용기에 추기경들이 큰 점수를 준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선거를 관리하는 로렌스 단장도 깔끔하고 당위적인 반전으로 받아들이려는 순간, 놀랍게도 베니테스가 남성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로렌스는 어쩔 수 없이 베니테스를 찾아가서 양성(intersex)을 유지한 이유를 묻자, 베니테스는 자신은 남성이며 여성 생식기를 제거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이때부터 로렌스의 가장 힘든 번민이 시작되며, 영화 첫 장면에서 행했던 그의 기도가 다시 들린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강력한 적이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죄입니다." 로렌스 단장을 마지막 위기에 봉착게 한 확신은 교회 자신을 향한 것이다. '여성을 가진 교황의 선출'이라는 기상천외한 반전을 위한 질문을 통하여, 낙태 등 아직도 금기시 되어 온 로마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전통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엔딩이다. 끝내 베니테스의 비밀을 알리지 않은 채, 무사히 콘클라베를 마친 로렌스 단장. 선출된 베니테스 추기경은 새로운 교황 명으로 의미심장하게 이노켄티우스(innocent)를 사용한다. 기전의 질서에 반하는 명백한 개혁이 있으리란 암시이다.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로렌스 단장. 시끄러운 소리에 창밖을 보면, 젊은 수습 수녀들이 천진난만하게 교황청 골목을 뛰어다니고 있다. 비로써 미소를 짓는 로렌스, 고통스럽게 확신을 극복하며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에필로그

영화의 마지막 질문은 혜화동성당의 종탑에서 민푸름, 이학인, 박초현 활동가가 한국 천주교를 향해서 외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는 전국 175개의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면서 '장애인들의 탈시설 권리'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시설이 이렇게 많다 보니, 이미 고용된 인원들과의 관계 등 '운영' 측면에서 간단치 않은 문제가 많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정부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보편적 복지'란 말이 아직도 '좌익 포퓰리즘' 프레임에 갇혀서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설에 관계된 분들한테 갑작스러운 장애인들의 탈시설 권리 주장이 반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은 선택할 권리가 있는 주체적인 인간이다. 그들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그들에게 오히려 보호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확신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반하는 확신이 고통스럽다. 이 고통 앞에 중립은 무책임한 것으로, 우리 사회가 명확한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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