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칼리프는 비겁하게 경쟁하지 않았다
지난 2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 명의 젊은 여성들을 옆에 세워두고 '여성 스포츠에 남성 참가 금지'(Keeping Men Out of Women's Sport) 행정 명령을 내렸다. 트랜스젠더의 운동경기 참여에 대해 더 이상 토론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을 거다. 성 전환자의 여성 경기 출전을 허용한 학교에는 모든 연방 지원을 끊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며 트럼프는 말했다. "남성들이 여성 선수들을 때리고 폭행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겠다."
저 말은 이 순간에도 타당한 이유처럼 세상을 부유한다. "나는 트랜스젠더 차별에 반대하지만 복싱 시합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게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 2024년 파리 올림픽 여성 복싱 66kg급 금메달리스트인 알제리의 복서 이만 칼리프(Imane Khelif)를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칼리프가 16강전에서 맞붙은 상대를 46초 만에 기권시켰을 때, 모든 언론이 칼리프를 '여성을 폭행한 남성' 괴물처럼 묘사했으니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칼리프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칼리프는 성별 다양성이라는 말조차도 낯선 보수적인 나라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으로 인정받았고 본인도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여자라면 예뻐야 한다는 문화적 고정관념에 맞춰 치마 입고 꽃무늬 머리핀을 꼽았다. 심지어 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복싱이냐'면서 딸의 꿈을 반대했다. 칼리프는 편견에 맞서 열심히 노력했다. 2020년 올림픽 8강 탈락의 눈물을 머금고, 2024년 드디어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았다."
아이들의 성 정체성이 걱정된다며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환영할 만한 이야기 아닌가? 그러지 않았다. 욕하고 조롱했다. 이들은 여성의 정의를 생물학적 여성으로 규정한 영국 대법원의 최근 판결을 들먹이며 트랜스젠더 여성은 결코 여성이 아님을 강조할 거다. 트럼프도 취임식에서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 가지뿐이라 했다. 오랫동안 그러했는데 새삼스럽다. 칼리프도 세상이 정해준 대로 살았다.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칼리프는 운동을 하면 안 되는가?
생물학적 차이가 실제로 있음을 누구는 강조할 거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인정하지 않는 모든 소문까지 취합하면 칼리프는 DSD(Disorders of Sex Development), 즉 호르몬 문제로 인한 성 발달 이상 상태일 수 있다. 그래서 남자에게나 있을 고환이 내부에 있고 여자에게는 있어야 할 자궁은 없다는 등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치자. 이걸 물고 늘어져 '봐라, 남자 맞잖아!'라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게 칼리프 잘못인가?
칼리프만이 아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여성 복싱 57kg급 금메달리스트인 대만의 복서 린유팅(Lin Yu Tin)도 같은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역시 출생부터 여성이었다. 이 논쟁에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2012년(런던), 2016년(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육상 여성 800m 금메달리스트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도 '비겁하게' 경쟁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두 개 중 하나의 성별을 부여받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이들 부모 누구도, 우리 아이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성으로 태어나 유리한 경쟁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눈에 보아도 여자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호르몬 검사를 지겹도록 받아야 한다. 이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억제하고자 다른 약물을 억지로 복용한다.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경기력에 반영되는데, 그건 공정한가? 당신이 검사할 필요가 전혀 없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무슨 노력이라도 했는가? 검사가 필요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냥 태어난 대로 살았을 뿐이다.
성별이 딱 두 개뿐인 세상에선, 그리고 그 각각의 영역에는 보편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사회에선 끊이지 않을 논란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세상을 망쳐서 시끄러워졌다는 이들도 있다. 망친 게 아니고, 세상을 고쳐서다. 여자가 여자답게 안 생겼다고 여자를 놀리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니 가능한 변화다. 사람 모습에 정상, 비정상이 어떻게 나눠지냐면서 누군가가 따졌기에 가능한 변화다. 그 덕에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한 거다. 용기를 칭찬함이 당연하다.

잘하던 것을 계속 잘하는 게 좋은 사회 아닌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내용인데, 왜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하냐는 사람도 있을 거다. 행정명령 당시 트럼프 옆에는 페이튼 맥냅(Payton McNabb)이 있었다. 맥냅은 2022년 고등학교 배구 경기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알려진 선수의 스파이크에 얼굴을 맞고 부상을 당한 이후 여성 스포츠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출전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전환했다.
맥냅은 칼리프 논쟁을 접하고 '역겹다', '혐오감을 느낀다'고 서슴없이 표현했다. 이 두 가지가 구분될 수 없다는 거다.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기 참여는 반대하지만, 칼리프나 세메냐는 다른 경우이기에 아무런 문제 없다는 식으로 입장을 밝힌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이, 조금이라도 여자답지 않은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비정상이라며 혐오의 추임새를 뱉었다.
러네이 리처드(Renée Richards)가 성전환 수술 후 여성 테니스 선수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게 1977년이다. 유전자 검사를 하라는 테니스협회의 강압과 선수들의 보이콧이 있었지만 리처드는 '의학적으로 여성이면 여성'이라는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당시 여성 테니스계의 슈퍼스타이자, 상금의 성별 차이를 비판하며 여자테니스협회(WTA)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이 리처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녀는 1981년에 여성 운동선수 최초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주변 동료에게 알린 선수들은 이전에도 많음)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앞장섰다. 이런 손길 덕택에 리처드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테니스 선수로 활동했고 코치로도 명성을 떨쳤다. 은퇴 후에는 원래 직업인 안과 의사로서 2010년대까지 활동했다.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사회를 어찌 좋다고 하겠는가. 관련 규정들이 만들어지면서, 스포츠계는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완벽하지는 않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일정 기간 이상 얼마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은 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여성에게도 이 수치는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종목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일반적인 여성 평균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여러 트랜스젠더들이 이 기준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경기력 저하는 물론이고 행정 처리의 지난함으로 인해 훈련이 몰두하지 못하는 등 세월을 낭비한다. 하나도 공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기준을 맞추고 참가하는데, 참가하면 또 수군거린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최초의 트랜스젠더인 뉴질랜드 역도 선수 로렐 하버드(Laurel Hubbard)가 온갖 호르몬 기준을 준수하고 참가하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료 선수들의 '트랜스젠더를 지지하지만 시합 참가는 다른 문제다' 등의 모호한 발언들을 대서특필하며 하버드를 신기하면서도 위험한 인물로 취급했다. 그때, 지지한 사람이 러네이 리처드다. 리처드는 '맞추라는 기준을 맞췄으면 공정한 것'이라면서 하버드를 응원한다.
논란은 이어질 것이다. 마주하고, 변화의 물결을 차단하지 않는 좋은 답을 찾으면 된다. 2023년 6월, 강원도민체전 사이클 종목에서 '여성으로의 의료적 조치'를 끝낸 나화린 선수가 국내 첫 트랜스젠더 출전의 이정표를 세웠다. 두 종목에서 우승했는데, 나화린 선수는 남자일 때도 같은 대회 4관왕이었다. 원래 잘하던 것을 성전환 수술 후에도 계속 잘하고 있을 뿐이다. 그게 좋은 사회 아닌가? 본인은 논란을 의식해, 차라리 트랜스젠더 별도 경기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걸 토론하면 된다.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으면 된다. '안 된다'가 아니라.
멋진 신세계는, 없다
성전환 수술의 시기도 논쟁 중이다. 2차 성징이 발행하기 전에 수술을 하면 시합 참여가 가능하다는 규정이 등장하자, 사실상 참여를 금지하는 조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정체성 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수술 여부 자체도 토론 중이다. 성전환 수술을 안 한 남성의 여성부 경기 참여가 어찌 논란이 되지 않겠는가. 러네이 리처드는 공정성 논란을 줄이고 선수들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수술을 통해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면서 반대했다.
그럼에도 왜 논쟁일까? 이 문제를 성별 구분이 전형적 남성과 여성으로 명확히 되지 않는 선천적 간성(intersex) 상태인 누군가와 연결하면 수술이 간단명료한 해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도 묘사되었고, 조선시대 사방지(舍方知)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소수자는 늘 태어났다. 과거에는 감추고 살았고 현대사회에서는 한쪽의 성별을 강제로 선택하고 수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졌기에' 본인을 남자와 여자의 정체성 중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면서 용기 내는 이들이 있다. 부모 판단만으로는 수술을 결정할 수 없다는 나라도 있다.
2017년, 벨기에의 슈퍼모델 개비 오딜(Gaby Odiele)은 자신이 간성으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본인 동의 없이 여러 '불필요한'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내부 고환을 제거하고 여성 생식기를 재건했다. 호르몬 대체요법은 평생 받아야 한다. 성별이 남자와 여자뿐인 사회에선, 누군가는 보편적인 성별 중 하나로 인정받기 위해 인조인간처럼 사는 거다. 너무 불공정하지 않은가. 그렇게 한쪽 성별이 되어 올림픽에 참여하는 게 좋은 사회일까?
교황 선출의 긴장감을 표현한 영화 <콘클라베>(Conclave)도 이 문제를 짚으며 종교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겨우겨우 '제대로 된 인물이라고 여겼던' 이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그가 간성이었다. 겉으로는 남자이나, 내부에 자궁과 난소가 있었던 그는 척출을 계획했다가 마음을 돌린다.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이 주신 몸 그대로다(I am what God made me)."
인간에게 표준은 없다. 남자가 여자가 있고, 그 사이가 있다. 남자인데 남자임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 아니다. 그리 태어날 뿐이다. 고(故) 변희수 하사가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는가. 남자로 태어나 군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군인이 되었다. 하지만 성 정체성의 혼란에 힘들어하다가 수술 후 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계속 군인이고 싶었다. 대단한 요구를 한 것일까? 하지만 사회의 대답은 성기 훼손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강제 전역을 시킬 정도로 무례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운동을 하겠다는데, 여전히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자로 보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세상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트럼프는 행정명령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여성은 특정 상황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끔찍한 여성 정의를 반복한다. 노력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는, 그럼 여자가 아닌가? 불임 확률 17%와 55% 여성 중 누가 진짜 여성일까? 같은 이치로 남자도 따져서 무정자증 남자는 올림픽 출전을 금지시킨다면 젠장, 그게 무슨 세상인가. 표준화된 인간 96명이 한 번에 '부화'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스쳐 가는 게 나만이 아니었으면 한다. 참고로 2020년 도쿄 올림픽부터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올림픽 정신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바로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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