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어린자식마저 잃고 쫓겨난 이주자들

[기고] 꿈의 나라로 가는 죽음의 길 (5)

캐나다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원주민 가족의 해체작업이 자행되고 있었다. 정부가 나서 100년 넘게 원주민 어린이들을 부모한테서 강제로 떼어내어 기숙학교라는 집단수용소에 수감했다. 아니면 백인가정에 강제로 입양시켰다. 정부가 원주민 아동들을 격리하여 부모는 물론이고 원주민 공동체와 교류도, 접촉도 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던 것이다.

2021년 5월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어린이 유해 215구가 확인되었다. 이어 6월 또 다른 기숙학교 자리에서 어린이 751명이 묻힌 암매장 터가 발견되어 캐나다 사회가 경악했다. 한 달 남짓 새 1,000구의 유해가 발견되자 캐나다가 발깍 뒤집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원주민 아동 집단학살을 사사하는 사건이었다. 7월 1일은 캐나다 독립기념일이다. 하지만 2021년 그 날의 행사는 인종청소를 규탄하는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바람에 거의 취소되었다. 곳곳에서 규탄-추모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교회를 방화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이웃나라 미국에서는 불법이주자에 대한 대통령 트럼프의 불관용(Zero Tolerance)정책에 따라 대대적인 색출-체포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먼저 어린이들을 부모한테서 떼어내어 따로 수감했다. 그것은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가족해체 작업이었다. 수색작전은 조직범죄나 테러단체를 진압하는 작전을 방불케 했다.

기동타격대 차림의 검은 차량들이 줄지어 출동했다. 중무장한 수사병력이 격발태세를 갖추고 불시에 불법이주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살벌한 수색작업을 벌였다. 검은 전투복에 방탄조끼를 입고 등에는 'POLICE'(경찰), 'ICE'(이민관세청) 표식을 붙여 보기만 해도 위압적이고 고압적이다.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그들은 스페인어 구사자를 필수적으로 대동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상당수는 미국사회가 말하는 이른바 유색인이라 이민 2세가 아닌가 싶다. 입국시기와 상관없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입국한 사람은 모두 추방대상이어서 그들은 언제 쫓겨날지 언제 가족과 헤어질지 모르는 공포의 나날을 살았다.

잡히면 무조건 체포하여 신발 끈을 빼고 허리띠를 푼다. 그 다음 발에는 족쇄를 채우고 수갑을 채운 양손을 허리를 감은 쇠사슬로 묶어 꼼짝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체류기간이 얼마인지 범법행위가 있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제대군인인 남편이 시민권자이고 자녀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시민권자이나 그것도 따지지 않았다.

과속운전이라도 하다가 경찰한테 걸려 신분이 드러나면 즉시 체포되었다. 불법이주자는 무조건 남녀를 분리하고 젖먹이 애기조차 가족과 떼어내어 따로 구치소에 수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로 어디에 갇혔는지 몰라 안부조차 알기 어려웠다. 가족을 만나려고 하루 종일 차를 달려 구치소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니 불법이주자라면 누구나 얼음 덩어리처럼 차가운 ICE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5월 1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트럼프의 이민 정책 반대 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멕시코 아즈테카 문명 전통 복장을 입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8년 4월 불법이주자에게 무관용 정책을 적용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그에 따라 불법이주자를 중범죄자로 취급하여 부모와 어린 자식을 따로 떼어 가두었다. 가족분리 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자 어린이는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부모와 함께 수감할 수도 없으니 격리하여 수감했다는 것이 ICE의 설명이었다.

트럼프 1기행정부가 3,000여명의 연소자들을 가족과 격리하여 구치소에 수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사회에서는 질타의 소리가 들끓었다. 전임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부인 로라 부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을 강제로 억류했던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ICE 수장이었던 존 샌드웨그는 NBC 뉴스를 통해 연소자 격리수용에 대해 부모와 자녀의 추방 사이에는 수년간의 시차가 날 수 있어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억류된 어린이의 입양을 돕기 위해 자식을 포기하기도 했다.

입양가정이 재판을 통해 부모에게 통지하지도 않고 이주아동을 입양하기도 했다. 미시간 주에서는 한 기독교 입양단체가 이산가족의 상봉을 돕지 않고 이주아동의 입양을 추진하여 비난의 세례를 받기도 했다. 불법이주가족 강제분리 정책은 결국 많은 반대와 반발을 불러일으키더니 2018년 6월 ICE 폐지운동을 촉발했다. 항의시위가 주요도시로 번져나갔다.

트럼프 1기행정부는 취재진의 어린이 수감실태 촬영을 금지했다. 그러다 로라 부시가 반인륜적 가족분리 정책을 비난한 이후 수감실상을 찍은 짧은 동영상이 바깥세상에 알려졌다. 달랑 은박지 한 장을 덮고 매트 위에 누워 여기저기서 울음바다를 이루고 있는 광경이었다. 비탄에 빠진 그 모습이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미국의 수치이자 인간파괴의 만행이 아닐 수 없었다.

과테말라 출신 여자의 두 살배기 딸아이가 구치소에서 죽은 사실이 하원 청문회를 통해 밝혀져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다. 전국에서 분노의 비난성이 트럼프에게 향해 쏟아졌다. 엘살바도르 출신 9세 여아는 무려 531일간 구치소에 갇혀 홀로 크리스마스를 두 차례나 맞았다.

트럼프의 불법이주자 강제추방을 취재한 7부작 다큐멘터리 '이민국가'(Immigration

Nation)는 어린이 2,300명이 부모와 격리되어 수용되었었다고 보도했다. 그 중에서 1,800명이 부모와 재회했으나 700명은 여전히 부모와 떨어져 있다고 전했다. 그 중에서 400명은 부모가 이미 추방된 상태라 고아가 되었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6부작 '무서류 입국자의 살기'(Living/Undocumented)은 국가권력의 가족해체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트럼프의 불법이주가족 분리정책을 재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그 때까지 부모와 격리되어 수용되었던 600~700명의 어린이가 부모를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렸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부모를 잃어 버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CNN은 트럼프 1기행정부가 2017~2018년 최소한 5,500명의 어린이들을 부모한테서 강제로 떼어내어 따로 가두었다고 보도했다. 언론보도를 보면 부모와 헤어진 어린이들의 숫자가 들쭉날쭉하고 차이가 크다. 그것은 어린이들을 마구잡이로 검거하여 격리하는 소동을 벌이느라 미국정부도 그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란 의구심이 든다.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어린이들이 울어대고 말도 하지 못하니 의사소통이 이뤄졌을 리 없다.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이름과 나이는 물론이고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많은 부모들이 이미 미국에서 쫓겨났으니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질지 의문이었다. 미국에서 새 삶터를 잡아보려던 이주자들이 가족만 찢긴 게 아니라 가슴마저 찢겨 지금도 어디에서인가 통곡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판여론에 눌려 트럼프 1기행정부가 불법이주가족 분리정책을 일단 중지했었다. 미국에는 ICE의 무차별적 불법이주자 축출작전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지만 불법이주자가 워낙 많다보니 옹호여론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2기행정부가 불법이주가족 분리정책을 다시 추진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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