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러시아 갈까?

[현안진단] '고립 일변도'였던 남한의 대북정책, 유연성 가져야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논의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3월 24일,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시기가 외교 채널을 통해 조정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3월 21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의 평양 방문 시에 푸틴의 초청장이 전달됐다고 밝혔다.

쇼이구의 방북은 무박 1일이었고, 약 2시간 동안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했다. 통역을 감안하면 약 1시간의 면담이 이루어진 것인데, 여기에서 미·러 간 대화 재개 내용을 소상히 전달했고 북한 역시 크게 반겼다고 러시아 측은 밝혔다.

또한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부 차관은 지난 3월 27일 러시아 국제문제연구소(RIAC) 컨퍼런스에 참석해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를 위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 밖에도 인적, 물적 교류 확대를 위한 북·러 간 대화가 다양한 채널에서 진행되고 있다. 5월부터는 북·러 간 철도 운행이 재개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러시아 측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내용만 본다면, 적어도 올해 안에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추진 중에 있음은 기정사실화 되는 듯하다. 다만 시기를 놓고 조율 중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 측에서는 전승 기념 80주년 행사에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5월 9일 전승기념일 이전에 러·우 전쟁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승기념일에 러·우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대응하는 전선을 주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 행사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20여 개국의 정상들이 참석을 예고하고 있다. 러시아는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이 행사 흥행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3월 22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3월 21일 러시아 안전이사회대표단을 인솔하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안전리사회 서기장 세르게이 쇼이구(왼쪽에서 두 번째) 동지를 접견했다"라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계산기를 두드리는 북한

러시아의 기대와 북한의 계산법은 다를 것이다. 러시아의 전승기념일 열병식에 북한군이 참가한다는 내용은 확인되고 있으나,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북한은 러·우 전쟁에 북한군을 파병했다는 내용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러시아 역시 북한군의 참전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만일 김정은 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해서 러시아의 승리를 축하할 경우, 북한군 참전을 공개하며 승리를 확인하는 극적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도 북한군의 참전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러시아에서 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부담이 될 것이다. 현재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군 유해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9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여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군사시설을 시찰한 바 있다.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이번에도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를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북한은 당시 방문과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시에는 북한군의 파병과 러시아의 대북 군사적 지원이 맞물린 듯했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 시에 핵추진 잠수함으로 보이는 대형 잠수함을 슬쩍 공개했다. 또한 3월 27일 <노동신문>은 무인정찰기와 자폭 드론 개발과 성능시험 현장 참관 관련 사진에서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로 추정되는 항공기를 공개했다.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두고 공식화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에 대해서도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당시에는 북한과 러시아의 필요가 맞아떨어져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 흥행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는 형태이므로 북한의 요구 가격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10년 전인 2015년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승 70주년 행사를 개최했는데, 당시 막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으로 흥행을 일으키려고 했다. 지금과 달리 북한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주축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를 추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김정은 위원장이 5월 9일을 전후해서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까지 했다.

그런데 행사 직전에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이 무산됐다고 밝혔고, 북한은 행사 당일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감행한 바 있다. 또한 방러를 추진했던 현영철은 2015년 5월 13일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석상에서 졸았기 때문이라는 설부터 집에서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처형됐다는 설 등 억측이 많았지만, 어쨌든 공식 기록에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 이 시점이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 행사에 참석하여 흥행에 이용되는 대가를 러시아에 요청했고, 처음에는 러시아 측에서 수용했는데 막판에 성사되지 못했다는 설이 있었다. 북한이 요구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이 굳이 러시아 전승기념일에 무리해서 SLBM 시험발사를 감행했던 것으로 미루어 이와 관련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가 성사되지 못할 경우, 북한이 러시아가 받아들이기 힘든 대가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한다면 상당한 대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 지난해 6월 19일 북한 수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의 대외정책 전환을 예고할 방러

현 시점에서 5월 9일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선 경호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호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 번도 다자 정상외교를 해 본 적이 없다. 이는 북한의 경호 담당 기관 역시 다자 정상회담 시의 경호를 경험해 본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남은 시간을 감안할 때, 북한 경호 기관이 준비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결정하면 경호 기관은 맞출 수밖에 없겠지만 반대 또한 만만치 않을 듯하다.

다음으로 국제언론은 전승기념행사 또는 푸틴-시진핑 회담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참석에 더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러시아는 흥행을 위해 추진하겠지만, 중국이나 다른 국가들 입장에서는 마치 김정은 위원장의 들러리처럼 보이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심지어 시진핑 주석의 불참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시에 러·우 전쟁의 북한군 참전을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참전 희생 군인들의 이송 및 통보 등이 내부적으로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중앙과 지방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에 소집된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자강도 우시군과 남포시 온천군 지방 간부들의 세도와 부정부패를 특대범죄로 규정하고 공개 숙청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20승10정책'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고 발표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확대회의에서 지적한 내용은 이미 북한 사회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뤘다는 점은 표면적 이유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작동했음을 예상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행사에 참가한다면, 북한 대외정책의 변화를 예고한다. 우선 미·북 간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러시아의 중재로 미국과 북한 간 대화가 재개될 경우, 2019년 2월 불발로 끝난 정상 간 대화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요구한 대가가 북·미 간 대화 재개를 러시아가 주선하여 모종의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일 수 있다.

평양을 방문한 쇼이구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러·우 전쟁 종료를 위해 미·러 간 진행하고 있는 내용을 소상히 전했다고 러시아 언론이 보도한 점은 이를 추측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북한은 핵보유국이며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자신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과 북한 간 관계 진전을 위한 움직임이 감지된 것은 아직 없지만, 러·우 전쟁 이후 미·북 간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예측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다자간 외교 현장에 처음 데뷔한 이후 다자외교에 적극성을 보이면서, 정상외교를 통해 북한의 고립을 벗어나고자 할 듯하다. 또한 한국이 쿠바에 이어 시리아와 국교를 정상화함에 따라 중동의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 북한과 단독 수교한 국가는 이제 없다.

러시아 참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경제교류는 크게 늘지 못하고, 중국과의 교류는 줄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도 외교 다변화를 통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2국가'로 규정하고 남북 간에 그 어떤 접촉도 불허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졌던 교류가 완전 중단됨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와 같은 상황 변화와 관련국들의 전략적 계산을 내다본다면, 북한 고립 일변도였던 우리의 대북정책도 좀 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북 간 대화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는 한편, 중·러를 통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대상은 북한이며, 주변국들이 북한의 이러한 행태를 이용하는 한반도 안보 지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은 한반도 안보를 관리하고 주도한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시각과 방책으로 외교정책을 다듬어야 하며, 북한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를 적극적으로 '레벨업'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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