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천일염, 한국 첫 '강제노동 수입금지' 조치…미국 수출길 막혀

美 관세국경 보호청, 염전 국제노동기구 기준 위반 지적…신안군, 확대 해석 경계

▲7일 미국 수출길이 막힌 태평 염전의 모습ⓒ연합뉴스

전남 신안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이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됐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강제노동이 사용됐다는 합리적 근거를 토대로 태평염전에 대해 '인도보류명령(WRO)'을 발동해서다. 이로써 태평염전에서 만들어진 모든 소금 제품은 미국 입항 항구에서 통관이 금지된다.

7일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한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발동된 첫 WRO 사례다. CBP는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이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강제노동 지표 중 다수를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취약성 악용 △사기 △이동 제한 △신분증 압수 △비위생적 생활 및 근무 환경 △협박과 폭력 △채무 속박 △임금 체불 △과도한 초과근무 등의 정황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신안 지역 염전은 2014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지적장애인 노동자 강제노동 사건에 연루됐다. 특히 2021년에는 한 장애인 노동자가 염전을 탈출해 피해를 폭로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수사 결과, 미지급 임금만 약 1억 1500만 원에 달했다.

특히 지난 2022년 장애인 강제노동 문제가 불거진 태평염전은 1953년 조성된 국내 최대 단일 염전으로, 연간 약 1만 6000톤의 천일염을 생산하며 국내 천일염 생산량의 약 6%를 차지한다. 이곳은 자체 브랜드 상품을 유통하는 동시에 식품업체에 OEM 방식으로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원곡법률사무소 등은 2022년 11월, 태평염전을 포함한 한국산 천일염 기업을 대상으로 CBP에 WRO 청원을 제출했다. 약 2년 5개월 뒤 CBP는 이를 수용한 것이다. WRO가 발동되면 해당 기업은 '강제노동과 무관함'을 스스로 입증하지 않는 이상 미국 수출이 불가능하다. 한국 기업이 강제노동 사유로 WRO 제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신안군은 "전체 염전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일반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안군 관계자는 "2021년 사건이 태평염전 위탁 생산자에 의해 발생한 일"이며 "개인과 기업의 일이라 개입하기는 어렵다. 신안군은 요청이 있을 경우 필요한 행정 협조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선량한 염전 업자까지 도매금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신안경찰서, 전남도, 광주·목포 고용노동청 등과 매 분기별로 전 염전에 대해서 합동 점검을 하고 있다"며 "위법 사항이 발견이 되면 고발 조치를 통해 허가 취소, 영업 정지, 보조 사업 배제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신안군은 현재 인권센터 설립, 근로자 전수 실태조사와 월 1회 현장 점검, 외국인 근로자 교육 등 추가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평염전 내 장애인 근로자 9명을 대상으로 별도 면담도 진행한다.

그러나 인권 단체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허주현 전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2014년에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재발도 막지 못했다. 2022년 사건도 처벌이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도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염전은 사유지 중심이라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라, 결국 경찰 수사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건이 터질 때만 대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허 관장은 "미 국무부가 2014년 염전 노예 문제가 불거지자 직접 한국을 방문해 관련 기관과 면담했다. 그 이듬해에 UN 인신매매 보고서에 한국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당시 제대로 된 처벌과 제도 보완이 이뤄졌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22년 사건 보도 이후 미국의 한 재단이 염전 강제노동 실태 조사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지만, 소금 산업의 수입 규제 등 무역 전략 목적의 의도를 보였기 때문에 협조할 수 없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이제 인권을 외교와 경제의 주요 변수로 인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실제 피트 플로레스 CBP 청장대행은 지난 3일 태평염전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강제노동에 맞서는 일은 CBP의 최우선 과제"라며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 미국 내에 존재해선 안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태평염전과 위탁생산을 맡긴 S식품회사 측은 변호인을 선임해 공동 법률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한때 대통령 표창을 받았던 소금 기업의 위상이 국제 인권 기준 앞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에서 작업자가 염전을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