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세계는 독점되지 않고 활짝 열려야 한다. 학문이 사회 발전의 토대였던 시대엔 더욱 그렇다. 독점의 폐해란 얼마나 고약한가. 양극화로 인한 피해를 대중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세계 경제에서도 부의 독점은 견고하다.
안타깝게도 활짝 열린 학문적 풍토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채 우리는 밀려드는 새 시대를 맞고 있다. 학문하는 사람들만 접근이 가능했던 학문의 독점 구조가 막을 내리고 있다. 이미 일반에서도 전문 연구자들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과 결과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정보들에 접근이 용이해지도록 만든 디지털 혁명 덕분이다. 비전문가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문 연구자들 이상의 업적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런 기술적 환경은 학문분야 내부의 은밀한 독점구조까지도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양상에 관해서는 일찍이 마르크스도 자본 운동의 원동력으로서 주목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을 우리 학계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알량한 학맥, 인맥 카르텔이 더는 기능할 수 없게 된 지금도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여전히 마르크스를 새롭게 이해해갈 기회들을 스스로 차단하며 과거의 낡은 그물망 구조에 갇혀있는 것 같다.
<자본3>, 부가 독점화하는 과정을 파헤친다
마르크스는 <자본3>에서 사회의 부가 독점화되는 과정을 역사를 통해 꼼꼼하게 전개하며 고찰해냈다. 한 시대를 살아갈 뿐인 인간에겐 세대에 걸쳐 진행되는 긴 과정들이 왜곡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은폐됨으로써 그 실체가 잘 포착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자본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상품의 생산과정과 가치의 가격으로의 이행 과정을 <자본1>에서 개념적으로 설명해냈다. 이후 <자본3>에서는 그 가치의 생성과정과 생산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관계를 고구마 줄기 캐내듯 실감나게 전개한다. 줄줄이 매달린 고구마 줄기를 타고 고갱이까지 거슬러 올라가 흙을 털어내고 나면, 긴 역사적 흔적들과 과정들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고갱이와 연결된 줄기, 그리고 줄기를 타고 매달린 고구마들 사이의 관계가 포착된다.
이처럼 <자본3>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생생하게 조감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관계들은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거나, 동일한 모습으로 고정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을 통해 변해가는 것이라는 것도 변증법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기업의 생산 활동에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윤, 이윤율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이윤과 이윤율은 어디에서 출발했고 왜 필요했던 것일까? 오늘날 세계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신용화폐와 대출은 자본의 운동에서 왜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골치 아픈 신용화폐를 자본의 운동 밖으로 밀어내버릴 수는 없는지, 만일 밀어낸다면 세계 경제는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등 갖가지 의문점들을 논리적이면서도 지루할 만큼 친절하게 파헤치며 규명해낸다.
때때로 자본의 운동이 우리 삶을 파괴하는 절대악처럼 느껴지곤 한다. 현기증 나는 자본의 운동에서 간절히 하차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와 자본의 운동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는 그 어떤 대책도 우리를 이 현기증 나는 열차에서 구조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 운동 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그저 손쉬운 인류애적 처방들로 땜질하려 할 때 자본은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할 것임을 마르크스는 실증적으로 고찰해낸다. 이것이 이 시대의 우리가 자본을, 특히 <자본3>을 제대로 읽어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마르크스의 <자본>은 이처럼 현재적이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는, 특히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본>은 고전이 되고 만다. 안 그래도 <자본>은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다. 학문적 경쟁이 연구자들 밖으로 흘러나와 <자본>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되고 확장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멈춰선 자신들만의 한계 안으로 숨어들어 학문적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에 참여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에 관한 논문들을 찾아 읽게 됐다. <자본>에 대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은 논문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내가 채 발견하지 못한 좋은 논문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좋은 논문들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쉬운 언어를 포기하고 스스로 현학적 세계에 갇혀 앎의 깊이를 확장해갈 가능성조차 차단해버리는 경향들이 좋은 논문들을 압도한다. 우리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퍼트린 마르크스의 사상은 70, 80년대부터 줄곧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이후 학계에는 학문적 진보는커녕 고약한 권위주의 행태만이 남아 있다. 어쭙잖은 학문적 독점행태가 학문적 진보를 가로막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운동의 방향성마저 혼동하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후에 차분히 논증해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 사회가 가야할 방향에 영향을 미쳐왔던 학문적 방향이 늘 올바를 수는 없으며, 사회가 그런 절대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실은 마르크스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유럽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내는데 많은 굴곡의 변천사가 있었고 그때마다 그들의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운동방향도 재설정되어 왔다. 그러나 쉽지 않은 <자본>을 번역판으로 읽어야 했던 우리에겐 그런 현실 자체부터가 분명히 한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학문의 세계가 열려있는 한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해결해갈 수 있을 시간적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 한계 속에서 이룬 결과물들에 절대성을 부여한 채 문을 닫아버렸다는 점이다.
불평등의 시대와 시민들의 직접 <자본>읽기
이번 <자본3>을 공동 번역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학계 현실에 대해 그들로부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조심스럽게 한 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출간된 책들에서 수많은 오역이 발견되었고 문장과 문맥상으로도 원문과 상당히 다른 의미로 잘못 해석되는 등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되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자각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해보려 애쓰고 있을 독자들이었다. 나 역시 그 독자의 위치에서 고생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이룬 번역작업 자체는 우리에게 가능한 빨리 읽을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업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런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학문적 양심이다. 스스로 경험했을 그 한계를 인정하고 독자들과 공유해야 할 책무를 그들은 무시했다. 분명히 존재하는 학문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해야 학문의 세계에도, 독자들에게도 영원한 오류에 갇히지 않고 한 차원 높게 성장해갈 또 다른 계기와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은 차단됐고 학문적 진보도 답보상태에 있다.
게다가 온전히 독일어 번역이 아니면서도 독일어 번역이라고 주장한다든가, 일본어 번역본에 의존하고도 영어본을 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학문적 양심을 저버리는 심각한 우를 범하고도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도 반성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마르크스의 이 말 그대로 낮 뜨거운 현실이다. "과거의 어떤 발전단계에서 새롭고, 독창적이고, 심오하고 정당했던 것들을 이미 진부하고 김빠지고 틀린 것이 되어버린 시기에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통속경제학을 특징짓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고전파 경제학이 다루었던 문제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자본3, '자본주의적 지대의 기원' 중에서). 물론 우리 학계에 새롭고 독창적이고 심오하고 정당했던 당시의 것들에 순수하게 접근하려 노력했던 순간이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이런 비판들을 일단 뒤로 미루고 이번에 출간한 <자본3>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책에서 마르크스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들은 대부분 지금의 경제적 현상, 우리의 관심사들과 고스란히 일치하고 있어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읽어가는 데 노력이 필요하지만 공감하게 될 부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자본3>의 핵심적인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자본3>을 읽기 위한 핵심포인트 3가지
첫째, 돈(화폐), 부동산, 주식, 대출, 그리고 통화량과 금리, 무역과 결제, 환율과 금의 이동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주제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우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부동산 가격과 관련해서는 최초의 지대 발생지인 토지에 대한 부분에서, 상품유통 과정의 기반이 된 신용과 대출, 그에 따른 이자의 결정과정은 의제자본 부분에서, 생산과 직접적 관련을 갖지 않는 이자 낳는 자본인 유가증권과 주식에 대한 이야기, 개인회사의 주식회사로의 변천 과정,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모델이 된 1844년의 잉글랜드 은행법 탄생 과정과 당시의 치열했던 논쟁 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부의 축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거의 모든 주제들을 다룬다.
게다가 우리가 조각조각 이해하고 있는 이런 주제들이 상품의 생산관계 속에서 어떻게 생성되어 움직이고 소멸하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단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흥미롭되 결코 쉬운 전개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 차근차근 긴 호흡으로 마르크스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결코 흥미를 잃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째, 번역과 관련해서는 오역을 최소화하면서도 가능한 읽기 쉽게 문장을 다듬으려 노력했다. 과거 은행근무 경험이 평소 꾸준히 거시경제와 화폐, 금융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으며, 최근에 화폐 공부에 집중했던 점 등이 마르크스의 금융 및 화폐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고 황선길 교수와 공동으로 번역 작업을 함께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물과 현상에 대한 마르크스 특유의 표현방식을 우리말로 재구조화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150년이나 지난 과거의 언어표현 방식, 그리고 역사성을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명칭들과 상황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결코 번역이 가능하지 않았던 부분들, 마르크스 특유의 비아냥거림의 표현까지 우리말로 정확히 이해되도록 전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황선길 교수의 독일어판 직번역 작업분을 영어본(On-Line Version: Marxists.org, 1999)과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오역 없이 우리말로 전달되도록 표현해내는 작업을 했으며, 이해가 어렵거나 문제가 될 만한 수많은 상황과 문장, 명칭들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상황과 당시의 쓰임새를 고찰해가며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도록 끝까지 함께 토론하고 고민했다.
그렇게 노력한 목적은 오직 하나. 일반인들이 마르크스의 <자본3>을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서였다. 흔히 <자본1>을 읽어본 독자들이 마르크스의 자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지레 포기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자본> 전체의 구조상 <자본1>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의 가치의 형성 과정, 가치의 가격으로의 이행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기본 모델(역사적 전제로서의 단순상품생산)에 해당하는 개념적 부분이다 보니 다소 지루해질 수 있다. 물론 <자본1>에서도 <자본2>와 <자본3>을 예견할만한 구석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자본3>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구조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주제들을 전개하고 있어 훨씬 재미있고 편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익숙한 그 주제들의 근원은 어디이며, 어떤 경로와 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들춰내 보여주고 있으니 지루해질 사이가 없다.
셋째, 우리를 지루할 새 없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전개방식이다. 자본 자체가 고여 있는 하나의 이론체계가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속성을 가진 운동이다. 자본을 플라톤식의 절대 진리의 개념, 하나의 이론체계로 이해하면 결코 마르크스의 <자본>에 다가갈 수 없다. 그러나 보통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독일어 'Das Kapital'은 그대로 '자본'이다. 그런데 이를 일본식 표기법인 '자본론'으로 번역해오다 보니 이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방해 요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본은 끝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생물과 같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전과 동일하지 않은 형태와 움직임을 마르크스는 특유의 변증법적 방식으로 전개해간다. 예컨대 이윤율만 보더라도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공식처럼 이해될 수 있지만 마르크스에게서는 변증법적으로 끝없이 움직이는 운동이자 수렴해가는 경향성으로 설명된다.
오늘날 화폐와 금융현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 변화에 따라 인간의 삶도 늘 갈대처럼 흔들려왔다. 일찍이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는 이런 화폐현상들을 화폐제도 자체만의 문제로서 이해하고 해결하려했던 당시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본운동의 거대한 법칙 속에서 화폐현상을 바라보라며 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방대하게 설명해냈다. 바로 그 <자본3>에서 우리는 화폐를 둘러싼 복잡한 경제현상을 이해할 근본적 단서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탈중앙화 디지털자산을 받아들이며 급변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구조를 탐구할 중요한 아이디어 역시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더하여 이번 번역판 역시 또 다른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더 발전된 번역과 연구들이 계속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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