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파면'되는 순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는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다. 심판정은 조용했다. 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재판관 퇴장에 따른 방청객 기립 안내가 나오자, 비로소 환호와 안도의 숨 소리가 들렸다.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4일 오전 11시 22분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며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38일간의 숙고를 거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로써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사건이 111일만에 결실을 봤다.
문 권한대행은 22분간 결정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표정 변화가 크게 없었다. 그는 다만 5가지 소추사유를 하나하나 설명한 뒤, 청구인 측과 피청구인 측에게 '관용'과 타협', '협치'와 '존중'을 언급할 때는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몸을 돌려 양측에 당부하듯 전달했다.
이후 문 권한대행이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하자 피청구인 측 대리인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대리인 중 한 명은 의자 등받이 쪽으로 몸을 기대며 허공을 쳐다보기도 했다.
결정문을 낭독한 문 권한대행 외에 7명의 재판관들도 내내 같은 모습을 보였다. 김형두 재판관만 방청석을 수시로 쳐다보며 뭔가를 적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재판관 8인은 대체로 담담한 표정과 자세로 선고에 임했다.

국회 측과 윤석열 측, '파면' 선고에 표정 엇갈려…
선고 전부터 국회 측 대리인단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윤석열 측 대리인단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는 계몽됐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은 김계리 변호사는 심판정 사진을 찍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 의원들도 핸드폰 등을 확인하며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수고했다" "고생했다"라며 서로 인사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김기현·윤상현 의원과 나란히 앉은 나경원 의원은 핸드폰을 응시한 채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선고 결과에 양측의 표정이 바뀌었다. 국회 측 방청석에서는 작은 환호가 나왔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무언의 함성을 지르는 모습도 포착됐다. 대리인단 대표인 김이수 변호사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대리인단은 재판관들이 퇴장한 후에, 비로소 얼싸안았다.
윤석열 측 방청석에서는 '툭'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탄식이 흘러나왔다. 윤갑근 변호사는 재판관들의 퇴장 후에도 발걸음이 떨어지는 않는 듯 자리에 서 있었다. 윤석열 변호인단 중 한 명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변론했던 조대현 변호사는 선고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김이수 "'尹 파면' 결과는 국민과 함께 거둔 결실"…장순욱 "재판관 '전원 일치' 선고, 감사"
만면에 웃음을 띈 채 대심판정을 나선 김이수 변호사는 <프레시안>에 "사실 계엄 선포 때부터 윤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자기가 무덤을 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탄핵 심판이 시작되면서 파면은 당연한 것이라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헌법재판관이었을 때보다 국회 측 대리인단으로 선고를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헌재의 결정문 내용과 관련해 "오늘 헌재의 결정을 보니까 이 사회 전체를 뚫어보면서, 정치 현상 전체를 꿰뚫어보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해줬다"며 "저희 대리인들의 생각도 넘어서서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 좋은 판단을 해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오늘 결과는 국민과 함께 거둔 우리의 결실"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탄핵심판 내내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한 장순욱 변호사는 <프레시안>에 "선고 직전에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이런 결과를 보려고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며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재판관들 사이에서는 미세한 의견 조정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럼에도 '전원 일치' 의견을 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윤석열 파면', 정답이 나왔다…尹, 승복하라"
전날 4815.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방청권을 얻어 '전직 대통령'이 된 윤 씨의 파면 순간을 직접 본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할 말 없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시민들도 몇몇 있었다.
송 모 씨(30대·서울)는 "선고가 나는 순간의 기분이 감당이 안 되더라"라면서 "(파면은) 당연한 결과인데도, 선고가 지연되다 보니 떨렸다. 그래도 '정답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모 씨(60대·경기)는 "제가 믿었던 대로 (탄핵) 인용 결정이 나고 (윤 씨가) 파면이 돼서 지금 너무 기쁘다"며 "오늘 이렇게 역사의 한 현장에 있다는 것도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너무 힘들게 이룩한 민주주의고, 너무 힘들게 지켜온 나라 아닌가"라며 윤 씨에게 "'당신 한 사람이 이 나라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길 바란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오 모 씨(30대·경기)는 "(헌재 심판정에) 들어갈 때는 긴장이 됐는데 나올 때는 후련해서 좋다"며 윤 씨에게 "승복했으면 좋겠다. 승복하여라"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표 모 씨(20대·서울)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너무 신난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행복하다. 계엄 이후 두려웠던 마음, 혼란스러운 상황이 드디어 끝났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윤 씨가) 진짜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죄 값도 받고 사람들의 비판도 다 받으면서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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