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공부 못해서 되는 거 아니냐고요?

[2025 '6411 투명일기'] ② 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

경희대학교와 노회찬재단은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햇수로 3년 째 이어져 온 이 강좌에서는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이주민 등 존재하지만 목소리를 갖기 어렵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강연자로 나서 청년들에게 자신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프레시안> 지면으로 중계합니다.

두번째 주인공은 10년 동안 해고자 생활을 하다 복직한 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입니다. 그는 자신의 복직은 문자로 부당해고를 자행한 회사와 이를 불기소 처분했던 검찰에 맞서 싸웠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자신처럼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며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며 그들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당부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경북 구미에서 왔습니다. 구미는 노동자가 밀집해 사는 공단 도시인데요. 저는 구미에 있는 아사히글라스라는 일본 기업에서 일하다 해고돼 10년 간 싸워서 복직했습니다. 해고될 때 첫째가 고등학교 3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요. 이제 첫째가 30살, 둘째가 23살이 됐네요. 그 과정에서 겪은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하려 해요. 첫 번째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IMF 이후에 파견법, 기간제법 등으로 비정규직이 제도화했죠.

최근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고 하면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학교 급식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요구를 할 때도, 인천공항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요구를 할 때도 '공정 담론'이 가로막았어요. '누구는 죽어라 공부해 정규직 됐는데, 쉽게 그냥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려고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요.

그때 학교 급식실 노동자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1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해 왔어요. 시험 보고 정규직 되라고 하는데, 밥하는 데는 시험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비정규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두 번째는 '한국사회의 법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입니다. 최근 윤석열 탄핵 문제가 있는데요. 계엄도 충격적이지만, 계엄 이후 한국사회가 법적으로 이를 빠르게 바로잡지 못한 게 더 충격적인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에게도 법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라고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장. ⓒ노회찬재단

노조 만든지 한 달만에 문자 해고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들

아사히글라스는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입니다. 미쓰비시는 일본에서는 굉장히 잘 나가는 기업이자 전범기업이죠. 20년 정도 전에 아사히글라스가 한국에 들어왔고요. 연 평균 1조 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 중입니다. 공장부지 10만 평은 5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받고 있어요. 세금 혜택도 연 600억 원 정도 받고 있죠. 아사히글라스 구미공장에서는 10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데요. 저를 포함 300명 정도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저는 해고 전 현장경력 6년의 반장이었는데, 호봉 없이 입사한 사람과 제 임금이 똑같았어요. 임금 인상은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만큼만 이뤄졌어요. 비정규직의 근무시간은 평일 3조 3교대였고요. 주말에는 2교대 근무를 했습니다.

인권 침해도 있었어요. 노조를 만든 주요 계기이기도 한데요. 일하다 지적당하면 붉은색 징벌조끼를 입혔어요. 아사히글라스에 다니기 전에 다른 회사도 다녔는데,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공장 안에 있는 화장실에 실내화가 두 켤레밖에 없는데, 두 명이 먼저 들어가 있으니까, 소변이 급한 한 비정규직이 일할 때 신는 신발을 신고 화장실에 갔어요. 정규직이 그걸 보고 사무실에 이야기해서 한 달 동안 징벌조끼를 입게 했어요.

점심시간은 20분밖에 안 됐어요. 그동안 볼일 보고, 이도 닦고, 담배도 피우고 다 하는 거죠. 사람의 능력은 무한한 것 같아요. 쪼니까 다 해내더라더고요. 그런데 우리끼리 싸우는 거죠. '1분 빨리 왔네, 늦게 왔네' 하면서요.

직접고용되기 전 제가 일하던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에서는 178명이 일했는데요. 2015년 5월 노조를 만들자마자 2주 만에 140명이 가입했어요. 그만큼 쌓인 게 많았던 거죠. 그리고 기본적인 것들을 요구했어요. '시급 8000원을 달라,', '도시락 품질을 개선해달라.' 연 매출 1조 원씩 올리는 잘 나가는 기업에서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요.

회사는 과하다고 생각했나봐요. 노조 만들고 딱 한 달째 되는 날 우리 업체 178명만 다 휴가를 보냈어요. 내부 공사를 한다면서요. 처음 있던 일이었어요. 그날 문자로 해고통보를 했어요. 회사 캐비닛에 있는 물건을 뺄 시간도 없이 다 쫓겨난 거죠. 작년에 복직해서야 캐비닛에 있던 물건을 되찾았어요. 10년 만에 캐비닛 문을 여는데 느낌이 새삼스럽더라고요.

해고 방식은 도급 계약 해지였어요. 하청업체와의 계약도 끊은 거죠. 문자로 해고 통보 받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니까 용역 100명을 고용해 정문을 지키면서 못 들어오게 하더라고요. 나중에 재판하는 과정에서 회사 자료를 봤는데, 용역들한테 준 인건비만 한 달에 6억 원이었어요. 법률 계약은 김앤장과 맺었으니 다른 비용을 다 합하면 노조 없애겠다고 수백억 원을 썼을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돼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조금 올려주면 되는 문제잖아요. 그런데 노조 막겠다면서 그 수백 배 되는 돈을 쓴 것 같아요. 평소에 회사가 '자재 아껴라', '물건 아껴라', '장갑 아껴라' 이야기했거든요. 상식적인 일이죠. 그런데 노조가 생기니까 이성을 잃고 수십억, 수백억 원을 막 쓰더라고요.

▲ 아사히글라스가 고용한 용역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회사 진입을 막고 있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부당해고를 인정받기까지 10년이 걸린 법정 투쟁

노동자들이 해고되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어디일까요? 노동부입니다.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잘못한 기업을 처벌하는 일을 해야하는 곳이에요. 2015년 6월 해고되고 7월에 바로 노동부에 찾아가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불법파견 혐의로 회사를 고소했어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그것도 노동부와 엄청나게 싸워서 이뤄낸 일이었어요.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죠. 지나가다 한 대 맞아서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이 2년 뒤에 사건을 검사에게 넘긴 꼴이잖아요. 보통 노동부에 임금체불 신고를 하면 몇 달 안에 해결하거든요. 그런데 왜 사건이 검찰에 가는 데만 2년이 걸렸을까요?

김천지청 담당 검사가 재수사 명령을 계속 내렸기 때문이에요.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조사해 검찰에 올리면 '재수사해라', 다시 조사해서 올리면 또 '재수사해라' 이렇게 한 거죠. 그건 '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무혐의 처분 하라는 거죠. 그런데도 근로감독관이 볼 때 아사히글라스가 한 일이 불법이니까 기소 의견으로 올린 거예요.

검사에게 넘겼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죠. 검사가 기소하고 재판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3개월 뒤에 우리 사건 검사가 15페이지짜리 불기소 이유서를 쓰고 회사에 무혐의 처분을 했어요. 회사가 불법행위를 한 증거자료는 넘쳐났어요. 근로감독관이 검찰에 넘긴 수사보고서와 자료 분량이 5000페이지가 넘었어요.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검찰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죠. 우리나라에서 검찰은 뭡니까? 최대권력이에요. 기소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누구도 처벌받지 않아요. 마구잡이로 기소해서 사람을 때려잡는 것도 문제지만, 범죄자를 기소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80만 원을 훔친 배달부와 300억 원을 횡령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있다고 해요. 이게 검찰로 넘어가고 재판 받으면 배달부는 구속되고, 대표이사는 집행유예를 받아요.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 1차적으로 검찰이에요. 그 다음이 법원이고요. 한국사회가 굉장히 기울어져 있는 거죠.

검찰을 상대로 열심히 싸우니까 1년 6개월 정도 뒤에 검찰이 아사히글라스를 기소했어요. 그때가 2019년이었으니까 해고된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죠. 그리고 2021년에야 법원에서 1심 결과를 받았어요. 그때 아사히글라스 사장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어요. 구속이 안 된 거죠. 벌금은 1500만 원이었습니다. 하청 사장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을 받았어요. 솜방망이 처벌이 나온 거죠.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2023년도에 2심 판결이 나왔는데요. 아사히글라스 사장에게 대구고등법원 판사가 무죄를 선고했어요. 8년 만에 사건이 원점으로 돌아간 거에요. 아무 문제도 없었던 걸로….

알고 보니 이 판사가 대형 로펌 태평양 출신 판사였습니다. 아사히글라스가 저희 사건을 의뢰한 데가 김앤장과 태평양이었거든요. 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해충돌 아니냐고 3개월을 이야기했어요. 이 일로 시끄러워지니까 나중에 태평양 출신 판사가 휴직하더라고요.

2024년 7월이 돼서야 대법원에서 노조가 최종 승소를 했습니다. 내 삶을 다 바쳐서, 10년 세월을 바쳐서 불법 하나를 드러낸 거예요.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법원이 해결하는데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면 어떻게 합니까? 길 가다 한 대 맞았는데 10년 뒤에 벌금 100만 원이라고 하면, 우리 사회의 법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겁니까?

▲ 2024년 7월 11일 대법원 앞에서 열린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 ⓒ프레시안(최용락)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들의 10년에 걸친 복직 투쟁

그 동안 제가 당한 일은 엄청나게 많았어요. 유치장에 5번 정도 갔고요. 집행유예도 4개 받았어요. 벌금형도 한 6~7번 받았습니다. 싸우는 과정에서 그냥 피켓만 들고 서 있으면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되니까 그렇게 했던 거였죠. 그 과정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노동자들이 해고되면 보통 제일 먼저 하는 게 천막을 치는 거예요. 근거지가 있어야 되니까요. 저희도 공장 앞 정문에 천막을 쳤는데 노동위원회에서 불법이라고 판정했어요. 얼마 뒤 구미경찰서와 구미시청이 경찰과 공무원 700명을 보내서 새벽에 농성장을 철거하러 왔습니다.

'불법을 행한 건 회사인데 왜 우리 농성장을 철거하러 오냐?', '이 농성장이 그렇게 불법적인 거냐'면서 6차선 도로를 5시간을 막고 싸웠어요. 조합원들이 천막 설치에 쓴 밧줄에 목을 묶고 버티기도 했어요. 그래도 수십 명의 조합원이 700명을 이길 수는 없잖아요. 농성장이 결국 다 해체됐어요. 그 과정에서 넘어지면서 허리가 다쳐 병원에 입원한 조합원도 있었어요.

그래서 구미시청에 항의방문을 하러 갔습니다. '사과해라', '앰프, 텐트, 천막 파손으로 인한 손해금 420만 원을 내놔라' 두 가지 요구를 걸고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시청 앞에서 버티면서 일주일을 싸웠어요. 결국 구미시장에게 사과 받고 420만 원을 받았습니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경험한 거죠.

다시 회사 앞 똑같은 장소에 천막을 쳤습니다. '농성장이 혐오스러운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려고, 그림작가 한 분과 함께 조합원들이 꽃도 그려가면서 농성장을 굉장히 아름답게 꾸몄어요.

아까 저희 사건 담당 검사가 회사에 불기소 처분을 해서 검찰을 상대로도 싸웠다고 말씀드렸죠. 그때도 대구검찰청 앞에 천막을 쳤어요. 그 앞에 천막을 친 건 저희가 처음이었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검찰청 100미터 안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했거든요. 기자회견만 해도 벌금이 300만 원이었어요. 그러면서 직원들이 밥 먹으러 나오면 '검찰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왔다'고 적은 선전물을 나눠줬어요.

아무 변화가 없더라고요. 농성 5개월째 되는 2018년 12월 28일, 연말에 검찰청 로비에 들어가 눌러앉았어요. 이것도 대구검찰청 생기고 최초였어요.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어요. 그때 언론사에도 연락을 많이 했고, 기사도 많이 나갔어요. 하지만 결국 잡혀갔어요. 또 다 유치장에 갔죠. 이틀 살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결국 검찰이 아사히글라스를 기소했어요. 검찰이 한번 무혐의라고 판단했던 사건을 다시 기소한 거죠.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검사동일체라고 해서 검찰은 군대 같은 조직이잖아요. 검사가 불기소 이유서를 쓸 때도, 이렇게 증거가 많은 사건인데 배운 대로 했으면 그럴 수 없었을 거에요. 위에서 시키니까 했겠죠. 그런데도 뒤집었어요. 이런 사건이 한국에서 1%가 안 된대요. 싸워서 뒤집은 거죠.

동덕여대에서 학생들이 교내에 락카칠을 했다고 난리가 났잖아요. 50억 원을 배상하라느니. 저희도 공장 정문 앞 도로에 '빨리 해결하라'고 락카칠을 했었어요. 해도 해도 안 되니까요. 지우면 됐을 텐데 회사가 어떻게 했느냐면, 도로를 아예 갈아엎고 재포장하더니, 그 비용을 조합원들에게 청구했어요. 저한테도 5200만 원 손배청구서가 날아왔어요.

락카칠과 관련해서는 재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락카칠을 하기 전 저희 사건을 담당한 금속노조 변호사님이 지워지는 락카라는 걸 동영상으로 찍어 남겨놓자고 했거든요. 귀찮지만 했어요. 아세톤 칠하니 잘 지워지더라고요. 아세톤 굉장히 싸거든요. 재판 때 사측 변호사가 안 지워지는 락카라고 주장해서 그 동영상을 증거로 냈어요. 그때 사측 변호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마 그 변호사한테 준 돈이 5200만 원 넘었을 거에요.

그때 사측이 김앤장 변호사 2명을 썼는데요. 한 명은 서울대 법대 교수로 가 있고요. 그 옆에서 보조하던 변호사는 판사 임용 시험을 봐서 판사가 됐어요. 그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재판을 할지, 학생들에게 뭘 가르칠지 잘 모르겠어요.

2015년에는 아사히글라스 본사가 있는 일본에 가서 원정투쟁도 했어요. 일본 본사가 모든 걸 다 결정하니까요. 아사히글라스 한국 사장은 4년 정도면 한 번씩 바뀌어요. 그냥 월급받는 사장이에요. 한국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일본 본사는 아무 타격도 안 받는 것 같았어요. 직접 가서 보니까 본사 건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때 일본 시민들과 함께 아사히글라스투쟁대책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분들이 10년을 같이 싸워주셨어요. 우리가 일본에 안 가도 항의행동을 계속 해주시더라고요. 한번은 통역을 통해 '왜 도와주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일제시대에 조선을 착취했던 것처럼 일본 기업이 한국까지 가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노동자를 해고한 건 우리 책임이다. 우리가 제대로 못 싸워서 그렇다'고 하시는 거에요. 깜짝 놀랐어요.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 설치한 천막을 지키기 위해 천막을 붙들기 위해 묶어둔 밧줄을 목에 걸고 있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비정규직, 아사히글라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사히글라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비정규직들의 투쟁이 전국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비정규직이 1100만 명이 넘는다고도 하죠. 저희가 함께 연대했던 사업장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태안화력발전소에요.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24살 청년 김용균 님이 산재로 사망한 곳이죠. 발전소 안에 석탄을 옮기는 굉장히 긴 컨베이어벨트가 있었어요. 가끔 석탄이 벨트 아래로 떨어지기도 할 거잖아요. 그러니 누군가는 벨트가 잘 작동하는지 문을 열고 확인을 해야 했어요. 태안화력발전소는 그 일을 비정규직에게 시켰습니다. 그래서 김용균님이 새벽에 그 작업을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돌아가셨어요.

사고가 나고 어머니인 김미숙님이 회사에서 연락 받고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너무 끔찍해서 시신을 보여드릴 수가 없다'고 했대요. 나중에 연락한 하청업체는 '용균이가 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일을 해서 사고가 났다'고 했대요. 어머니가 나중까지도 그때 그 하청업체 사장의 말이 굉장히 화가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김용균님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어요. 깜깜한 곳에 있는 석탄을 실은 컨베이어벨트에 기어 들어가서, 회사가 플래시를 지급하지 않으니 핸드폰 불빛을 활용해 컨베이어벨트 상태를 점검했어요. 이 일을 2인 1조로 하는 게 원칙이었는데 이것도 지켜지지 않았어요. 김용균 님이 일을 하러 갔다 돌아오지 않으니까 동료들이 새벽까지 찾으러 다녔대요.

이런 일에 대한 책임은 원청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원청은 사고가 났는데도 제대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하청업체를 만들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 자체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 것이었겠죠.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임금을 적게 주거나, 해고를 아무렇게나 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하청에 떠넘길 수도 있고요.

김미숙 어머니는 산안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원청이 노동자의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신 분이에요. 국회에서 단식도 하고, 끈질기게 싸우셨죠. 그 전에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어요. 하청 사장이 책임을 졌죠. 김 이사장님은 지금도 김용균재단을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다음은 톨게이트 요급수납 노동자들이에요. 2019년에 노조를 만들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웠어요. 서울톨게이트에 올라 고공농성도 했죠. 나중에 대법원이 한국도로공사가 요금수납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도 냈어요. 도로공사가 수십년 간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을 써왔다는 거죠.

이분들이 사실 정규직화 요구 때문에 노조를 만든 건 아니었어요. 정말 억울하고 더는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해서 만든 거였어요. 직접고용되기 전 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은 수백 개의 요금수납 하청업체가 있었었거든요. 여기에 사장으로 내려오는 건 도로공사 퇴직자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중간착취로 먹고 산 거죠.

하청업체 사장은 대부분 남성인데, 요금수납 노동자는 대부분 50대 중년 여성이었어요. 같이 싸우면서 들은 이야기가 구구절절했어요. '사장이 회식 끝나서 집에 가야되니 태우러 오라고 했다', '노래방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반찬 만들어 오라고 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대요.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참고 일했다는 거에요. 해고되면 안되니까. 그러다 노조를 만든 거죠.

노조를 만들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는 조합원 350명이 들어가서 도로공사 김천 본사 로비를 점거하기도 했어요. 경찰이 경찰차 200대를 동원해서 경력을 투입하고 이 분들을 끌어내려고 했어요. 여성들이 힘으로는 그걸 이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웃옷을 벗고 악착같이 버텨서 연행을 저지한 일도 있었어요. 지금은 다 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이 됐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시커먼 가루가 가득한 전주 엔진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20년에 쓰리엠 마스크를 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파업을 한 일도 있었어요. 현대차 하면 우리나라에서 시가총액 국내 2위에 매출이 180조 원을 넘는 기업이잖아요. 그런데도 비정규직은 싸구려 마스크를 쓰고 얼굴이 시커매져가면서 일했어요.

대우조선해양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어요. 2022년에는 유최안 전 거제통영고성지회 부지회장이 0.3평 정도 되는 철제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일도 있었어요. 지금 조선업이 굉장히 호황이라잖아요.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은 한 달에 300만 원 받는대요. 과거 조선업이 어려울 때 삭감했던만큼이라도 임금을 돌려달라는 게 하청노동자들 요구에요.

▲ 시커먼 분진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노동자에게 의자놀이 시키는 한국사회

아사히글라스를 포함해 여러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의 근본 원인이 비정규직 제도라고 저는 생각해요. 차별과 착취를 보장하는 구조적인 제도가 비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이 안 돼보면 몰라요. 아사히글라스에서는 정규직은 멀쩡한 옷을 주고 저희에게는 나일론으로 만든 3000원이면 살 수 있는 작업복을 줬어요. 노조 만들고도 '우리에게도 제대로 된 작업복을 달라'는 게 요구 중 하나였어요.

혹시 공부 못해서 비정규직이 됐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한국사회가 의자놀이를 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10명인데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의자는 4개만 갖다 놓은 거죠. 나머지 6명은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고요. 오죽하면 매출이 180조 원이 넘는 현대자동차도 비정규직을 고용하잖아요.

게다가 근로기준법에서는 엄연히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어요. 기업과 노동자 중간에서 월급 떼먹지 말라는 거죠. IMF 때 파견법을 만들면서 그게 무너졌어요. 하청을 쓸 수 있는 범위가 확 넓어졌어요. 김용균님도 원청이 하청에 주는 돈은 500만 원이었는데, 월급으로는 250만 원을 받았어요. 아사히글라스에서도 원청이 준 돈 중에 인당 100만 원 정도는 하청이 가져갔어요.

법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에요. 검찰이 아사히글라스 항소심에서 대표이사에게는 징역 6개월을 구형하고요. 저에게는 도로에 락카칠 했다고 징역 10개월을 구형했어요.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를 한 것보다 그에 맞선 게 더 심각한 행위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싸우는 과정에서 이런 게 다 구조적인 사회 문제라는 걸 알게 됐어요. 열심히 싸운 덕에 대법원에서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내고 복직도 했죠.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아마 검사가 처음 아사히글라스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을 때 이야기가 끝났겠죠.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희가 이렇게 긴 시간 버티고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옳다'고 지지하고 지원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사회는 누가 바꾸냐? 저는 싸우는 사람들이 바꾼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옆에서 '여러분이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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