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의 '사회적 반란' 막을 방법 찾아야 할 때

[안종주의 생명사회] 누가 생명권을 보듬는가? 전공의인가? 서울대 의대 교수인가?

대한민국 인권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여권 출신 인권위원들은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 약자를 보듬는 인권은 내팽개친 채 윤석열과 내란 실행자들, 그리고 폭도들만 챙기고 있다. 애초부터 인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만 재주 좋게 쏙쏙 골라 윤석열이 임명했기 때문이다. 참담하다. 사회를 진흙탕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에서 비롯했다.

인권 중 최고의 인권은 생명권이다. 의사는 그 생명권을 다루는 직업이다. 환자의 생명을 내팽개친 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진료실을 떠나거나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환자가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물론 외국에서 한국과 같은 형태의 의사 장기 전면 파업, 전공의 집단 휴직 등과 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생명권을 거들떠보지 않고 2년째 유사 파업, 즉 파업 아닌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툭하면 의사 집단행동과 집단 휴진 등이 있었다.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1989년 통합의료보험 반대 투쟁,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이 있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는 파업이 없었다. 그때라고 해서 의료수가, 의료제도 등에 의사들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국민의 피와 땀으로 민주공화국을 쟁취한 뒤에야 의사 파업이 잇따랐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이익 때문

의사 집단이 집단행동을 하는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다. 전공의협의회나 의사협회, 병원협회와 같은 의사단체는 공익단체가 아니라 이익단체다. 의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의사 개인 또는 집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판보다는 이들을 옹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탄생했다.

과거 1980년대 인공고관절 수술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3개 의과대학의 교수 3명 모두 인공고관절 수입업체 관계자와 짜고 재료대를 부풀려 폭리를 취한 적이 있다. 그 이익에 대한 비용은 환자에게 물론 전가됐다. 이 사건으로 이들이 구속되자 당시 의사협회 회장은 직접 국무총리를 만나 이들을 불구속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요구는 이루어졌다.

1970~90년대에는 불법 낙태와 태아 성감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긴 하지만 진료실에서 마취 후 여성을 성폭행 또는 성추행하는 일도 가끔 이루어진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는 거의 상습적으로 하는 의사도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는 이런 의사를 영구 면허취소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는 물론이고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된 최근에도 이런 중징계보다는 잠시 면허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이 다반사다.

의사, 국회의원 못지않은 특권층고도의 윤리 중요

의사는 특권층이다. 국회의원 못지않다. 그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국민은 더 잘 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대접하는 까닭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여럿 낳아 키울 때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갖게 하는 게 좋을까?'라는 물음에 가장 많이 꼽는 것이 판·검사와 더불어 의사다. 근래 들어서 너도나도 앞다퉈 의대를 지망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의사는 그 어떤 시대에도 안정적 수입과 함께 중요한 사회적 지위를 누릴 것임은 틀림없다.

이런 직업일수록 사회는 윤리를 강조한다. 그들이 비윤리적 행태를 보일수록 사회가 위험에 빠지고 시민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와 더불어 일반 시민에 견줘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언론인, 교육자, 연예인, 문화인, 종교인, 공무원 등에 대해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를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가 얼치기 목표와 전략으로 그들을 크게 자극한 면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의대생 집단 휴학과 전공의 집단 휴직 사태가 이렇게 장기간,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며 이어지는 것은 문제다. 의사 전체가 사회와 대립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도 아니며 전략도 아니다. 의사 집단은 이들의 이런 집단행동에 대해 '그들도 할 말 있었다'라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를 줄곧 취해 왔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들을 따끔하게 나무라는 의인들이 나타났다. 네 명의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다. 서울대 의대·병원 강희경‧오주환‧하은진‧한세원 교수는 지난 17일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수련병원과 학교를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와 의대생을 향해 "현재의 투쟁 방식과 목표는 정의롭지도 않고 사회를 설득할 수도 없어 보인다. 이제는 이런 투쟁 방식에 계속 동조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성명 내용을 간추려(간추렸음에도 좀 길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의사와 환자 이익 충돌 때 환자 이익 우선"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의료 관련 기사 댓글, 박단의 페이스북 글들, 그 안에 가득한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쳐납니다. 정말 내가 알던 제자, 후배들이 맞는가, 이들 중 우리의 제자, 후배가 있을까 두려움을 느낍니다. 조금은 겸손하면 좋으련만,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봐 두렵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진짜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지난 1년 동안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 아닌가요? 그들의 가족들 아닌가요?

여러분이 '착취당했다'라고 말하는 3~5년의 수련 과정은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은 평생 사용할 의료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전문성을 쌓으며, 선배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습니다. 그 몇 년을 투자하고 전문의가 되는 것입니다. 진짜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들은 어떻습니까? 수년간 밤낮없이 연구실에서 살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연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산직·서비스직 노동자들은 12시간 넘게 서서 일하면서도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자영업자의 75%는 월수입 100만 원을 벌지 못합니다. 그중 소득이 0인 사람이 100만 명입니다. 그들의 삶이 여러분의 눈에 보이기는 합니까?

여러분은 의사 면허가 특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사 면허는 사회가 우리에게 독점적 의료 행위를 할 권한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희소성을 인정받고,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사회가 의료 분야에서 독점적 구조를 용인하면서도 그 부작용을 감수하는 이유는 면허 이면에 공공성을 요구하는 책임을 다해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을 지속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된다면, 사회는 결국 그 독점적 권한을 필연적으로 다른 직역에게 위임할 것입니다.

의사 면허가 곧 전문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존중을 받는 존재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의사의 전문가 정신은 의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환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나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현장을 지키고 있는 동료 의사, 교수들을 비난하며, 오히려 그들의 헌신을 조롱합니다. 100시간이 넘는 업무에 과로로 쓰러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블랙리스트와 비난이죠. 대체 동료애는 어디에 있습니까? 최근에는 함께 버티던 전문의들조차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돌아와도 가르칠 교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또한 여전히 환자들을 지켜야 하는 우리는 간호사, 현장의 보건 의료직들과 다학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환자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의사만이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이들을 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지금 의료 시스템은 붕괴 중입니다. 그 붕괴에 정부만 책임이 있는지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믿을 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기심에 의료 시스템 붕괴의 원흉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신뢰는 더한 규제, 소송, 그리고 더 가혹한 환경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4명의 성명에 대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겸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교수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분들"이라며 격한 반발을 보였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대놓고 하면 사실 교수‧학생의 사제지간, 그런 것들은 깨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수습할지도 참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도 21일 성명을 내 "1년이 넘는 기간 희생한 젊은 의사들의 노력을 철저히 폄훼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의료의 지속 가능한 미래와 발전을 위해 끝까지 우리의 방식대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으며 생명에 위험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많은 이들을 대신해 따끔하게 꾸짖은 것이다. 희망을 봤다"라며 서울대 의대 교수 성명을 반겼다.

2000년 의사 대파업 때도 죽비 내려치는 집단 있었다

의대 정원 대폭 확대 정책으로 인한 전공의 등 의사 집단 반발에 앞서 우리는 2000년 의약분 업 시행 때 지금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의료 갈등을 겪었다. 의사 대파업의 효시였다. 당시에도 사회적 위기에 국민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자 의사 집단에 죽비를 내려치는 이들이 나타났다.

당시 박기호 천주교 신부는 '이 시대의 징표 집단이기'란 제목의 신문 칼럼에서 "사상 처음으로 기억되는 의사들의 파업은 우리 시대의 징표와 과제가 무엇인지 성찰케 해준 화두였다.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단호하게 가운을 벗어놓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이 시대의 이기주의 극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이기주의는 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온다. 그것은 생태 환경 파괴로 나타나는 소비주의와 함께 죽음으로 가는 마차의 두 바퀴이다."라며 이기심에 사로잡힌 의사 집단을 용기 있게 비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사태의 밑바탕에 깔린 것은 이기심이 핵심이라는 점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의대 교수들마저 가운을 벗고 의사 파업에 동참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서울대 보건대학원교수협의회도 성명을 내어 "의사들도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진료 거부나 파업보다는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의약분업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라고 밝혔다. 의대 정원 증원 사태로 빚어진 의사 집단행동 사태에서도 곱씹어봐야 할 지적이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4명의 성명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의사 불신이 가져올 사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이루어진 것이라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 시점도 절묘했다. 사태의 분수령에 이른 시점, 더 이상 방관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여긴 시점, 즉 의대생들의 이유 없는 장기 휴학 사태에 따른 유급·제적 시한을 앞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빛을 발휘했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시점이었다. 그 내용도 울림이 컸다.

의대생에 이어 전공의 복귀도 시간 문제

서울대 의대 교수 성명 이후 전국 의대생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물론 이들의 행동 변화에는 학교 쪽과 정부의 더 이상 관용하지 않는다는 강경한 방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 여론도 매우 좋지 않다는 것도 감안했을 터이다. 이번 3월 말이 대부분의 의대생 완전 복귀의 데드라인이다. 조짐은 일단 긍정적이다.

의대생과 전공의 파업은 2년에 걸쳐 국민을 불안케 했다. 의대생과 전공의는 손을 맞잡고 연합전선을 그동안 펼쳐왔는데 그 가운데 한 축이 무너져 내리면 전공의들도 더는 버텨낼 힘과 명분이 없다. 전공의 복귀도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얽히고설켰던 문제가 모두 한꺼번에 풀리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협의회가 요구해 온 내용을 모두 들어주기 쉽지 않다.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을 맞아 대한민국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다 해도 그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런 환경은 제대로 된 의료 개혁을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 전공의와 의대생 세대들이 무엇 때문에 의사가 되려는지, 또 의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그 대응책이 반드시 이른 시일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의료인 세대들은 분명 언제든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회적 반란'을 획책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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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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