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에 소주 마시던 대통령은 고민에 빠진다. 계엄, 성공할 수도 있겠는데?"

[오찬호의 틈새] 윤석열의 행보를 통한 그럴듯한 상상

선고 당일

탄핵이 기각되었다. 세 명의 재판관이, 다른 다섯 명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헌법 위반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도 탄핵 시의 사회적 혼란을 우려한다며 인용을 반대했다. 인용하면 헌재를 가루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정당한 여론으로 인정하는 꼴이었고 기각만이 너희들이 살길이라는 겁박을 합당한 민의로 수긍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니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 현장의 함성은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부둥켜안고 울었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곳곳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깃발이 나부꼈다. 빨갱이 타도, 좌파 척결, 공수처 해체, 중국인은 물러가라 등등.

언론들은 인용과 기각을 대비해 준비해 둔 뉴스를 긴급으로 내보냈다. 외신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했다. 헌법을 전혀 준수하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폭력을 군중의 소요가 걱정되어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과연 말이 되냐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내신은 괴상했다. 바짝 엎드리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몇몇 언론의 순간 자막이다. "윤석열의 화려한 복귀",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했다",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 권한", "내란은 없었다" 등등. 이어지는 내용은 이러했다. "거만한 야당의 자충수", "이재명 사면초가", "한동훈의 정계 복귀, 사실상 물 건너가" 등등.

이 분위기에 용산 대통령실은 고무되었다. 곧 입장 발표가 있었다. "헌재의 판결로 대통령의 헌법위반은 없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이는 선거 부정과 야당의 패악질을 알린 비상계엄령이 정당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통령은, 늘 그랬듯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일할 것입니다." 재판관 전원이 헌법 위반을 인정했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탄핵 기각과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내란 혐의에 대한 재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떤 기자도 따지지 않았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겁에 질린 느낌이었다. 그들에겐, 침묵만이 살길처럼 보였다.

한남동 관저 앞은 직무에 복귀할 대통령을 기다리는 지지자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만이 대한민국을 구원한다'면서 거친 목소리로 기도를 읊었다. 목사는, 자신이 뭐라고 말했느냐면서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말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외쳤다. 이 광경을 뉴스에서는 "대통령 업무 복귀를 환호하는 시민들로 가득"이라고 보도한다. 그러면서 이 군중 한가운데에 대통령 차량이 멈춰 서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계획된 퍼포먼스였다. 3월 8일, 구치소 밖으로 직접 걸어 나왔던 대통령의 모습은 개선장군 같았고 관저 앞에서 다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한 모습은 매우 인자해 보였다는 내부 분석에 그는 흡족해했다. 대통령은 강한 어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살려내겠습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복귀 이후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이 기각된 사람처럼 행동했다. 선거에서 수백만 표차로 이긴 사람처럼 자신만만했다. 여당 국회의원이 200명은 되는 것처럼 말했다. 기각이, 기사회생 정도 수준으로 그를 살려놓은 것이 아니라 기고만장해도 된다는 신호가 되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뱉었던 막말이 당당하게 다시 등장했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라는 추임새가 연일 부유했다. 2024년 12월 3일 밤에는 저 문장에 이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았던가. 윤석열은 자신의 상황판단이 옳았기에 탄핵이 기각된 것이라고 믿었다. 어찌, 범죄자 소굴로 여기는 국회와 협의를 하겠는가. 야당은 늘 폭거, 농락 등의 단어와 함께 언급되었다. 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한 날, 대통령은 현충원을 방문해 이승만, 박정희 묘역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이런 문구를 남긴다.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질서유지 명목으로 강한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예견된 일이었다. 계엄 때의 논리 아니었던가. 군인과 경찰이 국회로 왔기에 충돌이 발생했는데, 윤석열은 이를 질서유지 차원의 조치라고 했다. 그 궤변이 인정받은 셈이니, 이제 질서유지의 앞뒤 정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합법적인 시위 현장에, 정당한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막무가내로 들어와 일촉즉발의 상황을 야기했다. 그러면 질서유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공권력을 투입해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대학 등 여러 시국선언 발표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질서를 국가가 훼손해 놓고, 질서 운운하며 모든 걸 통제했다. 밟히니, 격렬히 항의하는 사람들이 어찌 없겠는가. 언론은 그 모습만을 대서특필했고 정부는 그걸 빌미 삼아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세력' 어쩌고의 담화문을 발표한다. 진지하게, 특별 진압부대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여당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오갔다. 예상된 일이었다. 2025년 1월 9일, 하얀 헬멧을 쓰고 무려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가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들이 어떻게 말했던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하고, 강한 이미지를 가진 백골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뉴스에서는 사회적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대통령의 무능하고도 무리한 대응이 문제라는 분석은 없다. 누가 분열시켰는지는 관심 없고, 분열된 이들끼리 싸우고 있는 모습만이 강조된다. 신문의 사설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할 시점'이라는 논조의 글들이 등장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이런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고 지혜롭게 극복했는지, 역사 왜곡에 가까운 조언이 이어진다.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던 대통령은 고민에 빠진다. 지금이야말로 비상계엄을 선포해야 할 적기가 아닌가? 처음엔 '또 제대로 안 되면 무슨 망신이냐'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 계몽령이라고, 경고성이라고 둘러대는 건 무리라 여겼다. 하지만 손 가는 대로 유튜브를 클릭하다 보니 이런 결론에 이른다. 그때, 나에게 영민한 참모 한 명만 있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상예보를 미리 확인하고, 계엄 발표 시간을 약간 늦추고, 국회의장 관저를 미리 봉쇄하고, 국회의원 한 명이 지방에서 출간기념 북토크를 열어 민주당 의원 몇 명이라도 발목을 묶어두는 식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무작정 부대를 출동시키지 말고, 미리 조사해서 선거부정을 확신하고 반중 정서가 강한 군인들 위주로 부대를 재편해 놓으면 저번처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하지 않겠는가. 윤석열은 잔을 내려놓으며 그때는 운이 없었던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장관! 긴급하게 논의할 게 있으니 관저로 들어오세요. 그리고 장군 진급 예정자 명단 있죠, 그거 들고 오세요."

가정이다. 일어날 듯한 가정, 그래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가정이다. 그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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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민낯들>(2022),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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