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홍명보는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논란과 영욕의 길을 걸었다. 은퇴 후 곧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임명되며 ‘황태자’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축구협회나 아시아축구연맹이 요구하는 공식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다. ‘무자격자’였다. 규정 위반 및 특혜 논란이 일자 협회는 홍 코치가 빠른 시일 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논란을 마무리했다.
엉망진창 한국 축구
사실 대한축구협회의 행정이 엉망이었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6년 동안 최장수 회장으로 재임한 정몽준, 이후 정몽준의 오른팔에서 회장으로 변신한 조중연, 2013년부터 4연임하며 13년 이상 한국 축구를 주물렀던 정몽준의 사촌 정몽규에 이르기까지 축구협회 행정은 독단적 운영으로 인한 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34년이다.
특히 정몽규의 경우 2023년의 승부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 및 번복 사건과 2024년 역대 최악의 감독 클린스만의 ‘먹튀’로 리더쉽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표팀 성적 면에서도 더 이상 최악일 수가 없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역대 최강의 스쿼드로도 2024년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요르단에 0대2로 패해 탈락했고 이번 월드컵에선 ‘개꿀조’라고 불리는 최고의 조편성에도 본선 32강에조차 들지 못했다. 클린스만과 홍명보 두 사람에게 무려 100억원 넘는 연봉과 위약금을 지급했다.
협회가 엉망이면 대표팀도 엉망이 된다. 2023년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 등 고참 선수들과 이강인 등 후배들 간 물리적 충돌을 불러온 ‘탁구 사태’가 있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선수들 간 갈등이 불거졌다. 협회도 감독도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32강 진출을 결정짓는 남아공과의 마지막 경기에 핵심 선수 손흥민과 이재성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해 온 국민을 황당하게 했다. 이해한다. 선수들끼리 갈등이 생기면 패스 안 한다. 패스 안 할 걸 아니까 안 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대표팀의 문제는 감독과 선수들 간의 갈등까지 더해졌다는 점이다. 서로 소닭 보는 듯했는데 마지막 경기 때는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아사리판이다. 하긴 홍명보 자신이 선수 시절 감독들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항명·태업 의혹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여기에 당한 사람만 꼽아도 박종환, 비쇼베츠, 차범근 등 부지기수다. 그가 ‘규율’과 ‘결속력’을 말하면 소가 웃는 이유다.
아사리판 대표팀에 엉망진창 협회가 질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해외에서 감독을 찾던 협회는 갑자기 외국인 감독을 포기하고 밤 11시 홍명보의 집 근처 빵집에서 그를 만나 감독을 맡아달라고 읍소했다. 면접도 프레젠테이션도 없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오밤중 동네 빵집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목할 사건이 벌어진다. 원래 외국인 감독을 물색하던 전력강화위원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국내파 감독을 뽑아야 한다는 쪽으로 급변한 것이다. 결국 홍명보를 1순위로 확정한다. 그러나 이를 보고하는 정해성 위원장에게 정몽규 회장은 유럽에 가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정 위원장은 이를 거부하고 사퇴한다. 위원장이 회장에게 반기를 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홍명보를 감독으로 임명한다.
축구협회가 고대 인맥에 휘둘린다는 사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 회장도 고대 출신이다. 그러니까 선수 출신 고대 라인이 비선수 출신 회장에게 항명한 것이다. 고대 출신 정 위원장(78학번)이 물러나자 고대 후배인 이 기술이사(90학번)가 고대 동문 홍 감독(87학번) 임명을 관철한다.
아리송한 축구협회: 현 회장, 전 회장, 그리고 고대
더 이상한 게 있다. 당시 홍명보는 울산HD 감독이었다. 시즌 중이었고 계약 중이었다. 국가대표팀으로 이적하면 협회는 거액의 위약금을 (클린스만에 이어 또)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울산 HD는 잔여계약에 대해 ‘상호 합의에 의한 계약 해지’라는 이해 못 할 방식으로 마무리하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위약금을 포기한다. 배임 아닌가. 회사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것이다. 그렇다면 구단주는 누구인가. 정기선 HD현대 회장이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 바로 정몽준 전 회장이다.
축구인이라면 정 회장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안다. 누가 감히 울산HD에서 감독 임기 중인 홍명보를 데려올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정 전 회장의 동의 또는 사전 내락 없이 홍 감독 임명을, 그것도 현 회장에게 반기를 들어가며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클린스만에게 지불해야 할 위약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와중 또다시 위약금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렇다면 고대 라인이 현 회장에게 반기를 들고 전 회장과 소통하며 밀어붙였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흔히 한국 축구계를 연대와 고대 출신들이 망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파벌을 형성해 나눠먹는다는 거다. 잘못 알고 있다. 연대 출신들은 파벌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김호곤, 허정무, 조광래 등 연대 출신이 대표팀 감독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협회의 주요 보직은 홍명보 감독 임명에서 보듯 고대 출신들로 채워지기 일쑤다. 이 때문인지 국가대표까지 지낸 한 연대 출신 감독도 자식은 고대 축구부로 보냈다.
간단하다. 이번 월드컵 참패의 근본 원인은 현대가의 세습, 그리고 고대 인맥의 전횡이다. 다가올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의 핵심 쟁점은 이들 혈연 및 학연과 절연할 수 있느냐이다. 한국 축구가 그들의 놀이터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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