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젤렌스키 쫓아내기 시작? "트럼프 측근, 우크라 야당 인사 만나 대선 논의"

<폴리티코> "워싱턴이 모스크바와 손잡고 우크라 대통령 해임하려 해"

미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교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측근들이 우크라이나 야당의 주요 지도자들을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6일(이하 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의 측근 4명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주요 정치적 경쟁자들과 비밀 회담을 가졌다"며 "워싱턴이 모스크바와 손잡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해임하려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는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 3명과 익명을 요구한 미국 공화당 외교 정책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 측의 고위 측근들은 우크라이나 야당 지도자인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 젤렌스키 직전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의 당 간부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는 지난해 5월 20일 만료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당국은 전쟁에 따른 계엄령을 이유로 선거를 취소한 상태다. 매체는 "이 회담은 우크라이나가 빠른 시일 내에 대선을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며 정권 교체와 관련한 회담이었음을 시사했다.

매체는 "미국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하워드 루트닉 상무부 장관은 이번주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파트너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측근이 이날 우크라이나 야당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말과 행동이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매체는 "비공식으로 논의 중인 모든 계획의 핵심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일시적 휴전에 합의한 후, 평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대선을 실시하는 것"이라며 "조기 대선이라는 아이디어는 수년 간 젤렌스키를 없애고 싶어했던 크렘린(러시아 대통령실)에서도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매체는 "티모셴코와 포로셴코는 모두 전쟁이 끝나기 전에 선거를 실시하는 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비탈리 클리츠코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하지만 매체는 공화당의 한 고위 외교 정책 전문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로셴코의 인사들과 티모셴코 전 총리는 모두 트럼프와 대화하며 '함께 일하기 쉬운 사람'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또 젤렌스키가 동의하지 않는 많은 것에 동의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며 우크라이나의 정치인들 역시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티모셴코 전 총리 측은 미국 정부 구성원 또는 트럼프 측근과 대선 및 평화 협상에 대한 회담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매체의 질문에 "아직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 매체에 따르면 티모셴코 측은 최근 몇 주 동안 경쟁 정당의 의원들에게 접근, 자신의 진영에 합류하도록 설득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는 또 포로셴코 소속 정당에 대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트럼프 측근과 회담을 가질 것인지 물었는데, 정당 공보실은 "우리의 이야기는 선거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매체는 우크라이나 야당 측과 논의에 참여했다고 알려진 트럼프 측근 4명에게 연락했지만 즉각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야당 정치 인사들의 행보에 대해 루슬란 보트닉 우크라이나 정치연구소 소장은 매체에 "그들은 워싱턴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구축하거나 공화당 또는 트럼프 측근과 관계를 활용하여 협력할 의지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진단했다.

보트닉 소장은 "(우크라이나의) 엘리트들은 미국의 지원 없이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것이라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충격을 받고 있다"며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군사 및 정보, 자금 지원 중단 등이 거론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몇몇 야당 지도자들이 조기 대선을 구상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내부에서의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여당 의원인 올렉산드르 메레즈코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은 <폴리티코>의 팟캐스트인 '파워 플레이'에 출연해 조기 대선은 러시아에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선거가 치러지는지 여부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이건 푸틴의 목표다. 트럼프는 푸틴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며 "푸틴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를 내부에서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젤렌스키를 제거하고 싶어하는데, 젤렌스키가 우리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내부 여론도 젤렌스키와 트럼프 간 정상회담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 측으로 기울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여론조사기관 서베이션이 정상회담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4%의 응답자가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지지하겠다고 답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젤렌스키와 가장 근접한 경쟁자도 트럼프 측근들이 만난 야당 정치 지도자들이 아닌, 발레리 잘루즈니 현 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였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10%, 티모셴코 전 총리는 5.7%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다만 우크라이나 내에서 전쟁보다는 협상을 원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트닉 연구소가 여론 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크라이나인의 3분의 2는 회담에 더 집중하고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또 이 중 절반은 우크라이나가 양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고, 나머지 절반은 즉각적인 휴전을 원한다고 답했다.

한편 지난 2일 마이크 월츠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 방송 CNN에 출연해 "우리와 러시아를 상대하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개인적 이유 또는 정치적 동기가 전쟁 종식이라는 목표와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면, 우리는 진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우크라이나 정권교체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또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역시 2월 28일 기자들에게 미국이 여전히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내놨고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2일 미국 방송 NBC의 <미트더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뭔가 바뀌어야 한다. 그(젤렌스키)는 정신을 차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를 거론한 바 있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 영상메시지를 게제했다. ⓒ젤렌스키 텔레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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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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