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2024년 12월 3일) 이후 한국 사회와 정치를 휩쓰는 풍경을 보면, 사회적,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나와 다르다"기 보다는 "네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게 된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니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필요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전과 달리 '개인화'된 플랫폼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자기 신념이 강화되고, 그러다보니 사회적-정치적 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는 다시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틀릴 결심>(오후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을 쓴 오후 작가는 지난 3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정답이 사라진 순간 우리는 대화할 수 있다"며 "정답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냥 틀릴 결심을 하자"는 생각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MBTI, 가짜 뉴스, 젠더 갈등, 팬데믹, K-컬처, 선거제도, 비상계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오후 작가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일에서 확인될 수 있는지 강조한다.
"저는 요새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그 지지자들의 행보를 보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준석 의원은 초기 반페미니즘을 내세워 인기를 얻었습니다. 유럽 등 국제적 정치 지표로 보면 극우 포지션이죠. 국민의힘에 있던 시절엔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으로 당을 나오게 됐어요.
그런데 계엄 이후 정치적 포지션을 보면 이준석은 중도인데, 이준석을 지지하던 2030 남성들의 상당수가 극우에 있습니다. 탄핵을 반대하고 윤석열을 지지합니다.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것과 독재를 지지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죠. 왜 이준석 지지자들은 윤석열에게 가 있는지, 이준석 본인도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정치적 혼란은 전지구적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쟁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다른 나라를 침략한 러시아를 편들면서 우크라이나를 겁박해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에서 벗어나 다시 '세계 평화'를 이루겠다는 현실은 더이상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사실 젤렌스키가 광물협정 등 미국이 원하는 걸 해주러 간 거잖아요. 이미 젤렌스키가 항복 선언을 하러 갔는데, 굳이 면박을 주고 궁지에 몰아넣은 겁니다.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이 져주면 예의상 높여주잖아요. 나는 얻고 싶은 걸 얻었으니까. 근데 이게 이제 옛날 방식이 된 거죠. 예전에는 교양 있는 위선의 세계였는데 지금은 솔직한 기만의 세계가 된 셈이죠."
"트럼프는 유럽에도 있고 남미에도 있고 아시아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다. 보수에도 있고. 진보에도 있다. 이제는 트럼프를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지도 모르겠다. 설혹 트럼프가 언젠가 비난을 받고 물러나더라도 그가 뿌린 씨앗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가치 판단과 무관하게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시대정신이다."(79쪽)
"사라진 공통의 가치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약화, 금전적 욕망, 약자에 대한 혐오, 상처받은 개인의 표출이 먼저인지 가면을 벗은 정치인의 출현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과정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뤄 앞으로인지 뒤로인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100쪽)
오후 작가는 "지금 트럼프의 파나마 운하 탈환 공언에만 관심을 갖지만 1999년에 미국이 파나마에 운하 관할권을 넘겨주었던 당시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는 그게 매우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영국은 홍콩을 120여년 전 약속대로 1997년 중국에 반환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하면서 핵무기를 완전 포기했어요. 그 대가로 미국.영국.러시아로부터 영토와 주권에 대한 보장을 약속 받았습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우크라이나가 당시 핵 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가 이렇게 쉽게 침공하지 않았을 거라면서 한국도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식으로, 모든 것을 힘의 논리로만 밀어붙이는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공감합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어떻게 이런 합의들을 만들어냈는지 다시 복기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활성화된 극우세력이 사용하는 '정치적 땔감' 중 하나가 중국에 대한 반감인데, 어떤 논리적 근거나 합리적 이유도 없이 대중들을 자극한다.
"제가 얼마 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를 지나는데 역 입구에서 한 청년이 '중국이 세계를 망친다, 중국인 꺼져라' 이런 말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하더라구요. 그 근처에 중국인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 사람들이 그 피켓을 보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한중관계가 단순한 반감만으로 나빠지는 게 한국의 국익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이런 행위가 중국을 배척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지도 않거든요. 윤석열의 계엄 이후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가 3월 1일 광화문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극우집회에 참석했더라구요. 실제 광장에 나오는 것, 가장 적극적인 의사 표현 중 하나인데, 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 '오답'을 말하면 '벼랑 끝'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덧 공동의 가치를 상실하고 타협하고 합의점을 찾아가야할 문제마저 이기고 지는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개인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누군가는 격렬히 싸우는 광신도가 되고 누군가는 세상일에 무감한 냉담자가 되고 있다고 오후 작가는 지적한다. 필요한 일은 다시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 시작은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 "틀릴 결심"이다. 미래는 정답이 아니라 공존에 있기 때문이다. "틀림이 없으면 틀림없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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