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폐간? 김건희는 조선일보에 감사해야 한다

[박세열 칼럼] 윤석열은 '엘바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1815년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섬을 탈출했을 때, 당시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 모니퇴르>는 "코르시카 괴물, 후안 곶 상륙"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해 3월 15일부터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한 3월 22일까지 이 신문의 헤드라인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3월 11일: 호랑이가 가프(프랑스 남동부)에 있다. 군이 그를 막을 것이다. 그는 산중 노숙 난민으로 비참한 모험을 끝낼 것.

3월 12일: 괴물이 그르노블로 진군하는 데 성공.

3월 13일: 폭군은 이제 리옹에 있다. 공포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3월 18일: 반역자가 파리에서 며칠 거리에 도착했다.

3월 19일: 보나파르트는 서둘러 접근했지만, 파리로 진군하는 데는 실패했다.

3월 20일: 나폴레옹, 내일 파리에 입성할 것.

3월 21일: 나폴레옹 황제가 퐁텐블로에 있다.

3월 22일: 폐하께서는 어제 저녁 파리에 도착하신 것을 축하하셨다. 그 환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주진우 시사인 편집위원이 공개한 육성 녹취 파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전 코바나 대표는 계엄 이후 시점인 지난해 12월 지인과 통화에서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야 말로 우리나라를 망치는 애들"이라며 "지들 말 듣게끔 하고 뒤로 다 기업들하고 거래하고, 얼마나 못된 놈들인 줄 아느냐"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아주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라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배경은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일보 기자가 윤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통화 녹음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대해 김 전 대표가 격분했다는 설이 나온다.

김건희가 어떤 방식으로 조선일보를 폐간시킬 수 있을지 알 순 없지만 단서는 있다. 윤석열이 직접 검토해 발표한 계엄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돼 있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고 돼 있다. 이 포고령을 위반하면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돼 있다.

간단하다. 기사 몇 개 가짜뉴스로 몰고 영장 없이 사주 및 구성원들을 '싸그리' 붙잡아 징역 형에 처한 후, 신문사를 국유화하고 '국영 조선일보'를 폐간하면 된다. 나폴레옹 파리 입성 후 르 모니퇴르는 그의 충실한 언론이 됐지만, 1830년 왕정이 복고된 후 왕실 신문이 됐다가 1868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사실상 폐간된다. 이 과정을 압축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김건희의 발언은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조선일보가 정말 '폐간' 운운할 정도로 김 전 대표에게 큰 죄(?)를 저질렀나? 윤석열의 계엄 및 탄핵, 탄색 심판과 관련된 조선일보의 사설 논조를 시간순으로 보면 르 모니퇴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극적인 요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계엄 다음 날인 조선일보 12월 4일자 사설 제목은 "국민 당혹시킨 계엄 선포, 윤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이다. 조선일보는 "어떻게 지금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상황인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상황도 아니고, 그럴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도 아니다. 세계 10위권 민주국가로 국가 망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12월 5일자 사설의 제목은 "타임머신 타고 1970년대 간 듯" 국민이 부끄럽다"이고, 12월 7일자 사설은 "사흘째 침묵 尹, 국민에 사과하고 책임질 방안 내놓아야"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번 비상계엄은 헌법상 발동 요건에 맞지 않는다. 국회에 계엄군을 보내 국회 활동을 막으려 한 것은 명백한 계엄법 위반이다. 위헌·위법적인 조치임이 명백하다"면서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고 전말을 밝힌 뒤 어떻게 책임질지도 밝혀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그런데 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부터 야당과 탄핵 찬성 시위대를 비판하는 묘한 '양비론' 사설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김건희 전 코바나 대표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생명의 전화'를 살펴보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24일자 사설 "탄핵 정국이라고 불법이 용인되어선 안 돼"를 보면 "계엄은 위헌성, 불법성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런 계엄을 거부한다는 사람들이 불법을 예사로 저지른다면 계엄 세력과 불법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면서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남태령 시위를 비판한다. 그리고 12월 28일 사설에는 "29건 '연쇄탄핵병' 민주당도 이 전체 사태에 큰 책임 있다"고 야당을 슬쩍 끌어들여 '물타기'를 한다.

1월부터는 조금 더 노골적이다.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이 급등하고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국정수행을 하지 않는데다 선거에 출마도 하지 않은 자의 지지율을 어떻게 가늠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이 상승세를 탄다는 결과가 연일 보도되던 시점이다. '극우의 아이콘' 김문수가 대선 주자로 우뚝 서기도 했다.

1월 9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尹측 '불구속 기소나 구속 영장 청구하라' 공수처도 검토를"이라는 제목으로 공수처에 윤석열을 불구속 기소하라고 요구한다. 사설은 "무턱대고 속전속결식으로 수사를 밀어붙인 공수처 책임도 있다. 국회의원 수사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며 "이미 내란 혐의 관련자들이 상당수 구속됐고, 증거도 상당 부분 확보돼 있다. 그렇다면 이젠 윤 대통령 체포에 집착하지 말고 보강 조사를 통해 구속 영장을 청구하든지 아니면 불구속 기소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1월 23일자 사설에서는 "공수처가 지금 하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라며 수사 주체를 흔든다. 사설은 "공수처가 20일 강제 구인을 시도할 때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출석을 위해 변호인들을 만나고 있었다. 방어권을 위해 그 시간은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공수처는 최근 윤 대통령에게 변호인을 제외한 사람 접견 금지, 서신 수·발신 금지 결정도 내렸다. 이런 조치도 증거인멸 정황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황이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고 윤석열을 변호하기도 했다.

2월 8일자 사설 "공(功) 세운다고 경솔하고 성급하게 나서더니"에서 조선일보는, 거의 모든 군·경 관련자들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와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는데도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증언의 지엽적 오류들을 정색하고 문제 삼는다. 2월 13일자 사설에선 "현직 검사장 '일제 재판만도 못한 헌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친윤 검사'로 분류되는 이영림 춘천지검장의 발언을 인용, 헌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사설에서 윤석열은 안중근의 반열에 등극(?)한다. 2월 14일자 사설에선 "'홍장원 메모' 작성 시간·장소 모두 거짓, 진위 밝혀야"라고 주장한다.

화룡점정은 2월 27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의 칼럼이다. 양 주필은 "尹 '임기 6개월' 못박고 개헌 밝히길"이라는 제목 하에 "지금 물러나게 하는 것과 6개월 뒤 물러나는 것의 차이는 크지 않다"면서 "헌재가 탄핵 선고를 몇 달 연기해 개헌의 시간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만약 윤 대통령 6개월 임기와 개헌을 전제로 탄핵이 기각되면 대선도 그만큼 연기된다"며 '탄핵 기각'을 '아이디어'로 제시한다.

이런 주장은 9부 능선을 넘은 헌재의 그간 모든 심판 절차를 우습게 만드는 것으로 '헌법'과 '법치'에 맞지 않는다. 윤석열을 직무 복귀 시켜야 한다는 것인지, 탄핵 심판과 별개로 진행되는 형사 재판은 어쩌자는 것인지(내란죄는 대통령 불소추 특권이 없다.)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야당 대표의 형사 재판은 사법리스크고, 대통령의 형사 재판은 별일 아니란 건지, 무모하고 허무맹랑한 논리엔 구석구석 헛점도 많다. 그도 민망했는지 "윤 대통령이 임기 6개월 약속을 지키게 할 확실한 보장책은 없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다.

자, 12월 7일 "이번 비상계엄은 헌법상 발동 요건에 맞지 않는다. 국회에 계엄군을 보내 국회 활동을 막으려 한 것은 명백한 계엄법 위반이다. 위헌·위법적인 조치임이 명백하다"며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일갈하던 조선일보와, 2월 27일 개헌을 전제로 한 "탄핵 기각"과 "탄핵 선고"를 "몇 달 연기"하자고 주장하는 조선일보의 괴리는 꽤나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명백한 계엄법 위반", "위헌 위법적인 조치임이 명확"한 일을 저지른 자에게, 어느 언론보다 추상같은 '법치'를 강조하던 조선일보는 왜 이렇게 관대해졌는가.

김건희 전 대표는 조선일보를 폐간시킬 게 아니라, 한국의 '르 모니퇴르' 조선일보에 무릎이라도 꿇고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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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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